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서 알려 주지 않은 것들
처음 꽃을 배울 때는 꽃으로 돈을 버는 방법이 꽃집뿐인 줄 알았다. 일을 익히기 위해 꽃집아르바이트생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야 할 수 있겠지.’라는 내 생각이 현실의 벽을 발견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우선은 대부분 근무 시간이 9시부터 저녁까지였다. 주말 포함도 많았고 거리도 가깝지 않았다. 많은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을 맡아 줄 사람도 없는 나는 지원서를 낼 곳조차 거의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꽃집 사장이 젊다 보니 본인보다 어린 나이의 경력자를 원했다. 4학년을 코앞에 둔 나는 마음이 바빠졌다. 창업 반에서 이론으로 배운 것과 무척 달랐다.
학원에서 취업을 연계해 주는 경우가 있었지만, 당연히 시간이 자유로운 수강생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나의 도전은 결국 또 실패하는 걸까, 현실을 모른 무모함의 대가일까? 배우기만 하고 일은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자괴감에 눌렸다.
배움과 일 사이 그 간극은 ‘혼란해’라는 바다 같다. 경험해 본 사람만 아는, 태평양에 나침반 없이 나룻배를 띄운 막막함이 넘실댄다. 이 바다를 먼저 건너간 선배들의 책도 읽고 강의도 들어 보지만, 나의 삐걱거리는 배에는 그들에게 탑재된 기능이 없다. 집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라는 밧줄이 달려 있어 멀리 나갈 수도 없다. 이 얕은 바닷가에는 물고기도 안 보인다. 유지비도 안 나오고 마음만 흔드는 배를 이제 그만 조용히 거둬들일까 싶어진다.
벚꽃이 떨어져 아쉬운 봄과 장미가 피는 여름 사이, 그때가 찔레꽃이 피는 시기이다. 꽃 모양도 크기도 꽃잎 두께도 벚꽃과 장미의 중간쯤이다. ‘벚꽃이랑 장미를 섞어 주세요.’라고 주문 제작한 작품 같다. 또 하나의 요청 사항, ‘향이 초여름 더위를 잊을 만큼 짙게 해 주세요.’도 제대로 반영되어 있다. 장미보다 가는 줄기라서 여리여리해 보이지만 단단하고 가시가 촘촘하다. 나지막해서 눈에 띄지 않지만 매년 반드시 그리고 꽤 오래 피어 있다.
그해 길고 길었던 봄과 여름, 그 조그만 찔레나무가 있는 모퉁이를 아이 학원 데려다주느라 매주 지나갔다. 처음에는 무심히 보았다. 이제 졌겠지, 싶으면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여전했다. 어느 날,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찔레와 눈이 딱 마주쳤다. 초면이 아니라 한마디 할 만도 한데 찔레는 그저 잠잠히 날 바라보았다. 곧 초록 불. 결국 내가 먼저 말했다.
그래 버텨 보자!
나도 너처럼 오래 피어 있어 볼게.
너도 다음 주에도 피어 있어 줘.
찔레 동지가 되어 누구나 겪었을 이 시기를 나도 묵묵히 지나가 보기로 했다. 찔레의 꽃말, ‘고독’, ‘자매간의 우애’처럼.
눈길을 확 끄는 꽃들이 피고 지는 사이에 누가 보지 않아도 틈새를 메우는 꽃들이 있다. 이런 꽃들을 알릴 때 기쁘다. 유명하지 않아도 멋진 나의 친구를 소개하듯 하나하나 이름과 매력을 정성스레 문장에 담아 본다. 주목받지 않아도 자리를 지키는 대부분의 사람 같은 꽃들. 그들이 내 마음의 징검다리가 되어 줬듯, 당신도 그 손을 잡아 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