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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풍뎅이 Apr 27. 2020

민들레 김치


거의 세 달 만에 엄마 아빠가 있는 시골에 다녀왔다. 지난 설 때 가고 한 번도 안 갔으니 꽉 찬 세 달 만이다.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는 혹여나 바이러스라도 딸 부부와 손녀에게 옮길까 봐 오지 말라는 당부를 수도 없이 해왔다. 그동안의 주말은 집에 머물거나 드라이브, 동네 산책 정도로 지루함을 달래다 진심으로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토요일 오후, 두 분 다 좋아하는 초밥을 사들고 갔다. 오래간만인 집은 여전히 조용했고 고양이 ‘몽실이’의 새로운 캣타워가 안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저물 무렵의 하늘은 그냥 멍하니 보게 될 만큼 예쁘기도 했다.

엄마는 우리가 가면 항상 소고기, 돼지고기를 구워주는데 이번에도 역시 고기였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구워주는 고기를 먹으니 꼭 민박집에 놀러 온 것처럼 마음 편히 그저 먹기만 했다. 그러다 엄마가 꺼내놓은 접시를 보고 코끝이 시렸다. 접시엔 민들레 김치가 수북이 담겨있었다.


4월 초쯤 갑자기 민들레 김치의 씁쓸한 맛이 그리웠던 적이 있었다. 엄마와 통화를 하다 "엄마 민들레 김치 어떻게 만드는 거야? 밖에서 뜯어와서 무치면 되는 거야?" 물었다. 밖에 나가면 지천에 민들레니까  뜯어다 무쳐먹어도 된다고 엄마는 그랬지만 겁 많은 나는 혹시나 비슷한 모양의 독풀이라도 뜯을까 무서웠다. 온라인 판매처를 검색 끝에 찾았는데 너무 비싸서 ‘에이 겉절이나 해 먹자’ 마음을 접었다.


머릿속에 엄마가 홀로 민들레 잎을 봉지가 불룩해질 정도로 채우는 모습이 그려졌다. 엄마는 늘 그렇다. 다정하게 엄마가 해줄까 엄마가 해놨어 라고 말해주지 않고 그저 묵묵하게 엄마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민들레 김치는 나도 잘 모르던 음식이다. 4년 전 아이를 낳고 친정집에 머물 때, 엄마는 매일같이 마트 퇴근 전 전화를 걸어 뭐 먹고 싶은 건 없냐 물어봤다. 나도 매일같이 없다고만 했고, 엄마는 떠먹는 과일젤리나 요구르트 같은 것들, 소고기, 우족을 열심히 사다 날랐다. 나는 그 무렵 그토록 좋아하던 커피도 안 마시고 그저 우울하기만 했었다. 아이가 있고 없고의 차이를 매일 느끼며 기분은 바닥을 치고 또 괜히 죄 없는 아빠에게 예민하게 굴기도 했다. 밥도 수유 때문에 억지로 국에 말아 의무감으로 먹었는데 어느 날, 엄마가 상에 무심히 올린 그 민들레 김치와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뭉클해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농담 반 진담 반 내가 나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 같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내가 나고 자란 내 고향, 우리 엄마가 해준 김치,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동네, 우리나라... 실제로 그런 면이 있어 반박할 수가 없다. 하지만 민들레 김치는 엄마에 대한 애착을 빼고도 정말 대체 불가다. 나중에 엄마가 없을 때 올해 봄처럼 뜬금없이 이 김치가 생각나면 어쩌나. 벌써부터 먹먹해진다.


내일 아침엔 꼭꼭 눌러 담아 싸준 민들레 김치와 누룽지를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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