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와 함께 일주일에 세 번 요가원을 들락거린 지 벌써 삼 주가 지났다. 우리는 해가 다 진 후 밤요가를 한다. 원래 계획은 하루를 깨우는 느낌으로 새벽 요가를 하는 것이었지만 집 근처 요가원들의 시간표를 아무리 훑어보아도 오전 9시나 10시쯤 느지막이 시작하는 수업들 밖에 찾을 수 없었다. 연이가 요가를 다녀와서 급하지 않게 출근 준비를 하려면 새벽 6시 수업 정도는 되어야 적당했는데, 사람들이 내 생각만큼 부지런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요가 ‘수련’이라고 하면 왠지 동이 트기 전 어둑어둑한 시간에 가부좌 자세를 한 채로 명상 중인 요기니의 모습이 떠올라 새벽 수업이 꽤나 흔할 줄 알았지만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밤요가를 해볼까 싶었다. 요가로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면 밤에 잠도 잘 올 것 같았다.
요가는 연이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요가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연이는, 기회가 되면 요가를 해보고 싶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통나무처럼 뻣뻣하고 유연성이라고는 1도 없는 애가 과연 요가를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아무튼. 혼자 살 적에 순전히 요가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슬쩍 맛을 본 적이 있는 나에게도, 요가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눈을 감고 선생님의 목소리를 따라 동작을 하다 보면 어느샌가 오롯이 나의 신체와 정신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오래 하지 못했지만 요가를 다시 하게 된다면 시간을 들여 오랫동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서 도보 3분, 드물게 남자 원장님이 계신 요가원에 우선 3개월을 등록했다. 아무래도 여자 회원들이 많다 보니 담배 냄새 혹은 기타 다른 냄새(?)를 풍기거나 너무 풍채가 좋은 남자들은 회원으로 받기가 어렵다고 했다. 원장님이 남자면서 남자 회원을 골라 받는다니 조금 웃긴 일이었지만 연이는 당연히 합격이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순하고 깔끔한 인상에 키는 크지만 마른 축에 속하는 연이는 요가를 잘할 것처럼 생겼는데(사실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원장님도 연이를 썩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연이의 합격으로 우리의 부부 동반 요가가 시작되었다.
요가 가는 날은 월수금으로 정했다. 하루 걸러 하루. 딱 적당한 간격이다. 방탕한 금요일을 보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수련을 하러 가야 한다는 점도 좋았다. 요가 자세를 하려면 몸이 가벼워야 했고 그러다 보니 저절로 저녁 식사가 단출해졌다. 금요일이면 으레 마시고 싶은 맥주 한 캔, 와인 한 잔도 건너뛰게 되었다. 출근을 하지 않는 나보다는 일주일 내내 회사에 시달리는 연이가 금요일 밤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클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치킨과 편의점 캔맥주, 그리고 지난 축구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포기하고 나와 함께 맨발로 요가원에 다니는 중이다.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가다 보면 수업이 시작된 지 5분도 안되어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때문에, 최대한 편하고 얇은 옷을 입고 겉에는 패딩이나 털 점퍼를 덮어쓴 채로 요가원으로 향한다. 금방 벗을 거라 지퍼를 올리기도 귀찮아서 한 손으로는 웃옷을 단단히 여미고 다른 한 손은 연이와 팔짱을 낀다. 맨발로 버켄스탁 슬리퍼를 신고 총총거리며 요가원으로 향하는 그 시간이 신난다.
옆에서 낑낑거리며 어떻게든 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서로를 곁눈질로 흘긋거리면서 킥킥거릴 수 있어서 좋다. 내가 연이보다 아주 조금 더 낫기 때문에 옆에서 연이가 못하는 걸 보고 있으면 웃기고 안쓰러우면서도 위안이 된다. 아마 연이도 나를 보며 똑같은 마음이 들겠지. 또 다른 좋은 점 하나는, 요가 수련이 끝난 뒤 어둠 속에서 연이의 등을 잠시 바라보는 시간이다. 모든 동작을 마무리한 후, 요가매트에 편하게 누워 호흡을 가지런히 하고 나서 오른쪽으로 돌아누워 잠깐 웅크린 상태를 유지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 보이는 연이의 등이 이상하리만치 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언제까지고 날 위해 그렇게 있어줄 것만 같은 뒷모습이다. 고작 요가 한 시간에 지쳐서 축 처져 있지만 무슨 일이 있든 나를 받쳐줄 것이 분명한 등판. 그런 작디작은 풍경들에 위안을 받는다.
- 오늘 그거 잘 됐어? 한 다리로 서고 T자 만드는 자세?
- 나 진짜 못해.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더라.
- 자기 옆에 있던 사람은 잘하던데. 선생님이 말도 안 했는데 막 다음 동작하고.
- 오래 했나 봐. 근데 그건 잘난 척하는 거야. 선생님 호흡에 맞춰야지 그래도.
- 맞아. 나도 집에 가서 다시 해봐야겠다.
같은 것을 함께하며 시간을 채우고,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해 제일 친한 친구처럼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아직까지는 요가보다 그게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그게 좋아서 아마 우리는 겨울밤 내내 맨발로, 그나마 앞이 막혀서 발이 덜 시린 버켄스탁 보스턴을 커플로 신고, 월수금요일마다 종종걸음을 치며 요가원으로 향할 것이다.
인스타그램 @dexy.k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