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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영주 Jan 04. 2021

'아이돌 데뷔'라는 꿈 하나를 이루고 마주하게 된 것

거울 속에 내 모습은 텅 빈 것처럼 공허해

 

연습생 시절 쓴 일기들
연습실 거울 전체에 김이 서릴 정도로 연습 & 다이어트 스트레스로 울고있는 모습


아이돌 연습생 기간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많은 이들은 '아이돌 연습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름답게 꿈을 향해  달려가는 소녀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나는 그 단어를 들으면 하루하루 고통을 인내하며 피 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기와의 싸움 그리고 투쟁을 벌이고 있는 강한 소녀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내게도 연습생 기간은 실로 피 땀 눈물의 시간이었다. 어린 나이에 너무 빨리 사회에 나가 냉정함에 마주하며 강하게 단련되는 시간이었다. 


  회사는 하루아침에 몸무게가 50kg를 넘겼다고 1년간 함께 연습했던 연습생 친구를 잘라낸다. 화장실에서 틈틈이 수분이라도 빼자며 침까지 뱉었는데도 야속한 체중계는 절대 50을 향해주지 않았다. 오랜 기간 함께 연습한 친구와 생 이별을 하게 된 슬픔도 컸지만 우리도 저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먹은 음식을 억지로 토해내고 보이는 살들을 꼬집고 때리며 스스로를 학대하게 되는 우리들의 모습이 더 슬펐다.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하루 종일 눈치를 보며 10시간 이상씩 무릎이 닳도록 춤 연습을 했다. 몸이 힘든 것은 견디기 쉬웠지만, 끊임없이 눈치를 보며 긴장 속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연습생은 연예계의 가장 밑바닥으로 가장 연약한 존재다.  우리의 연약함은 그 세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력을 쥐어준다. 나의 연약함이 누군가에게 권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에 자주 놀라곤 했다. 물 마시는 거, 걷는 것, 웃는 것 , 밥 먹는 것, 화장실 가는 것 등등 그 모든 행동 하나하나 눈치를 보며 생활을 했다. 눈치를 줬기에 눈치를 봤다. 우롱하는 듯 협박하는 듯, 처음으로 가장 연약한 존재들을 통해 권력을 가져 본 이들은 그렇게 그것을 즐겼다.


그들은 즐겼으나 우리는 괴로웠고 슬펐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데뷔라는 꿈이 있으니까. 나의 꿈이 곧 약점이 되었다. 무엇 하나 잘못 눈에 띄어 미움을 받고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되느니 그것들을 견디는 편이 나았다. 우리는 데뷔를 하면 이 모든 것들이 끝난다는 희망으로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었다. 


그렇게 연습생 3년, 인내의 시간을 끝내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데뷔를 하게 되었다.

주말 하루 못 쉬고 새벽까지 토를 해가며 연습을 했고, 그렇게 무릎이 다 망가진 후 얻어낸 데뷔였다.

같은 꿈을 꾸던 수많은 친구들과 가슴 아픈 이별을 하고, 불안에 떨며 갖은 모욕을 당해 욕조를 채울 정도의 눈물을 흘린 뒤 얻어낸 결실이었다.


 데뷔를 하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기뻤다. 나의 고통의 시간이 이렇게 보상을 받는구나, 드디어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무대에 서는구나 하며 무척 기뻤다. 나를 무시하고 막 대했던 그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친절해졌달까. 꿈을 이룬다는 것은 역시나 짜릿한 일이었다. 인기가요, 음악중심, 뮤직뱅크 등등  꿈에 그리던 음악 프로그램 무대에 섰고 각종 예능, 라디오 방송까지 나가며 신나게 활동을 했다. 그렇게 음악 차트에서도 꽤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두 달간의 활동을 마쳤다. 


그런데 이게 웬일. 행복의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활동이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갑자기 엄청난 허무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분명히 꿈을 이뤘는데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린 것처럼 공허하고 어딘가 모르게 아파왔다.  

딱 데뷔 까지만 생각하며 달려왔고 그 후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막연히 데뷔를 하면 행복할 것이고 좋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그 후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아이돌 데뷔라는 꿈을 이룬 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하나의 미지의 세계였다. 산을 힘겹게 오르고 정상에 서 보니 까마득히 더 큰 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산은 구름에 가리어져 정상이 보이지도 않은 그런 산이었다.  연습생 땐 데뷔라는 목표를 가질 수 있었지만, 데뷔 후엔 내가 목표를 잡았다고 해서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앨범을 내고 활동할 시기를 내가 결정할 수 없었고, 그저 소속사에 결정에 따르며 순번을 기다려야 하는 또 한 번의 인내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다시 연습실에서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보이지 않던 것들, 외면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데뷔 후 몇 번의 앨범을 냈지만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해서 씁쓸하게 방치만 당하다가 회사에서 나갔던 선배 아이돌 언니 오빠들이 보였다. 연습생 시절, 나는 분명 그들을 직접 보아 왔으면서도 한 번도 내 이야기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하며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삶인 듯 바라보았었다. 그게 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비로소 보이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또 운이 좋아 성적이 좋게 아이돌 활동을 하고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은퇴한 선배도 보였다. 그는 계약 기간 동안 최선을 다했고 성적도 좋았지만 막상 아이돌 활동이 끝나고 밖에 나온 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주체적으로 무언가 해 본 경험이 없었고, 배운 게 춤과 노래밖에 없어 그 외에 다른 선택지를 찾아내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다. 그는 바보가 되어 나온 자신을 바라보며 알코올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아픈 감정은 이 모든 것들을 갑자기 마주하게 되며 일어난 것이었다. 

공허함의 원인은 꿈을 이루고 그다음 꿈을 정하지 못함에 있었다. 아이돌 데뷔라는 꿈은 내가 겪는 모든 고통을 견디게 해 주고 내 삶을 이끌어주는 의미이자 원동력이었다. 역설적이게 그 원동력이  꿈을 이룸으로서 사라져 버리자 나는 텅 비어져버리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꿈을 이루고 엄청난 카오스, 공허함에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꿈이 아닌 비전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는데....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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