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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거북 Oct 07. 2015

암스테르담 미술관

in Amsterdam

* 20150901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여 암스테르담 카드를 샀다. 이틀치 60유로. 그냥 오자마자 교통카드 사흘치 끊고 움직이는 것이 나을뻔했다. 고흐 미술관은 무료지만 국립미술관이 무료가 아니므로 아주 좋은 조건의 카드라고 보긴 어렵다. 이거 아까워서라도 굳이 안타도 될 운하 수상 버스도 한번 하고 내일도 굳이 안갈 예정인 박물관 몇개를 가려고 하니까 이 카드를 사는 순간 이기는 놈은 암스테르담이 되는 것이다. 더우기 나는 유레일이 있고 집근처에 기차역이 있기 때문에 미묘하게 더 아깝다. 유레일이 있건 없건 암스테르담에서 교통카드 없이 다니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걸 계속 걸어다닐 수는 없다.




고흐 미술관부터 갔다. 나 들어갈때 10분, 나 나올때는 40분 정도는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한 상황이더라. 다들 일찍 움직이시길 권하기로 한다. 


줄서야 한다. 고흐는 슈퍼스타라는 것을 잊지말자.

고흐 그림을 보면서 가장 이해가 안되는 것은 생전에 그림을 딱 한장 팔았다는 것인데... 이게 말이 되나? 고흐 그림들은 누가 봐도 알아볼만큼의 보편성이 있고 당대에 나름 이름도 얻었다는 말도 있다. 십년간 수백점에 달하는 그림을 그려낼 정도면 제아무리 테오라 할지라도 계속 뒷바라지를 하기도 힘들 뿐 아니라 그 그림들을 보관하는 일도 보통이 아니었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그림을 못팔았다면 테오가 미술상으로서 아주 무능했다는 말 밖에는 안되는 것 같고. 무능한 미술상이 화가를 십년이나 서포트하는건 역시 이상하다. 


어쨌거나 테오의 초상과 고흐의 자화상을 보니 테오가 너무 불쌍했고 고흐같은 또라이 형이 없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고흐는 선의 화가이다. 그전에는 붓터치만 보였으나 오늘 보니 그 붓터치의 방향성을 만들어주는 것이 선이었다. 뭐 각자 자기만의 고흐가 있을테니. 오늘부터 고흐는 나에겐 선의 화가가 되었다.


물론 좌측이 형이다. 보기만해도 기운 빨릴거 같은 눈.


오딜론 르동이라는 화가가 있다. 언젠가 그의 일러스트를 보고 아우 징그럽기는 하면서 계속 들여다보던 일이 있었다. [구글 이미지 검색결과] 미묘하게 퇴행적이면서 미래적인 이상한 이미지를 잘 그리는 양반이라 그의 다른 그림들도 찾아봤더랬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 고야와 정서가 좀 비슷했다. 둘다 좀 어둡다. 그러다가 얼마전에 '악의 꽃'이라는 일본만화를 봤는데 여기서 보들레르의 시 악의 꽃이 중요한 소재가 된다. 그리고 그 시에 들어있는 일러스트가 르동의 것이다. 만화에서 르동의 그림 역시 보들레르의 시 만큼이나 중요한 이미지로 활용된다. 만화에서 인상적으로 나오는 그림은 이것이다.


르동, The eye, like a strange balloon directs itself towards infinity, 1878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화가였는데 이 미술관에서 그를 본 것이다. 고흐의 후배들이라는 방의 한쪽을 큼직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그의 유화는 처음 보았고, 일러스트에서 보여지는 복잡하고 어두운 감성이 유화로는 이렇게 환상적으로 표현되었구나 싶어 꽤나 오래 들여다보았다. 고흐미술관에서 르동이나 소개하는 나를 나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좋았던게 르동인걸 어쩌겠는가. 고흐는 슈퍼스타니까 다른 곳에 정보 많다.


르동, The Red Tree


르동, The Buddha




내친김에 렘브란트도 보러갔다. 이미 다리가 아팠지만 어디 다른 곳에 갈만한 상황도 안되었다. 국립박물관에는 렘브란트 뿐 아니라 할스 같은 네덜란드 대가들도 있고 이름모를 여러 화가들 작품이 많았던 것에 비해 다른 유럽국가들의 작품은 적었다. 독립이 상대적으로 늦었고 강대국도 아니었기 때문으로 혼자 생각해본다. 네덜란드 괴수화가중 하나인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주요 작품들은 정작 식민모국이었던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에 있을 정도니 말이다. 아니면 이 사람들에게는 초상화나 정물화같은 실용미술이 더 중요했어서 다른 유럽화가들까지 손을 뻗을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지. 모르겠다.


렘브란트, The Night Watch. 왼쪽의 이름모를 그림이 렘브란트를 빛나게 해주는 오징어중 하나.


렘브란트는 과연 빛의 화가. 유독 대비가 심하고, 드라마틱한 효과를 위해 뜬금없는 곳에 광원을 두기까지 한다. 유명한 야경꾼들의 경우 당대의 다른 떼거리 초상화들과 함께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것들은 렘브란트 옆에서 딱 오징어 역할을 해주고 있다. 유독 수준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그 그림들 속의 인물은 죄다 비슷한 크기로 졸업사진 모냥 쪼로록 그려져있다. 반면 렘브란트는 연출을 해서 구성이 드라마틱하다. 이래서야 몇몇 의뢰인들이 자기 얼굴 잘 안나왔다고 빡칠만도 하다. 연출엔 강약이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다들 좋아하는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확실히 좋았다. 청년기의 야심찬 표정과, 늙고 돈떨어졌을때의 측은한 표정을 정말 절묘하게 잘 잡았다. 주름과 눈매가 참 많은 얘기를 하고있다. 화가들이 인생의 허무함이나 죽음을 많이 다루었지만 렘브란트의 자화상들처럼 메멘토 모리를 잘 표현하는 그림들도 흔치 않을 것이다. 나도 메멘토 모리를 표현한 작품을 하나 이번에 찍었다.


스트라스부르의 한 버스에서 찍은 사진이다. 초상권 죄송합니다. -_-


국립박물관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겸하고 있다. 미술품과 당시 물건들이 시대와 테마에 맞춰 한 방에 공존하는 방식이다. 이것도 나름 괜찮지 않나 싶다. 미술만 너무 미술인척 하는 것도 별로 아닌가.


이렇게 정교한 인형의 집을 만들어놓고 감상을 했나보다. 벽 하나를 차지하는 크기였다.


다음날 간 것이긴 하지만 렘브란트의 집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의 소품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어서 가볍게 둘러볼만 하다. 아무래도 힘을 덜주고 그렸기 때문에 웃기는 그림들이 꽤 많다. 진지한 유화 자화상들과는 또 다른 이 소품들에서는 코믹한 뚱보 아저씨라는 자기를 은근히 표현하고 있다. 


누군가의 집은 괴테랑 렘브란츠 딱 두개 가봤는데 괴테가 강남부자라면 렘브란츠는 자수성가한 중산층 정도 되겠다. 결코 넓다고 할 수 없는 집에서 그림도 그리고 학생도 가르치고 여러가지를 했더라. 그래도 암스테르담의 꽤 중심가에 살았다. 가장 잘나갈때 살던 곳이라고.


정교한 체스조각. 사람위에 올라탄 원숭이가 웃긴다.




그 외에 보석 박물관과 몇몇 한심한 박물관들을 들렀는데 갈만한 곳이 못된다. 박물관 패스가 괜히 있는게 아니다. 튤립 박물관도 있고 이것저것 더 있어서 들러보고도 싶었지만 체력은 유한하다. 이것저것 집어먹고 유람선을 타러갔다. 여기 운하들이 많으니까 그 밑을 한시간정도 잡고 돌아주는 것이다. 강 있는 도시라면 이런 유람선 없는 곳이 없다. 이런 다리 저런 다리 외나무 다리 등을 지나면서, 아 여긴 근교의 소도시보다 볼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내 앞에 앉은 이태리 중년 커플. 서로 대화를 하지 않는다. 이태리 사람도 중년이면 말없는 커플이 될 수 있구나. 저들도 분명 한때는 서로 재잘대며 떠들었을 것일텐데.




다음날은 비가 오락가락한 날이었는데 나오고 나니 꽤 추웠다. 9월이랍시고 벌써 가을냄새가 물씬 나는거다. 먼저 영화박물관에 갔다. https://www.eyefilm.nl/en

여긴 영화박물관보다는 영화 아카이브이자 씨네마테크 역할을 하는 곳인데 건물은 이뻤으나 실제 시설의 짜임새는 영상자료원보다 못했다. 그리고 영화 한편 보는데 10유로씩이나 한다. 우디 앨런 특별전을 준비하나본데 모르겠다. 별로 알차게 준비하는 것 같진 않다. 여긴 중앙역에서 배타고 강을 건너야 갈 수 있는 곳이다. 분위기는 동경의 오다이바 같다. 상암동에 있는 영상자료원은 이에 비하면 뽀대는 구릴지 모르겠으나 즐길것은 더 많은 곳이다. 많이들 이용하시라.


영화박물관 eye의 내부. 레스토랑은 멋졌다.


뽀대는 좋다.


중앙역 아래쪽에 뭔가 makt 이런 곳이 있길래 마켓인가 하고 갔더니 광장이다. 그런데 그 광장 어딘가 벼룩시장이 선거 같으니 마켓은 마켓... 바뜨 깔린 부스들이 비가와서 그런가 곧 다들 철수했다. 나는 셀프서비스 길거리 햄버거를 하나 물고 렘브란트 생가로 가서 그림 잘 보고 나왔다. 그랬더니 비가 더온다. 어쩔까 하다가 유대박물관으로 도망갔다. 나중에 보니 나치 수용소중 큰 곳 하나가 네덜란드에 있었을 정도로 여기는 유대계가 많이 살았다. 안네 프랑크가 괜히 네덜란드에서 잡힌게 아니다. 어쨌거나 나치 이전의 유대인들 역사도 다루고 있었는데 참 용케도 히브리어 문헌을 이용하면서 계속 전통을 이어왔다. 참 신기하긴 한 민족.




비가 대충 멈춰서 역시 가까운데 있는 동물원에 가기로 했다. http://www.artis.nl/

여기 동물원의 장점이라면 동물과의 거리가 짧다. 사람에게 무해한 새들이라면 새가 있는 우리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 미어캣이나 기타 다른 작은 동물들이 있는 곳들은 철장이 없다거나 어떻게든 동물을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도록 여러가지 배려를 했다, 요새 동물원이 동물을 수감하는 느낌에서 동물은 풀어놓고 인간을 수감시켜 돌아다니게 하는 방식으로 점차 이동중이라 하는데 이런 것도 그런 느낌인가 싶다. 별로 크지도 않은 동물원이지만 꽤 작은 재미들이 많았다.


그 옆에는 미생물 박물관이 있다. 동물원 옆이니 관련성도 높다. http://www.micropia.nl/en/

여기는 세균 곰팡이 미생물 등 다양한 것들을 관찰하게 해둔 곳인데 꽤 세련되었다. 유료로 들어가도 만족스럽다고까진 못하겠으나 암스테르담 카드를 샀다면 들어가주자. 나는 이렇게 몇군데를 더 가서 60유로짜리 카드로 90유로정도 이용해서 30유로를 벌었다....인데 암스테르담에게 진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구나. 아마 이 카드가 없었으면 또 남는 시간을 판가게 뒤지며 보냈게지. 신박한 카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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