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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ee tree Sep 27. 2020

늘 나와 함께함을. 무의식 정화.



벌써 9월도 끝나가는구나. 이번 한 달도 계속 되는 정화의 과정을 거쳤다. 외로움, 어깨통증, 불안감, 슬픔, 좌절감, 자살충동, 가슴답답함. 먹먹함. 몸살. 등의 많은 감정과 통증을 겪었다. 그리고 정말 많이도 울었다. 무의식이 올라올때에는 그 감정이 너무도 크고 강렬해서 나는 휩쓸리고 휘청거릴뿐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저 받아들이고 지나가길 바랄뿐이다. 차라리 죽는 것이 편하겠다 싶을만큼 강렬하게 다가오는 그 감정을 허용하고 나는 그 시간에 존재할 뿐이다.


무언가를 하는 것도 원하는 것도 감정을 회피하는 것도 힘이 들기 때문에. 나는 내가 이것을 강력히 원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 안의 수많은 무의식과 트라우마를 내가 고의로 계획한 일이라면 (영혼의 성장을 위해) 지금 이렇게 고통을 겪는 것 또한 내가 나를 위해 계획한 것일테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받아들임은 내가 나의 모든 것, 그게 어떤 것이든 받아들이고 허용하고 그곳에 함께 해주는 것이니까. 나는 갈수록 정화는 곧 나를 향한 깊은 헌신이자 사랑이라고 느낀다. 이렇게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구나 하고.



 

그에 따른 변화 또한 많다. 요즘은 길을 가다 지나가는 아이들과 눈을 자주 마주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나를 꽤 오랜시간 빤히 쳐다본다. 마치 신기한 것을 본 것마냥. 그럴때면 참 기분이 묘하다. 그리고 곤충, 비둘기 등 예전엔 무섭고 두려워했던 생물들이 더이상 무섭지가 않고 피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여기에 함께 존재하는구나. 너구나. 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엄마는 내 얼굴이 천사같이 편해보인다고 말했다. 나는 분명 아직도 그 고통스러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중인데. 친구들도 똑같이 이야기하고.


엄마가 최근에 꿈을 꾸었다. 세탁기에서 김치국물과 쓰레기들이 나오는 구역질나는 장면, 어린 내가 전시를 하는데 내 그림을 외면하는 사람들의 반응에 울고 있는 악몽을 꾸었다고. 그런데 엄마가 위로해주자 나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웃으며 신나게 춤을 추었다고 했다. 이런 변화들과 주변사람의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내가 잘못가는 것이 아니구나. 이것이 좋고 나쁘고 판단을 할 상황이 아니라 나의 내면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임을 그때는 비로소 자각한다.





동시성의 경험들, 연속적인 숫자를 볼때도 정말 많다. 그리고 가끔 생각없이 티비를 틀거나 유튜브를 볼때, 어떤 책을 읽을 때 (전에는 동시성인지 뭔지 긴가민가했던 것들이) 강렬하게 마음에 와닿아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오늘은 티비를 보다가 마리아라는 노래 가사 ‘뭐하러 아등바등대. 이미 아름다운데.’ 라는 가사의 의미를 듣고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동안 아등바등대온 지난 날들이 생각나며 내 자신이 너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그만 애쓰자. 자연스럽고 편하게 흐름에 맡기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필사적으로 아등바등댔던 것도 내려놓기 위해 경험한 아름다운 현상들이었음을 알았다.




산책을 하며 길을 걷다가 내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기뻐서 눈물을 쏟았다. 자연과 공명하면 내 안에서 메세지같은 것들이 떠오르고 고요한 상태에 머물게 된다. 그 풍요에 잠시 나를 맡기며 고통이 곧 지나갈테니 걱정말라는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사랑이 내 몸 주위에서 공기처럼 맴돌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고 부모님의 깊은 사랑, 내 방의 모든 물건과 럭키와 주변 사람들의 사랑이 가슴깊이 느껴진다. 그러면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나온다. 수도꼭지 튼마냥 줄줄줄..계속해서 치유가 되며 나는 그것을 음미하고 또 음미해본다. 감사한 사랑. 내가 그것을 이렇게 진하게 느낄 수 있는 날이 오다니.


 

요즘 날씨가 정말 좋아서 다행이다. 날까지 우중충했다면 정말 더없이 힘들고 축축 쳐졌을 텐데.. 좋은 공기를 맡고 매일 야외에 나가 치유할 수 있고 자연에서 안정감을 찾을 수 있어서 정말 정말 다행이다.


지난주에 함께 의식코칭을 배우는 선생님께 코칭을 부탁했을 때 들었던 메세지 “사랑한대요. 많이. 그리고 다 괜찮아질거래요. 좋아진대요. 때가 되어서 온거래요. 다 지나간대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길거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내 상위자아의 깊은 사랑과 의도를 가슴으로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신뢰했다. 나는 나를 도와주고자 하는 상황과 사람들을 허용했다.






최근 분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왜인지 모르게 해야할 것만 같았다. 나는 그곳에서 가장 바쁜 점심시간 전후 3시간동안 꼬마김밥을 말고 설거지를 하고 재료를 다듬는다. 예전엔 나도 모르게 청소, 식당 등의 일을 하찮게 생각하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사회적인 시선과 수많은 고정관념과 틀에 의해 내 생각은 점점 좁게 굳혀져 갔을 거다. 지난 몇년 동안의 정화의 과정을 거치고 지금 나는 모든 것들이 그저 아름답고 대단하게만 보인다.


엄마와 가락시장을 갔을 때 하루종일 서서 생선을 손질하던 분들, 비린내 가득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공사장에서 일하는 분들을 보며 정말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이 '어떻다'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것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일과 모든 사람이 그들 나름의 성장과정을 겪는 아름다운 지구여행을 하고 있었다.



김밥을 말며 함께 일하는 분들의 시시콜콜한 농담과 우스갯소리를 들으며 웃을수 있어서 좋다. 몸은 힘들지만 이렇게 경험할 수 있고 그렇게 뿌듯하게 일을 마치고 집 앞 공원 벤치에 누워서 하늘을 보면 잠이 솔솔 쏟아지며 나른하고 행복한 기분에 젖어들기도 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꾼다. 요즘은 매일 사랑을 경험하고 그 거룩하고 경이로운 감각과 느낌에 젖어들고 있다. 사랑은 내가 생각한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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