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디자인인데 왜 부케샵마다 가격이 달라요?

지하상가 아크릴 스웨터와 백화점 캐시미어 스웨터

by 한꽃차이

"보풀이 잔뜩 일어난 파란 스웨터를 입고, 대단히 지적인 척하는데, 넌 자기가 입은 색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어. 이 색은 그냥 블루나 터콰이즈가 아니야. 정확히 ‘세룰리안블루(Cerulean Blue)’야. 또 당연히 모르겠지만 2002년에는 디자이너 오스카 데라렌타와 이브 생로랑이 모두 세룰리안블루 컬렉션을 했지. 세룰리안 블루는 엄청 인기를 끌었고 백화점에서 명품으로 사랑받다가 네가 애용하는 할인매장에서 시즌을 마감할 때까지 수백만 달러의 수익과 일자리를 창출했어. 그렇게 고심해 선택한 스웨터를 입고 있으면서 자신은 패션계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다니 그야말로 웃기지 않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떠올렸다면 정답이다. 이 명대사 덕분에 패션을 잘 모르는 사람도 깨닫게 됐다. 내가 아울렛에서 득템한 옷이 이름도 어려운 유명 디자이너가 예전에 한 선택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장면에서 미란다에게 느껴지는 태도는 오만함보다는 자부심이다. 내가 열정을 바치는 세계를 당신이 잘 모른데도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는 꼿꼿함과 긍지. 이 영화의 실제 모델이 제작 전에는 그 사실을 강력히 부인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매우 마음에 들어 한 건 그 때문일 거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명품브랜드, 백화점 브랜드, 스파 브랜드, 아울렛, 보세로 내려오는 유행의 흐름은 디자인이 들어간다면 어느 업계든 다르지 않다. 화병과 조화 트렌드를 보는 방법도 그래서 어렵지 않다. 집안을 꽃으로 잘 꾸미는 국내외 유명 인플루언서들의 새로운 아이템을 눈여겨본다. 까사미아, 이케아, 모던하우스, 다이소에 종종 간다. 홈페이지에서도 '화병, 조화'를 검색한다. 좀 더 비싼 곳에서 유행한 디자인이 반드시 더 저렴한 곳에서 비슷하게 출시된다. 결국 쿠팡과 테무에서도 살 수 있게 된다.


생화도 마찬가지다. 프라다 급인 해외 유명 플로리스트들이 새로운 꽃을 쓰거나 디자인을 쓰면 국내 탑 플로리스트들이 배워오거나 모방해서 고가의 수업을 연다. 그 아래로 점점 내려간다. 이 유행이 끝날 때쯤 새로운 유행이 시작된다.


부케는 연예인이 어떤 부케를 들었느냐가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다. 신부님들은 꽃이름 대신 김연아 부케, 송혜교 부케 등 연예인 이름으로 검색한다. 쓰인 꽃의 가격이 바로 상승하거나 구하기 어려워진다. 꽃은 공장에서 찍어내지 않으니 따라 하기 쉽다. 높은 단가를 받는 유명 부케샵이 이전에 없던 디자인을 만들면 바로 비슷한 부케가 온라인에 저단가로 등장한다.


이쯤이면 부케 만드는 플로리스트가 에둘러하고 싶은 말을 짐작하지 않을까 싶다. "같은 디자인인데 왜 부케샵마다 가격이 달라요?"라는 질문에 대해 길게 푼 힌트도. 겉보기에는 똑같아도 지하상가에서보다 브랜드 있는 매장에서 사면 옷태가 다르다는 걸 아는 사람, 아크릴보다는 모나 캐시미어가 들어간 스웨터를 사서 따뜻하게 오래 입으려는 사람이면 공감하지 않을까.


좀 작은 카라를 딱 맞게 사서 남김없이 쓰는 샵이 있고, 훨씬 좋은 카라로 넉넉히 구입해서 골라 쓰는 샵이 있다. 두 군데 모두 근무해 봤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2단으로 만들어서 50% 수익을 낼 것인가, 2~3배 가격인 카라를 5단 사고 절반 쓸 것인가. 오히려 후자가 수익률은 낮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부케샵과 웨딩, 꽃집을 함께 한다. 부케로 쓰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꽃다발 꽃바구니에는 괜찮은 꽃은 꽃집에서 사용한다. 그렇기에 더욱 꼼꼼히 선별해 낸다. 부케에 적합한 꽃이 모자라다고 기준 이하의 꽃을 쓰지 않는다. 퀵비를 들이거나 새벽에 가서 다시 구입한다. 사실 꽃을 골라내고 완벽히 다듬는 시간이 만드는 시간보다 더 걸릴 때도 많다.


강남역 아크릴 스웨터와 백화점 모직 스웨터는 나란히 있을 일이 없다. 다른 샵의 두 부케가 한 프레임에 담길 일이 없듯이. 담는다면 어느 신부라도 한눈에 알아볼 거다. 오직 디자인만 비슷하다는 걸. 카라도 장미도 꽃크기와 줄기 굵기부터 2~4배 다르다. 원가는 골라낸 꽃만으로도 2~3배, 사입한 꽃으로는 4~5배 높다. 신선함은 말할 것도 없다.


리본강사자격증 있는 플로리스트는 리본 가격도 꽃가격만큼 천차만별임을 안다. 번쩍이지 않고 차분한, 실크드레스처럼 윤기가 딱 알맞게 은은한 리본을 여러 번 감아 아낌없이 쓴다. 손이 살짝 큰 신부님도 넉넉히 잡도록, 그렇잖아도 온종일 피로할 신부님이 줄기의 굴곡 대신 리본의 쿠션감을 느껴서 편안하도록. 한 롤이 금방 소진된다. 리본 마감도 디테일도 차원이 다르다.


결혼식을 마치고 나서의 꽃상태 역시 많이 다를 거다. 부케 오브제 만드는 분들은 부케를 해부하며 온갖 차이를 실감한다고 한다. 만든 실력 차이, 마감 차이, 무엇보다 꽃의 품질과 신선도 차이. 부케에도 태그가 붙으면 좋겠다. 하이엔드급 카라 70%, 최상급 아스틸베 20, 중상급 스마일락스 10%. 수입국, 제조연월일까지.


물론 브랜드, 경력, 샵 위치 등 여러 다른 요인도 있다. 모든 샵을 분석하지 않았으니 가격에 퀄리티가 반드시 비례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실속형으로 많이 만드는 부케샵도 필요하다. 웨딩홀과 웨딩플래너가 서비스로 제공하는 부케, 던질 때 쓰려는 서브부케는 더욱 단가가 높을 수 없다. 신부님에 따라 중요도와 우선순위도 다르다.


때로 아크릴 100%인 니트를 예뻐서 살 수도 있다. 유행 타는 디자인이니까 어차피 한철 입을 용도로. 그렇다고 캐시미어가 들어간 니트가 같은 니트는 아니다. 고급 소재가 주는 보드라운 아늑함은 촉감에서 맴돌지 않고 한겨울 마음까지 포근하게 감싸주니까.


부케에 옷처럼 '섬유 혼용률' 태그가 붙진 않지만, 자부심 있는 플로리스트는 믿는다. 치열하게 고르고 고른 꽃이라 소중한 순간을 더 빛나게 할 거라고,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 이면에 오롯이 담은 생명력이 고스란히 전해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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