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의 부케는 당연히 장미였다

좋아하는 꽃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by 한꽃차이
행복해 보였다. 아지랑이 같은 베일을 쓰고 팔에 가득 장미를 안고서 가냘픈 모습으로 눈을 빛내는 그린 게이블즈의 첫 신부였다.

앤의 결혼식 장면이다. 키가 크고 가녀렸으니 줄기가 긴 장미를 한아름 들어도 신부를 가리지 않고 어울렸을 것이다. 사실 마른 170cm이면 뭐든 안 어울리기 어렵다. 아쉽게도 아담한 신부에게는 작은 부케가 어울린다.


빨강머리 앤에서 사랑을 상징하는 꽃은 언제나 장미이다. 발표회 날 다이애나가 한 말을 기억하는지?

네가 요정 연극을 마치고
무대에서 뛰어 내려갈 때에
네 머리에 꽂은 장미가 한 송이 떨어졌어.
그걸 길버트가 주워서
자기 재킷 앞주머니에 꽂는 걸 내가 봤어.
정말이야.

이 로맨틱한 장면은 길버트의 마음을 나타낸다.


몽고메리는 앤의 마음 역시 장미로 비유한다. 길버트가 죽어가고 있다는 말에 눈물로 밤을 지새운 앤이 회복의 소식을 들었을 때도 장미가 피어있었다.

앤은 버드나무 아래 서서 큰 걱정이 물러간 달콤함을 음미했다. 안개가 낀 숲의 아침은 매력이 넘쳐흘렀다. 가까운 구석에 수정 같은 이슬이 달린 장미가 갓 피어나 있었다.

앤이 처음으로 길버트에게 두근거림을 느낀 순간에도 장미는 빠지지 않는다.

어쩌면 초록 덮개를 벗고 나온 빛나는 심장을 지닌 장미꽃처럼, 사랑은 다정한 친구 사이가 자연스럽게 발전한 것인지도 모른다.

더욱 명확하게 사랑의 장미라고 이야기하는 곳도 있다.

길버트는 몸이 회복된 뒤로 초록 지붕 집에 자주 찾아왔고, 예전의 우정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앤은 그걸로 만족할 수 없었다. 사랑의 장미에 비하면 우정의 꽃은 창백하고 향기가 없었다.

앤의 친구가 청혼받는 장면에서도 장미는 메인 테마다.

장미는 사랑의 꽃, 세계는 몇 세기 동안이나 장미를 그렇게 찬양해왔어요.

물론 이 남자 오웬은 소설가이기에 이런 오돌거리는 멘트를 담백하게 늘어놓을 수 있었다. 달달한 멜로 영화에만 출연하고 다큐에는 스카우트되지 않는 배우인 셈이다.


이쯤 되면 빨강머리 앤 드라마에서 장미의 등장은 사랑을 노래하는 주제곡이 흐르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부케가 되기에 충분할까?


신부는 부케로 좋아하는 꽃을 선택한다. '좋아한다'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BTS를 좋아하는 것은 '동경한다'는 의미, 어떤 장소나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은 '내 취향이다'는 의미, 오래된 담요를 좋아한다는 것은 '편안하고 익숙하다'는 의미이다. 이 중에서 부케로는 동경하는 꽃이 인기가 많다. 어렸을 때 마당에 피어있던 꽃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신부들이 실제로 본 적이 거의 없을 작약, 은방울꽃, 부바르디아 부케가 샤넬 지갑처럼 비싼 이유이다.


앤이 좋아하는 꽃은 수없이 많았다. 아마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모든 꽃을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앤이 동경하는 꽃은 장미뿐이었다. 그중에서도 분홍 장미였다.

어머, 보세요, 벌써 들장미 한 송이가 피었어요! 정말로 아름답죠? 저 꽃은 장미라서 정말 좋을 거예요. 장미들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장미들은 정말로 아름다운 얘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분홍색은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색깔이 아니겠어요? 저는 분홍색이 좋아요.


신부에게 부케는 그저 예쁜 꽃장식이 아니다. 오랜 꿈이 손에 잡히는 순간이다. 나는 버킷리스트를 이룬 기분을 상상하면 처음 부케를 든 촉감이 생각난다. 결혼식은 한 번이어도 인생의 부케는 여러 번 꿈꿀 수 있어 오늘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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