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의 무기
클레오파트라는 그저 절세미인이 아니었다. 9개 국어와 수사학에 능통해서 지적인 매력이 넘쳤다는 기록이 있다. 아쉽게도 지적인 매력은 가까이서 대화를 해야 드러난다. 그런 그녀가 멀리서부터 강렬히 아름답게 보여야 했던 순간이 있었다.
로마의 실세, 안토니우스를 첫눈에 반하게 할 계획에 붉은 장미는 강력한 무기였다. 황금빛 배에 무릎 높이까지 장미를 가득 채우고 다가오는 여인에게 그는 무방비상태로 단숨에 점령당했다. 망막보다 먼저 폐포에 정복의 깃발을 꽂아버리는 아찔한 향기 선발부대, 흩날리며 손쓸 수 없이 건너오는 장미꽃잎 본부대, 푸른 강물에 대비되어 더 이글이글 타오르는 치명적인 붉은 장미 후발부대, 꽃에 파묻혔어도 꽃을 능가하는 신비로운 여왕. 역사의 비디오테이프를 손에 넣게 된다면 꼭 보고 싶은 장면이다.
클레오파트라는 평소에도 어마어마한 장미목욕과 장미향수를 즐겼다. 안토니우스를 만날 때마다 장미를 가득 장식해서 자신을 장미로 기억하게 한 영민한 여인이었다. 안토니우스는 그녀의 매력에 10년을 사로잡혀있다가 결혼했다. 이혼을 감행하고 영토까지 선물한 이 사랑은 로마가 그에게 등을 돌리게 했다. 그럼에도 죽어가는 순간까지 자신에게 장미 꽃잎을 뿌려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 클레오파트라는 그에게 장미 그 자체였다고 할만하다.
동서양을 넘어 역사 내내 장미는 사랑의 상징이었다. 첫눈에 매료시키는 이 꽃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닮았다. 눈으로 보고 있지 않을 때도 맴도는 향기, 꽃잎 하나하나가 소용돌이치며 심장을 저격하듯 중앙으로 모여드는 아름다움. 남자들이 가장 많이 선물하는 꽃이기도 하다. 프로포즈에서도 압도적 선택을 받는다.
신부님들 역시 장미부케를 제일 많이 선택하신다. 매주 많을 때는 과반수, 적어도 30%는 차지한다. 이유는 5가지 정도로 짐작한다. 취향이라서, 무난해서, 꽃말이나 컬러 때문에, 풍성함을 표현하려고.
첫째는 김연아가 추구미인 분, 피겨퀸의 장미부케에 반한 분 또는 심플하고 우아한 것을 좋아하시는 분. 드레스도 깔끔한 스타일로 선택하셨을 확률이 높다.
두 번째는 가장 무난한 것을 선택하시는 경우다. 인테리어도 안전하게 화이트 우드로 할 것 같은 분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모르는 꽃과 온갖 부케까지 찾아보는 수고와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을 수도 있다. 결혼 준비에는 부케 외에도 온갖 결정할 거리와 추가옵션이 산재해 있으니까.
장미는 꽃말까지도 결혼식에 무던하다. 하얀 장미는 청순, 순결. 분홍 장미는 사랑의 맹세, 행복한 사랑. 레드 장미는 열정적인 사랑, 아름다움. 레드 장미부케는 겨울시즌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지만, 분홍 장미부케는 은근히 꽤 많이 선택한다. 꽃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러블리한 색감이라 사진도 잘 나온다. 신부화장에 하얀 피부표현 못지않게 은은하게 물든 볼터치가 중요하듯이. 같은 이유로 피치 톤의 장미도 화이트 장미만큼 주문이 많다.
이따금 흔치 않은 색 장미 부케를 주문하는 신부님도 있다. 연보라, 노랑, 레드 등. 원하는 컬러를 장미가 가장 확실하게 표현해 주기 때문일 거다. 개성이 확실하거나 신부대기실이나 피로연에서 서브부케로 활용할 계획이거나. 어느 쪽이든 나다운 삶을 살아갈 그녀들을 응원하게 된다.
같은 부케도 추가금을 더해 '풍성하게' 주문하시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분들이 반갑다. 여왕의 아우라를 10~20만 원으로 구입한 안목 있는 신부님을 진심으로 칭찬해드리고 싶다! 드레스가 심플할수록 존재감 확실한 부케는 어마어마한 역할을 한다. 큼직한 고급장미를 사용하거나 원래 크지 않은 품종이라도 아낌없이 넣을 때의 설렘이란! 향기까지 고급진 장미이면 더욱 감사하다. 한송이 한송이, 부케에 꽃을 넣기 전에 우선 내 코에 향기부터 넣는다. 저절로 잠시 눈을 감으면서 숨을 훅 들이마시게 된다.
여왕도 부케는 평생에 단 한번 들 텐데 매주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부케를 만드는 동안, 나는 피겨여왕이든 영국여왕이든 부럽지 않다. 나의 귀한 신부님도 여왕이 부럽지 않기를 바란다. 장미부케를 선택한 신부님이 여왕처럼 돋보이도록, 다음 글에서는 장미부케 고르는 노하우를 건네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