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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Aug 02. 2023

경쟁은 늘 공정한가

고이즈미의 개혁은 독배였을까 성배였을까?

얼마 전 일본 공정거래위원회(公正取引委員会) 심사관들의 활약을 다룬 드라마 〈경쟁의 파수꾼-부정과 싸움, 약자를 구하다(競争の番人ー不正と戦い 弱者を救う)〉를 보았습니다. 드라마에서 공정위 심사관 고쇼부(小勝)는 관료와 결탁하여 사전에 공사낙찰 예정 및 입찰 금액 등의 담합(카르텔)을 한 일부 회사가 일감을 몰아받는 바람에 낙찰받지 못한 회사들이 파산하는 것에 분노에 차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나라는 브레이크가 망가진 열차 같은 거다. 힘 있는 놈들이 몰래 모여 뭐든 정해. 그러니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거지. 그런 구조가 굳어진 거야"


この国はブレーキの壊れた列車みたいなもんなんだ。偉いやつらがこっそり集まって、なんでも決めてしまう。どんなに頑張ったってだめなんだよ。そんなふうに走り続ける仕組みが出来上がってるんだよ



일본의 기업경영은 가족경영으로 유명합니다. 경영자와 직원 모두 동일한 유니폼을 입고 임금 격차도 서구에 비해 그렇게 크지 않아 매우 수평적 관계처럼 보입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하면 떠오르는 검은색 터틀넥 스웨터, 청바지, 운동화는 일본을 방문한 잡스가 애플에 도입하고 싶었던 유니폼이었는데 직원들의 반대로 결국 잡스 혼자만 입은 거라는 웃픈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경영가족주의에서 자본가, 경영자, 직원(노동자)의 관계는 흔히 부모·자식 관계로 빗대어 설명합니다. 가족이란 주로 혈연관계를 맺은 집단이지만, 회사의 경영자와 직원을 부모와 자식 관계로 인식하는 것은 에도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에(家)라는 문화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쇼군 혹은 다이묘(영주)와 백성은 군신 관계이며 나아가 부모·자식 관계이기도 하는데 이런 사고방식은 공자의 유교가 아닌 남송 주희의 성리학에 의한 것으로 조선에서 유입되어 이후 도쿠가와 막부의 통치이념이 되었습니다. 이런 관습적 의식은 명치유신 후 민법 호주제로 법제화되었고 식민지지재를 통해  우리나라에 유입된 호주제는  2008년 1월에 폐지되었습니다.



가족경영이라고 하면 뭔가 평등한 것 같지만 일본의 가족제도에서 호주는 매우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로 가족 구성원이 호주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그야말로 종적 관계, 상하 관계입니다. 패전전에는 호주의 인정이 있어야 양자, 혹은 혼외자인정이 가능했고 결혼 이혼 또한 호주의 동의를 암묵적으로 요구했습니다. 물론 당사자가 성인이 된 이후에는 자의로 결혼 이혼은 가능했습니다만 이 경우 집안의 상속권은 포기해여합니다.



패전 후 이에 제도가 폐지되면서 일본의 대기업은 노동 관리 방식을 경영가족주의에서 경영복지주의(経営福祉主義)로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가업을 잇다(家業を継ぐ)'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경영자는 주로 창업주의 아들, 손자 등이 물려받고 이들의 사망 시에는 아들이 성장할 때까지 배우자가 회사경영을 맡는 등 여전히 이에 제도는 일본문화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가족 경영 협정 조인식





조금은 불합리한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경영방식을 직원이 수용하는 배경에는 경영자가 직원들의 평생 고용을 암묵적으로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대를 이어 채용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직원들에게 회사는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는 단순한 일터가 아닌 자신을 평생 돌보아줄 고마운 곳이며 동시에 자아실현이 가능한 그야말로 평생직장인 셈입니다. 노동자는 직원의 신분이면서도 회사발전을 함께 고민하고 회사발전을 위해 노력합니다.



직원들의 이러한 충성심과 자부심은 회사 경영자로서 전혀 나쁘지 않습니다. 능력 있는 직원이 회사를 계속 다녀 열심히 일한다는 신뢰, 자신을 인정해주는 직장을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다는 확신은 고용안정으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경영주와 고용인 사이의 신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미지를 주는 단어이지만 경쟁 사회에서 지속적인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는 거래처, 하청업자, 원청업체와 담합을 할 수밖에 없고, 이는 자유로운 기업 활동에 장애가 되는 부패한 일들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을 만듭니다.

가족 경영 회사는 지긋지긋


이런 일본의 전통적인 기업방식은 자본주의 경제가 세계를 뒤덮는 글로벌화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일본의 버블경제가 붕괴하면서 1998년까지 연평균 1%대의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불황이 이어지자 2001년 87대 총리에 취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는 "구조개혁 없이 일본의 재생과 발전은 없다(改革なくして景気回復なし)”라며 '성역 없는 구조개혁'을 선언했습니다. 정부에 의한 공공서비스를 민영화로 삭감하고 시장이 할 수 있는 것은 시장에 맡기는, 이른바 '관에서 국민으로' 작은 정부를 표방하는 개혁을 실행했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일본의 부패 고리를 끊어낼 것 같았던 고이즈미의 개혁은 많은 상흔을 남겼습니다. 파트, 아르바이트, 파견사원 등 '비정규 고용자'가 급증했고, 비정규직과 정사원의 급여 격차는 무려 4배가 되면서 소득 격차로 인한 빈부격차가 심각해졌습니다. 실업률은 급등했고 생활 기반이 악화하자 비혼·저출산화 등 다양한 문제가 양산되었습니다. 평생직장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무한 경쟁에 내몰리면서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사라진 사람들은 병들기 시작했습니다. 경쟁으로 공정해진 것 같았지만 그들은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세상으로 내몰리게 되면서 더는 자부심도 공동체 의식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안정된 직장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한 개인을 사회적·경제적 약자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19세기 영국,산업화와 함께 급속하게 성장한 도시의 열악한 거주환경 때문에 하층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더 황폐해졌습니다 차티즘 운동 실패 후 아동과 여성의 저임금 노동 착취와 절대빈곤 등의 문제가 심각해지자 토머스 칼라일, 존 러스킨을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중세의 공동체 부활을 주장했습니다. 예전 중세시대의 길드와 직인제도가 이들이 말한 만큼 평등하지도 사랑이 넘치지도 않았을 겁니다. 때로 마스터의 횡포에 가 극심했을지모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고용의 불안이 없었고 휴식이 보장되었고 노동의 가치가 살아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러스킨은 노동은 돈을 벌고 사용하기 위함만이 아니라 생명을 완성하고 그 가치를 드높이는 데에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일을 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이 한 일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무한 경쟁으로 내몰린 지금, 노동력을 단순히 사고파는 물건으로 인식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무가치해질지도 모릅니다. 살아있는 순간까지 일을 통해 자아실현까지는 아니어도 자신이 가치있는 인간이라는 자존감을 갖을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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