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멈춘 시간: 계절 불감증

나를 갉아먹으며 자라나는 꿈

by 현이소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뚜렷한 4계절을 가진 국가다. 비록 요즘은 이상 기후 문제로 여름과 겨울이 예전보다 길어지고, 봄과 가을이 다소 짧아졌다곤 하나 여전히 4계절의 변화를 뚜렷이 체감할 수 있는 정도다.


작가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인 대학생 시절. 그때는 나도 지하철을 타고 매일 익숙한 동선으로 등하교를 반복하며, 서서히 흘러가는 4계절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봄철 시험 기간이면 어김없이 도서관에 틀어박혀 흐드러지게 휘날리는 벚꽃 구경을 포기하고 책을 펼쳐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봄이면 싱그러운 꽃 내음이 뒤섞여 부는 바람을 맞고, 가을이면 선선한 바람을 타고 흘러드는 젖은 낙엽의 냄새를 맡을 정도의 소소한 여유는 가질 수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다는 구절도 있듯이, 나도 그 시절이 한없이 감사했다는 걸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작가는 주로 실내에서 일과의 대부분을 보낸다. 직업 특성 상 책상과 의자, 노트북만 있다면 장소에 딱히 구애받지 않고 어디에서든 곧장 원고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재택 근무를 한다. 또, 여러 사람과 함께 쓰는 공유 오피스나, 아예 혼자 쓰는 사무실을 계약해 일정한 시간에 맞춰 그곳으로 출퇴근하며 집필하는 작가들도 많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장소를 대여하기 위한 비용이 추가적으로 드는 부담 때문에, 이제 막 일을 시작해서 수입이 불안정한 신인 작가들에겐 상당한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나의 경우도 여기에 속했다.


재택 근무의 최대 장점은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출퇴근 시간을 내 맘대로 조율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선택에는 늘 그만한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출근을 내 맘대로 하는 대신, 그날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원고 마감을 쳐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리게 되고, 결국 퇴근 시간은 단순 야근 수준을 넘어 아예 자정이 지난 새벽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실제로 나도 원고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하루 종일 노트북을 붙잡고 있다 못해서 밤을 꼴딱 세우고, 다음 날 해가 중천에 걸린 걸 보고서야 밀린 잠을 기절하듯 청했던 기억이 많다.


압박감에 시달리며 가까스로 마감을 끝내기는 하지만, 사실상 그 순간의 작가는 눈만 겨우 뜨고 손가락만 두들겨 댈 뿐 이미 정신은 반쯤 안드로메다로 가 있는 반 좀비 상태라고 보면 된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재택 근무를 하는 작가에게 계절의 변화를 몸소 체감하는 건 간절히 원하면서도 쉽지 않은 일이 되고 만다.


나는 겨울부터 초가을까지를 한 작품을 집필하는 데 온전히 쏟아부었으므로, 가장 놀러다니기 좋은 봄과 가을에 종일 방 안에만 틀어박혀 계절이 어떻게 변하는 줄도 모르고 주구장창 원고 작업에만 매달렸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 봄이 오건 여름이 오건, 꼭 멈춘 시간 속에 사는 사람처럼 계절의 변화를 인지도 못할 만큼 무덤덤하게 되었다.


그러다 이렇게 사는 건 정말 아니다 싶어 큰 맘을 먹고 어딜 놀러 가기로 다짐하면, 주마다 잡힌 마감 일정을 떠올리며 압박을 느꼈고, 애써 무시하고 나가도 마음이 금방 또 불안해져 일찍 귀가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무슨 계절이 어느 틈에, 어떻게 오갔는지도 모르고서 정신 없이 몸을 갈아가며 원고를 쓰던 시간들. 더 이상 쥐어짤 것도 없이 에너지가 전부 바닥났음을 느꼈을 때쯤에야 완고를 넘기며 한동안 멈추었던 내 세상의 계절도 다시금 흐르기 시작했다.


너무도 버겁던 인생의 폭풍을 한차례 겪은 뒤, 비교적 잔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요즘의 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뚜렷한 변화를 그때보단 좀 더 온전하게 느끼며 살고 있다.


아무리 꿈을 위해 치열하게 살더라도 나를 둘러싼 계절의 변화를 몸소 느끼며 살아갈 한 줌의 여유 정도는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머리가 아닌, 경험에서 우러나 깨달은 마음 깊숙한 울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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