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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꽃차이 May 03. 2024

도전이 망설여질 때, 카네이션

손으로 피워 내는 도전

아이 친구 엄마가 꽃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덕분에 국비로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예산도 적고 화훼는 취업률이 낮아서 통과하기 어렵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확률을 높일까 고민하다가 국가 자격시험인 화훼장식기능사 필기에 도전했다. 시험까지 응시했다면 열심히 배우려는 의지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을까 싶었다. 신청서도 자필에 정자체로 가득 채워 정성을 들였다.


필기시험은 어렵지 않았다. 수강 가능한 과정을 찾기가 어려웠다. 대부분이 아이들이 돌아온 후인 오후 5~6시에 마쳤다. 거리도 가까워야 했다. 감사하게도 첫째 아이의 유치원과 둘째 아이의 어린이집 사이에 4시간 과정을 운영하는 꽃 학원이 있었다.


심사 기간은 담당자의 여름휴가까지 겹쳐 길고 길었다. 애써 찾은 수업 시작일도 아슬아슬했다. 마냥 기다리기만 하기에는 오랜 육아 후 생긴 시간이 아까워서 자비로 꽃다발, 꽃바구니 과정을 배웠다.


마침내 합격 통보를 받은 날, 대학 합격보다 기뻤다. 긴 육아 후 용기 낸 첫 도전이 이렇게 성공했다.     


카네이션은 여러 꽃 사이에서 돋보이는 고급 꽃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오래가는 꽃 중의 하나다. 카네이션을 3주 이상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아직 몽우리일 때 사 오면 서서히 핀다. 안 핀 상태에서 사면 피우기 어려운 꽃들도 있으니 모든 꽃에 적용할 수 있는 팁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품질 좋은 카네이션을 사는 것이다. 재배지마다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꽃 얼굴이 작고 윤기 없는 데다 줄기가 가느다란 중국산 카네이션에 익숙해서, 좋은 카네이션을 더 많이 보여 주고 싶다. 국산도 좋지만, 최상급 콜롬비아 카네이션을 사면 얼굴이 크다. 꽃잎까지 단단하면서 줄기는 두 배가 길고 손가락만큼 굵다. 출하 전 처리 기술이 좋아서 오래가기도 한다.     


수백 송이의 카네이션을 여기저기 보내는 어버이날, 사람들은 큰 차이를 못 느끼더라도 최상위 등급을 쓴다. 늘 좋은 것은 자식에게 준 부모님께 최고의 정성을 담아 드리고 싶어서다.


어버이날과 카네이션은 1907년, 미국의 안나라는 여성에게서 시작했다. 그녀는 시들 때 꽃잎이 안으로 오므라드는 모습에서 자식을 품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고 한다.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흰 카네이션을 나눠 주고 어머니날 지정 캠페인을 벌여 입법화했다. 그 뒤 돌아가신 어머니에게는 흰 카네이션을, 살아 계신 어머니에게는 붉은 카네이션을 드리게 되었다.     


카네이션은 컬러가 가장 다양한 꽃 중 하나이다. 염색으로 원하는 컬러를 만들기도 좋아서 어떤 작품에든 어울린다. 수업할 때, 나는 사람들이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우아한 빛깔의 카네이션을 가져가서 감탄을 끌어낸다.


와…. 이게 카네이션이에요? 정말 고급스럽네요!
빈티지한 색은 처음 봐요! 꽃에 이런 색도 다 있군요!
짙은 와인색이 겨울에 어울리고 섹시하네요! 마음에 쏙 들어요.
염색하니 결이 붓으로 그린 느낌이에요. 그림 같네요!  


이렇게 대한민국의 꽃 안목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은 작고 원대한 소망도 있다. 다이소조차도 비주얼과 퀄리티가 발전하고, 대부분의 영역에서 눈이 높아진다. 그런데 꽃은 유난히 느린 것 같아서 한 발짝 보태고 싶다. 눈높이가 높지 않으니 이 정도면 괜찮다고 하기보다,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을 세계를 알려 주고 싶다.    

 

바로 쓸 카네이션도 덜 핀 상태에서 사 오는데, 손으로 피워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더 오래 싱싱하다. 먼저 꽃잎과 줄기 사이의 말랑한 초록 컵 모양 꽃받침을 조몰락조몰락 만져 준다. 그다음 꽃잎을 중앙에서 아래로 쓸어내리듯 쓰다듬어 주면 발레리나 스커트처럼 활짝 피어난다.


이 보들보들한 손끝 마법을 알려 드리면 다들 신기해하고 행복해하는 모습도 즐겁다. 다른 꽃의 꽃잎은 만지기 조심스러운데, 만질 수 있다는 사실도 특별하다. 자식이 필요한 건 어떻게든 해내는 엄마 마음을

닮았다


조심할 점도 있다. 줄기가 튼튼하지만 툭 튀어나온 마디 부분은 자칫 뚝 부러질 수 있다. 마디는 더 치밀한 조직이라 물을 빨아올리기 어렵기 때문에, 자를 때 마디를 피해서 잘라야 한다. 인생에도 마디가 생기는 시간이 있다. 더 오래가기 위해.


정체된 듯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마디 같은 시간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공백기 대신 마디기로 말이다. 도전, 성장, 결과, 인정, 응원 없이도 버틴 줄기는 무엇이라도 있는 줄기보다 강하다. 겉에서 보기에는 하나도 자라지 않은 듯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결코 진공이 아니다. 같은 1mm² 안에 수십 수백 배의 세포가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튼튼한 마디를 만들었으니 이제 뻗어 보자. 손끝으로 피우는 카네이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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