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영주 Jul 16. 2022

학대 트라우마 이야기 #고백공포증

나에게 성장은 생존의 문제였다

# 학대트라우마 이야기 _ 고백공포증


(먼저, 저는 그분을 모두 용서했고 저격을 하거나 비난을 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글을 씀을 알려드립니다.)


연습생 시절 나를 좋아하는 안무 선생님이 있었다.


새벽마다 전화가 왔다. 좋아한다, 보고 싶다, 택시비를 줄 테니 이리로 와라.


나는 선생님이 너무 좋았다. 남자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


그래서 미안했다.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음이 미안했고,


또 많은 연습생들 중 나를 좋아해 준다는 게 고마웠다.


그래서 정중히 거절을 했다.


그때부터 극심한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연습생 친구들은 물었다. 왜 너한테 그러는 거냐, 저 사람 왜 너를 미워하는 거냐


나는 그 사람의 치부가 드러나는 게 싫어서


조용히 혼자 일기장에다 기록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3개월을 내리 괴롭혔다.


욕설과 비난, 넌 춤도 못 추는 게 짜져 있어라 , 다시 가운데로 나와라, 내 눈을 보며 섹시하게 춤을 춰라


병신, 미친년, 물 마시러 가는 것도 눈치,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


점점 위축되고 기가 죽어 손을 모으고 다녔다.


어깨가 굽어지고 고개가 숙여지고..


엄마가 너 왜 그렇게 비굴하게 매일 손을 몹고 어깨를 굽히고 있냐며 지적할 때까지


내 상태를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괴롭힘이 지속되던 어느 날, 결정적인 한방이 들어왔다


“너 이러다 나 때문에 나가겠다?”


별말이 아닐 수 있는 이 말에 터졌다.


부들부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채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나는 더 이상 못한다. 이제 끝이다.


아이돌이고 뭐고 끝이다.라고 말했다.


엄마에게 그간의 일기장을 보여줬다.


내 일기장엔 모든 것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언제 몇 시에 전화해서 뭐라고 말했는지


언제 어떤 식으로 괴롭혔는지


3개월 내리 매일을 울었던 것 같다.


그러다 한계가 찾아왔고 스톱을 외친 것이다.


엄마가 회사에 찾아갔다.


‘그만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회사에서는 왜 말하지 않았냐며 그 선생님을 잘랐다.


큰 죄책감이 들었다. 분명 당한 건 나인데 미안했다.


정말 미안했다.


그 후로 그 사람의 이름 앞 글자만 들어도


발작이 났다.


하루 종일 우울하고 눈물이 났다.


부디 그 사람의 이름을, 내 앞에서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그 후로 몇 년이 지난 뒤 그 사람을 잊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다시 그 사람을 채용했다.


이사님께 달려가 말했다


너무한 거 아니냐,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이사님은 미안하고 했다. 진짜 사람이 없다고…


사과를 듣지도 못하고, 화해를 하지도 못한 채


또 몇 년을 얼굴을 보며 지냈다.


세상은 나의 사정을 봐주는 곳이 아니었다.


실리로 움직이는 세계. 내 고통은 관심의 대상도 고려의 대상도 아니었다.


무덤덤해져야만 했다.


달리 무슨 방법이 있기는 했는가.


그렇게 나는 점점 소시오패스처럼


어떤 사건을 마주해도


덤덤한, 그 상황이 weird 하게 만 느껴지는 사람이 되었다.


일기장에 보면


‘욕조를 채울 정도의 눈물'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그러한 눈물을 쏟고 나면 사람이 메마른다.


잠시 메말랐다가 금방 다시 살아나는 나이지만


몸에 기억된 트라우마는 남아 아직도 나를 괴롭힌다.


긴장하고, 무섭고, 위축된다.


인도 유학시절 왕따로 시작된 학대의 역사는


이렇게 사람을 바꿔가며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나의 성장은, 이런 나를 지켜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에


미친 듯 달려서 얻어내야 할 무언가였다.


성공과 성취를 향해 달리는 것은 내 생존에 꼭 필요한 그런 존재였다.


이 이후로, 나는 누군가 나에게 고백하는 것이 무섭다.


나를 좋아해 준다는 건 행복한 일이어야 하는데


그 사랑이 폭력으로 변해 나를 미워하고 복수할까 봐 무섭다.


내가 원하는 건 존중이다. 내 마음을 존중해 줬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인생의 장르를 바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