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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꽃차이 May 06. 2024

꽃 수업에서 다 못 한 말

꽃 만지며 내 마음 어루만지기

수업할 때마다 꽃을 오래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보는 알려 드렸어요. 하지만 이 말까지 다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죠. 꽃을 오래 보는 법은 내 마음을 돌보는 일과 닮아 있답니다.


Q : 햇볕 쬐어 주어야 하죠?

꽃은 절화와 분화로 나뉜답니다. 화분에 심은 꽃은 햇빛과 바람이 필요하지만 잘린 꽃(절화)은 잘린 순간부터 노화가 시작되어요. 밭에 있는 상추를 팔기 위해 자르고 포장하면 냉장 보관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피부에 좋지 않은 것은 꽃에도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 기억하기 쉬워요. 햇빛, 강한 바람, 더위, 추위, 히터 바람, 에어컨 바람, 과습, 건조 모두 피해야 해요.


사람도 상황에 따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죠? MBTI가 같은 사람도 세밀하게는 모두 다르고요. 그런데 ‘같은 꽃이니까 똑같이 해 주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듯 무심히 대할 때가 있더라고요. 왜 반응이 다를까 이상하게 생각하고요. 내 아이도 작년의 아이랑 올해의 아이가 다르고 나도 그런데 말이죠. 꽃도 사람처럼, 사람도 꽃처럼 대해 보면 어떨까요?     


Q : 잎은 얼마만큼 떼 주어야 하나요?

꽃에 따라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0~3개 남기고 다 제거해야 해요. 꽃을 다듬는 것을 ‘컨디셔닝’이라고 하죠. 최상의 컨디션이 지속(ing)되도록 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답니다. 제일 먼저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다면 화병에 꽂을 수 있도록 적절히 잘라서 나누고 잎을 제거해 주어야 해요.


잎도 예쁜데 아깝다고 하시는 경우가 많답니다. 그 마음이 예뻐서 미소가 지어지지요. 하지만 잎이나 가시가 물에 잠겨 있으면 물이 상한답니다. 그러니 화병에 잠기는 부분은 다 제거해 주어야 해요. 한 줄기에서 빨아들이는 물을 잎과 꽃이 나눠 가지게 되니 잎이 많으면 꽃에 가는 물이 적어지고요.


수업 준비하기 위해 다듬는 잎과 가지는 5인 수업만 되어도 20ℓ 쓰레기봉투를 가득 채운답니다. 그럴 때 저는 생각해요. ‘내 삶에서도 아까워도 없애야 할 게 있지 않을까?’ 하고요. 더 중요한 것에 에너지를 보내기 위해서, 꽃 한 송이 오래 피게 하기 위해서요.     


Q : 사선으로 자르는 이유는 뭐예요?

직각으로 자르면 줄기가 물을 빨아올릴 수 있는 면적이 동그란 원이 되죠. 사선으로 자르면 길쭉한 원이 되어서 면적이 훨씬 커진답니다.  카라, 튤립, 히아신스처럼 줄기가 파 같은 재질인 꽃들은 예외! 직각으로 잘라 주세요. 사선으로 자르면 양파 껍질처럼 끝이 벗겨지면서 돌돌 말리거든요.


수국처럼 물을 좋아하는 아이, 단단한 나무줄기는 물을 많이 빨아올릴 수 있도록 최대한 뾰족한 사선으로 잘라 주세요. 특히 나무는 줄기 끝을 반으로 갈라 주면 좋답니다.


상황을 바꾸거나 더 많은 에너지를 쏟기 어려울 때, 꽃 자르는 방법을 떠올려 주세요. 어쩌면 아주 어렵지 않게 내가 에너지를 더 공급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같은 꽃도 자르는 방향만으로도 물을 더 머금을 수 있듯이요.     


Q : 어디에다 두면 좋나요?

선선하고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 두면 좋아요. 특히 내일 줄 꽃다발은 춥지 않고 햇빛이 들지 않는 현관이나 베란다를 추천해요. 잘린 상추처럼, 잘린 꽃이 좋아하는 온도는 냉장고 온도라고 기억하면 쉽답니다. 꽃마다 적절한 온도가 다 다르지만 보통 5~15예요. 실내에서는 유지하기 어려운 온도지요. 그러니 꽃 시장이나 꽃 냉장고가 있는 꽃집이 아닌 곳에서 꽃을 사면 얼마 못 볼 확률이 높아요. 꽃 시장에 입고될 수 있는 등급이 못 되는 꽃이거나 제대로 다듬어지지도 보관되지도 않았을 수 있으니까요.


가장 온도에 예민한 꽃은 튤립과 작약이에요. 조금만 따뜻하면 금방 피고 시원하면 훨씬 오래간답니다. 튤립은 대가 튼튼하고 곧은 것을, 작약은 몽우리가 살짝 피려고 하는 것을 사면 좀 더 오래 볼 수 있어요. 겹 튤립과 겹 작약은 꽃잎이 조금 덜 벌어지고요.


처음 꽃다발을 배우면 힘 조절도 어렵고 꽃을 오래 손에 쥐고 있다 보니 줄기가 따뜻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플로리스트들은 빠르게 작업해야 한답니다. 찬물에 손을 담근 후 작업하기도 하고, 꽃을 싣고 오는 차 안이나 작업실에서도 난방을 안 켜기도 해요. 사랑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말, 너무 오래 잡고 있으면 안 된다는 말 – 꽃 작업하며 생각난답니다.     


Q : 화병은 씻어야 하나요?

아무리 줄기를 깨끗이 다듬고 매일 깨끗한 물을 갈아 주어도 화병이 안 깨끗하다면 물이 깨끗할 수 없겠지요. 열심히 하는데도 잘 안 된다면 무언가 근본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될 때 저는 안 씻어 둔 화병을 떠올려요.     


Q : 물은 많이 넣어 줄수록 좋은 거죠?

역시 꽃마다 다르답니다. 일반적으로 줄기가 단단한 꽃은 물을 많이 넣어도 괜찮아요. 하지만 줄기가 약하거나 솜털이 있는 종류는 물을 적게 넣고 자주 갈아 주는 게 좋아요. 약하면 잘 물러지고 솜털이 있으면 박테리아가 잘 생기거든요. 아무리 좋은 것도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양이 다르듯이요.     


Q : 물은 얼마나 자주 갈아주어야 하나요?

매일 갈아 주는 게 좋아요. 덥지 않고 절화보존제를 넣었다면 이틀에 한 번도 괜찮답니다. 아 줄 때마다 줄기를 조금씩(1~2mm) 라 주세요. 물을 빨아올리는 곳은 물러지기 쉽거든요. 처음에는 상당히 귀찮고 보통 일이 아니네 싶을 수 있어요. 한번 해 보면 훨씬 싱싱하게 오래가니 계속하게 될 거예요. 물을 갈아 주는 시간이 꽃을 더 가까이서 보고 매일 만져 보게 되는 시간이 되고요. 꽃이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라 친구가, 가족이 되는 순간이죠.


반려 식물이나 동물을 키워 본 분이라면 알 거예요. 매일 챙겨야 해도 그 이상의 기쁨이 있다는 것을요. 생명이니까요. 매일 살펴보고 산책시키고 돌보는 그 루틴이 나를 살아 있게 하고 건강하게 하기도 하죠. 엄마들은 가족을 돌보기 위해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고요.


그게 바로 돌봄의 역설이랍니다. 우리에게는 매일의 사랑이 필요해요. 우리 자신을 돌보는 데 익숙지 않은 우리는, 다른 생명을 돌보면서 우리를 돌보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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