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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로잉 Oct 21. 2020

팜 오일과 맞바꾼 것들

값싼 식탁, 비싼 대가



0.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저렴한 식자재와 생활용품을 사용하는 대신 비싸디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 있다. 생활 곳곳에 은밀히, 대부분이 모르지만 거의 모든 집에 당당하게 숨어서, 우리의 건강도, 지구의 환경도, 동물의 서식처도 해치고 있는 그것. 그것은 바로 기름야자의 ‘팜 오일’이다.

아보카도와 마찬가지로, 팜 오일 역시 식물성 재료이지만 재배하는 동안 물을 어마어마하게 필요로 하기 때문에, 대량 재배할 시 절대 무해한 존재가 아니게 되어 버린다. 팜 오일이 산업의 한가운데로 옮겨져 주목받기 시작한 이래로, 팜오일 플랜테이션이 무려 남한 크기를 뛰어넘는 규모로 조성되어 같은 규모만큼의 열대우림이 사라졌다.


1. 열대우림이 사라지면서 생겨날 문제점은 말 안 해도 다들 알 것이다. 첫 번째로 동물들의 서식지 파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숲들은 생물 다양성의 핵심지역으로 호랑이, 코뿔소, 오랑우탄, 코끼리가 함께 사는 세계 유일한 곳이라 한다. 이 숲들은 팜 농장으로 인해 계속해서 파괴되고 있고, 그 속에 살고 있는 동물들은 멸종의 길에 들어섰다.


2. 두 번째, 기후위기의 주범. 팜농장을 만들려면 숲을 태우는 방식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는 엄연히 불법이지만 기업들은 공공연히 이 방식으로 농장을 만들고 있다. 열대 우림 대부분의 토양은 탄소를 많이 머금고 있기에, 이를 태울 시 나무가 없어지는 것뿐 아니라, 토양의 탄소까지 대기에 배출하게 되는 것으로 대기오염에 아주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심지어 이 불은 쉽사리 꺼지지 않아 다 타는 데에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고)

인도네시아 전체 탄소 배출량의 60프로가 이 팜 농장에서 나온다고 하니, 더 보탤 말이 없을 지경이다.


3. 대기오염 하나만 걱정해야 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이 농장들은 심각한 토양오염과 지하수 등의 수질오염을 일으킨다.

앞서 말했듯이 이 팜나무라는 것은 자라는 동안 물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필요하여, 농장 주변 지역의 지하수를 끌어 쓰는 통에 마실 물은 메말라버렸고, 온갖 팜트리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살충제와 화학비료 때문에 강의 물은 오염되어 그 속의 생명들도 온대 간대 없이 사라지고 있다. 더불어 어부라는 직종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4미터만 파면 나오던 지하수가 메말라 12미터는 파야 나온다며, 이곳에 원래 살던 원주민들은 이제 시장에서 물을 사 먹고 있다.


4. 물고기를 잡고 지하수를 마시던 원주민들의 삶은 조금 나아졌을까? 오히려 반대이다. 원래의 삶과 그 삶을 지켜주던 숲의 파괴를 반대했던 원주민들은 정부와 거대기업의 압박을 동시에 받으며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환경이 파괴되면서 자급자족하던 삶이 무너지고, 어부, 농부라는 직업을 잃으면서 어쩔 수 없이 팜 농장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그다지 놀라울 것도 없이 실제 노동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단다. 노동력 착취는 물론이고, 미성년자들 역시 노동에 투입되며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5. 좋을게 하나 없어 보이는 팜 오일인데 왜 이렇게나 많이 생산하냐면, 우리 주변 거의 대부분의 공산품에 팜 오일이 사용된다고 한다. 립스틱 등의 화장품, 치약 같은 생활용품은 물론이고, 도넛, 초콜릿바, 온갖 과자에 들어가며, 친환경 신기술인 것만 같았던 바이오디젤에까지 사용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소비재의 절반 가량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렴한 원자재이기에 저렴한 비용으로도 우리의 생활이 풍족해지는 데에 크게 기여를 하고 있고, 저렴하기에 많은 거대 기업들이 기를 쓰고 팜 농장을 운영하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팜오일은 저렴한 대신 우리 몸의 혈관 건강에 나쁘다. 대부분 식물성 오일이 불포화지방산이지만 팜오일은 포화지방산으로 심혈관질환의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저렴한 음식의 대가는 바로 건강인 것이다.


6. 가난하고 어렵고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 그때는 이런 값싼 원자재로 만든 많은 것들 덕분에, 조금 더 먹을 수 있고 조금 더 누릴 수 있어서 고마운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이든 풍족한 세상이 되었다. 기업들이 끊임없이 대량 생산하고 있어 이미 세상에는 너무너무 많은 물자가 넘치고 있는데, 굳이 저렴한 원자재를 이용해서 물건을 대량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이 것이 과연 누구의 배를 부르게 해주는 걸까.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계속해서 버리는 생활이 계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구는 아주 크지만, 무한한 자원은 아니기 때문이다.

값싸고 효율적인 팜오일을 과다하게 소비함으로 인해 치러야 하는 대가들이 너무나 무시무시하다 보니, 더 이상 팜오일이 값싸게 느껴지지 않는다.

숲의 값어치, 공기와 물의 값어치는 과연 누가 치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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