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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풍뎅이 Jan 20. 2020

1월의 세 번째 편지

안녕 우리 


지난주 하원 하고선 심해진 미세먼지에, 추운 날씨에 바깥활동을 거의 못 했네.


대신 엄마랑 집에서 호떡도 만들고 귤청도 만들고 했잖아. 별거 아니지만 나름 '엄마표 놀이'를 한 날은 자기 전 "오늘 뭐가 가장 재밌었어?"라는 물음에 "엄마랑 귤청 만든 거. 엄마랑 호떡 만든 거."라고 답해주는 너.

늘 그렇듯 거창 한 건 하나 없지만 엄마와의 시간을 재밌게 기억해줘서 고마워. 사실 엄마가 요즘에 조금 지루했거든. 하원하고 자기 전까지(심지어 늦게 자잖아) 시간이 부담 가득한 짐처럼 느껴졌어. 겨울잠 자는 곰처럼 꼼짝하기 싫어 게을러지던 차였는데 심심함에 몸부림(?) 치는 듯한 네 모습에 정신을 차리게 됐어.


마침 집에 귤이 많아 껍질을 까 하나하나 알맹이를 떼고 설탕을 부어 청으로 만들고 또 하루는 주방 찬장을 보니 호떡믹스가 있어 따뜻한 물에 이스트와 호떡 가루를 넣고 반죽했지. 팬에 기름 두르고 아기 호떡처럼 작게 부쳐주니 맛있다고 세 개나 집어먹는 널 보며 게을렀던 시간들이 미안해졌어.


그리고 주말은 아빠와 둘이 시간을 많이 보냈지. 면접 준비로 평일엔 바쁜 아빠가 어떻게든 너와 시간을 보내려고 낮시간에 최선을 다해 놀아주셨어. 물론 엄마 힘들까 봐 배려해주신 것도 있고. 덕분에 엄마는 집안일도 마음 편히 하고 소설책도 읽고 여유 있는 주말을 보냈어. 토요일엔 넓은 키즈카페 가서 신나게 뛰어다니고 어젠 공주옷도 많고 반짝이 구두까지 있는 샤랄라 한 키즈카페 가서 놀다 왔지. 가서도 동생들 쫓아다니며 같이 놀려는 모습에 아빠 마음이 아팠대. 그렇게까지 동생을 좋아하는 줄 몰랐다고.


확실히 아빠랑 놀다 오니 둘이 더 가까워진 것 같아. 평일에 아빠를 많이 못 볼 땐 "아빠 싫어. 엄마만 좋아" 하더니 어제저녁엔 "아빠가 더 좋아, 엄만 맨날 혼내기만 해." 그러더라.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아빠 노릇 하느라 고생인 아빠에게 나중에 사춘기라고 예를 들어 아빠가 뭐 해준 게 있어라는 말로 상처 주면 안 돼. 알겠지?


우리 딸이 잠드는 밤이 되면 엄마 아빠는 잠든 너를 보며 천사 같다. 예뻐 죽겠다 감탄도 하고 요즘 작은 키로 받는 스트레스를 걱정하기도 해. 딸이 한참 꿈을 헤매고 있을 때 엄마와 아빠는 우리가 잘하고 있는 건가 육아라는 큰 산을 헤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간들이 지나면  훌쩍 커버린 너와 부모로 성장한 엄마 아빠가 밤늦도록 도란도란 맥주 한잔 하며 어릴 적 얘길 나누는 날이 오겠지?

그때까진 웃기도 하고 시행착오도 겪고 혼란스러워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고 다양한 일들을 겪어보자.


내일이나 모레쯤 하원하고 저녁에 먹을 김밥 싸려고 재료 사놨어. 같이 또 만들자.

오늘 저녁엔 우리 딸이 말한 짜장 떡볶이 해줄게.


이따가 열심히 달려갈 테니 낮잠 푹 자고 일어나렴.

세시반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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