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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꽃차이 May 04. 2024

고마움을 기억할 때, 미니라스

5층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기쁨

아침마다 비상사태다. 꽃 학원의 위치는 첫째 아이의 유치원과 둘째 아이의 어린이집 사이에 있었다. 거리는 멀지 않지만 지나는 모든 길이 좁았고 막혔다. 두 아이를 준비시키려면 변수도 많았다. 엄마 껌딱지 둘째는 한참을 안아 줘야 선생님에게 갔다. 밥은 꼭 엄마랑 먹어야 한다는, 화성에도 없을 법한 주장을 했다. 충분히 사랑받으면 어린이집 잘 간다는 말은 육아서 속 이론일 뿐이었다.


30분 전에 도착하려고 6시부터 준비했다. 학원 주차 공간이 협소하기도 했지만, 학원에 배치된 책을 읽고 꽃을 미리 찬찬히 보기 위해서다. 매일 다른 고비를 거쳐 주차에 성공하면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얼른 가서 꽃도 보고 꽃 책도 읽어야지! 지하 주차장에서 4층까지 단숨에 뛰어갔다.     


그렇게 좋아? 늘 자기가 제일 행복해해. 


함께 배우는 언니가 종종 하던 말이다. 꽃을 배우러 온 사람들이면 나 못지않게 꽃을 좋아하고 꽃 일을 하려는 열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의 꽃 사랑이 유난스럽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따스한 배려만은 감탄하며 배웠다. 한 아이가 크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한 어른이 크는 데도 많은 어른이 함께했다.


꽃 동기들은 앞다투어 수업마다 간식을 챙기고 남은 꽃들을 서로 가져가라며 챙겨 줬다. 자격증 연습을 위해 매일 모이고, 시험 대비를 위해 직접 만든 자료들도 아낌없이 나눴다. 매시간 남는 꽃은 내게 몰아주던 언니, 실기시험 날 1시간 거리인 우리 집까지 운전해 와서 나를 시험장에 데려다주고 기다려 준 언니, 집으로 초대해서 배운 것들을 알려 주던 언니, 아이들 하원 시간이 빠듯한 나를 위해 늘 먼저 가라며 뒷정리를 해 준 모두, 내 시간에 맞춰 수업 시간을 변경해 준 학원까지.     


이때 만난 선생님도 롤 모델이 되었다. 해야 하는 만큼을 넘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웠다. 꽃 하나를 꽂아도 방향마다 어떻게 달라 보이는지, 배치와 소품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셨다. 한 번의 수업당 두 가지를 실습하게 해 주시는 날도 많았다. 국비 과정은 일반 과정보다 예산이 적으니 꽃이 적지만, 학원 구석구석을 다니며 남은 꽃들을 모아 오는 선생님 덕분에 다양한 고급 꽃들도 접할 수 있었다.     

미니라스. 미니 글라디올러스라는 뜻의 이름인데, 백합의 미니어처 같은 꽃이다. 귀여우면서도 여리여리하고, 튀지 않으면서 고급스럽고 오래가서 지인들에게 종종 보낸다. 컬러도 연분홍, 자주, 보라가 섞여 있어 무난하다. 한 줄기에 여러 송이가 피는데, 반은 몽우리인 상태로 사 오면 모든 몽우리가 피어난다.


단, 시든 꽃은 쏙 뽑아 주어야 다음 꽃이 피고 더 오래간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겹치지 않게 핀다. 한 줄기가 서로 배려하는 작은 친구들로 모인 듯한 꽃이다. 진 빚이 많아 갚을 것이 많은 나는 미니라스를 보면 고마운 사람들이 생각난다. 한 송이 꽃이 피기 위해 햇빛 흙 바람 물 온도 모든 게 필요하듯 많은 마음 덕분에 시작을 꿈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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