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강남의 중심부,
대치동 학원가 근처에서 살아왔다.
우리 집은 가난했지만, 운이 좋게도 부모님의 영혼을 탈탈 갈아 넣은 노력과 노동으로 겨우겨우 버티어가며
나와 동생은 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보란 듯이' 졸업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살던 우리 동네를 참 좋아했다.
좋은 추억과, 친구들과의 기억, 나만의 특별한 장소들. 그렇게 좋았던 날들이 많았지만,
그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과거가 내 안에 함께 존재한다.
나는 성인이 되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불안'을 경험하곤 했다.
나는 항상 모든 것을 열심히 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될 것 같았다.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열심히'가 몸에 배어 있었고, 늘 남과 나를 비교했다.
무엇보다 잘하고 뛰어나야 했고, 멋지게 성취해내야 했고,
누구보다 더 우수해야 했고 인정과 칭찬을 받아야 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나는 뒤처지는 것 같았고, 모자란 인간이 된 듯 스스로를 몹시 책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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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나는 저녁만 되면 내 방 옆에 딱 붙어있는 옆집에서 나는 고함소리에 괴로웠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형제가 살았고, 그 형제는 거의 매일 맞고, 혼나고, 속옷만 입은 채로 쫓겨나곤 했다.
이유는 못다 한 숙제와 시험성적 때문이었다.
고함소리는 찢어지는 소리처럼 끔찍하게 들렸고, 매일 저녁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내 심장이 요동을 치곤 했다. 그 아이들만큼은 아니지만 나 또한 함께 깊은 상처를 받았다.
이사를 간 후 성인이 된 어느 겨울날 다시 동네를 찾아갔을 때,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데 갑작스레 기분이 묘해졌다.
내 옆에 서있는 아이들은 모두 검은색 패딩을 입은 채 책을 펼쳐 들고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던 카페에 들어갔을 땐, 마치 독서실처럼 조용한 카페에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과외를 받거나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 뿐이었다.
내가 당사자였을 당시는 별 생각과 느낌이 없었는데, 나는 정말 이상하게 찝찝하고 깊은 슬픔을 느꼈고, 그 뒤로는 그 카페 쪽에는 한 번도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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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던 영어학원은 마치 감옥처럼 느껴졌다.
나는 공책을 빽빽이 채운 영어문장을 모두 외우지 못하면 집에 가지 못했고, 몇십 명의 아이들은 오로지 집에 가기 위해 복도에서 줄을 서서 문장을 외우고 있었다. 외우지 못하면 단소로 손바닥을 맞아서 한참을 아파했다. 그리고 다시 줄의 맨 끝으로 가서 외우기를 반복했다. -집에 가기 위해-
공부를 못하면 왕따를 당하거나, 무시를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이 악물고 새벽같이 일어나 공부를 해서 시험성적이 잘 나왔던 때 친구들이 나에게로 몰려들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말이다.
하도 책만 봐서 그런가, 반의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안경을 쓰고 있었다. 특히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90프로 이상 안경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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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성취에 대한 압박과 경쟁, 그로 인한 불안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고, 나는 어느 회사에 취업을 해도 어떤 일을 해도 잘 해내지 못하면 괴롭고 불안해서 숨고만 싶었다.
"나는 평범함과 충분함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내 몸이 아파서 회사를 쉴 때조차 죄책감을 느꼈다. 지각과 결석은 내 삶에 없어야 했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는 내가 못난 사람인 줄 알았기에 나는 늘 내 능력 이상을 쏟아붓고
그렇게 "월등한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인정받기 위한 처절한 노력은 결국, 반복된 번아웃과 무기력증을 경험하게 했다.
이유도 모른 채 늘 쳇바퀴 안에서 똑같은 "열심"을 반복하며 살며 나의 영혼은 피폐해져 갔다.
극심한 무기력증을 경험할 때조차 카페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줄 알았다.
내 꿈을 찾고 원하는 것이 명료해진 기쁨도 잠시 나는 뭐든 뛰어나져야 했기에,
나를 돌보는 것을 제쳐두고 오직 성취에만 몰두했다.
내가 그래왔다는 것을 마음이 너덜너덜하게 지친 후에야 깨닫고 멈추었고
다시 달리고 멈추고를 반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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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이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을 마음으로 깊이 알지 못했다.
더 나아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머리로는 알아도 내 몸은 자동반응처럼 늘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나는 늘 뛰어나야 했고, 지금의 나는 부족했으니 당연히 늘 보이지 않은 목적지를 향해 달렸지만, 내가 온전히 지금의 나를 알아주기 전까지는 현실은 그 무엇도 내게 되돌려주지 않았다.
돈이 없는 나, 무능력하고 외로운 나, 무기력한 나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는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훼손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멋지게 잘난 나를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압박은 내 눈앞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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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살아도 충분하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을 땐 끊임없이 내 등을 채찍질하던 존재가 나였었구나,라는 사실을 알고선 충격을 받았다. 눈물로써 화해하고 이 마음을 알아주자 등에 짊어진 짐을 그제야 조금씩 내려놓는 듯했다.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또 무언가가 되더라도, 그 여부에 상관없이 언제나 어디서나 나는 소중하고 온전했다.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유명하고 말고를 떠나서,
어떤 조건에도 상관없이 이미 충분했기에
내가 열중했던 성취를 평생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나는 나대로 정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다만 나 스스로를 문제라 여기는 내 마음 안이 지옥이었다.
화가 '고흐'의 그림에 아팠던 이유는, 죽은 뒤에야 인정받는 그의 삶이 딱해 보였고 더욱이 내가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워서였다. 그가 더 행복했다면 당연히 좋았겠지만, 그것조차 타인의 해석에 의한 판단일 뿐 그는 너무나 충분했고 멋졌고, 삶에 열정적이고 소중한 한 사람이었다.
사후에 유명해지지 못하더라도, 설령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펼치지 못하고 죽더라도, 모든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는 쉽게 평가될 수 없다.
그 모든 영역을 떠나 나는 악으로 빠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뼈아픈 아픔에도 불구하고 최선과 용서로 나아가려 하는 나 개인의 의도만으로도 이미 충분함을 넘어섰다.
성공하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연스럽고 그러한 노력도 건강할 때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다 해도 우리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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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나는 행복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