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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윤 Oct 10. 2024

인바운드

prepare #2

승무원은 굉장히 특수한 직군이다.

남들이 일할 때 쉬거나 남들이 쉴 때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인바운드라 함은, 타국에서 한국으로 들어가는 편도 항공편을 말한다.

우리 항공사의 경우 대게 인바운드는 새벽비행이다.

그 말은 즉슨, 남들이 잠자러 침대로 들어가는 그 시간에 우리는 비행을 하러 비행기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새벽 비행을 위해 대부분의 승무원들은 오후 8시경부터 잠을 청한다.

나오지도 않는 멜라토닌을 어떻게든 짜내려 따뜻한 샤워를 하거나 아로마 오일을 침구에다 간절하게 뿌리거나 혹은 수면을 도움받기 위해 약을 먹는 승무원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비행 전에 수면에 실패한다면 그날 그 비행은 평소 비행보다 1.5배는 더 고단하다.

나이가 하루하루 들어가면서 체력의 바운더리는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뚝 뚝 떨어지기에 인바운드가 끝나면 몸이 녹아내리는 느낌을 경험한다.


나는 정말 다행으로 수면에 그렇게 예민한 편은 아니지만, 종종 잠에 실패하곤 했다.

그런 날은 아 오늘은 정말 고단하겠다. 환자승객만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간절한 생각으로 비행준비를 한다.

피곤과 잠의 기운으로 몽롱한 기분 + 새벽 비행이라는 비행의 압박감. (보통 환자 승객들은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많이 발생한다.) 때문인지 그럴 때면 우울감을 느끼곤 한다.

왜 어른들이 해가 떠있을 때는 해를 보고, 잠을 잘 때에는 잠을 잘 자라는 말을 하시는지 비행을 하면서 절실히 느꼈다.

사람의 몸은 정말 자연의 섭리에 맞춰진 존재랄까.


쇼업준비를 하면서 적막한 호텔 방안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내 화장품들이 덜그덕거리는 소리, 에어콘이 웅 웅 돌아가는 소리, 어떤날은 딜레이 레터(항공편의 지연을 알려주는 종이)가 스윽 들어오는 소리


딜레이 레터를 받는 날이면 더더욱 우울감에 빠져든다. 지연이 되는 만큼 나의 퇴근도 늦어지기에

승객분들에게는 또 얼마나 죄송할 마음과, 예민해지셨을 승객들의 마음을 어떻게 핸들링해야할지에 대한 서비스 순서를 몽롱한 상태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파릇파릇한 신입의 기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모든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권태감을 느끼곤 한다.

사실 비행이란 업무도 어느 일반 회사원과 마찬가지로 비행도 똑같이 뜨고 내리고 뜨고 내리고의 반복이다.

공항으로 가는 픽업차 안에서 피곤과 피로에 절여진 몸과 마음으로 비행을 들어가기도 전에 ‘아 빨리 한국도착했으면 좋겠다.’ 란 생각만이 마음속에 가득하다.

비행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는 새벽비행 후에 밤을 새우고도 약속을 잡고 놀러 나가도 큰 무리가 없었으나 20대 후반이 되고 30대가 되니 ‘ 아 나도 저물어가는구나..’ 발걸음은 천근만근 질질 끌고 겨우 집에 들어가 몸을 뉘인다.

아이를 키우는 비행기 엄마가 되었을 때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밤을 꼴딱 새우고 다시 집에 돌아오자마자 육아출근을 할 때의 그 몽롱함이란..


인바운드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지쳐있는 몸을 이끌고 어떻게든 비행기에 몸을 욱여넣는다.


혹시 모든 여정을 끝내고 인바운드 비행 편에 탑승하실 때 내적하품을 하고 있거나, 유독 눈동자에 초점이 없는 승무원을 발견했다면 ‘저 승무원은 지난 간밤에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였구나’ 하고 생각해 주시면 되실 것 같다.

하지만 보딩이 시작됨과 동시에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우리들에게 멜라토닌의 요정을 제때 마주칠 수 있도록 격려를 보낸다.


인바운드를 앞두고 있는 우리들이, 오늘도 낯설고 외로운 호텔에서도 잘 자기를


prepare #2 _인바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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