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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Jun 28. 2022

길을 잃다

 또 다른 길을 만나다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있어 운전할 때 길을 몰라도 목적지까지 정확하게 데려다줍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이 없었을 때는 미리 지도를 확인하고 중간에 누군가에게 물어보며 나의 목적지를 여러 차례 확인해야 목적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때로는 엉뚱한 곳에 가기도 했고, 한참을 빙 돌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즘의 내비게이션은 정체 시간까지 고려하여 도착시각을 알려주니, 낯선 초행길에서 길을 잃는 일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대신 거리 이름을 지도에서 애써 찾는 노력이 사라지다 보니 거리의 감각도 사라지고, 나 스스로 길을 찾는 법조차 잊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생깁니다.


오래전, 길치였던 일본인 지인이 자기 차에 나비(ナビ)를 달았으니 이제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자랑하더라고요. 그때는 일본에서 차에 내비게이션을 다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나비(ナビ)라는 말을 못 알아들었죠. 영어의 스펠링이 navigation이라서 일본어로 나비(ナビ)라고 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네요.



우리말의 ‘길을 잃다’의 ‘잃다’라는 용어는 ‘가졌던 물건이 사라지다, 땅이나 자리가 없어져 더는 거기에서 살지 못하게 되다. 사람이 죽다.’ 등 ‘없어져 사라져 버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영어에서도 ‘길을 잃다’는 ‘되찾을 수 없는, 놓쳐 버린 것’을 의미하는 용어로 ‘lost’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일본어에서 ‘길을 잃다’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을 의미하는 나쿠수(失くす,なくす)를 사용하지 않고, 헤매다, 유혹하다 등을 뜻하는 한자 미(迷)를 사용하여 마요우(迷う, まよう)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길을 잃다’는 일본어로 ‘미치오 나쿠수(道を失くす,みちをなくす)’가 아니라 ‘미치니 마요우(道に迷う, みちにまよう)’입니다.



일본어의 동사, 마요우(迷う)는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한단니 마요우, 判断に迷う), 어느 쪽이 좋은지 헷갈린다(도치라가 요이가토 마요우, どちらが良いかと迷う), 마음이 흔들린다(코코로가 마요우, 心が迷う) 등에 사용합니다.


간혹 너무 슬퍼서 망연자실한 상태를 나타낼 때는 ‘나미다니 마요우(なみだにまよう, 涙に迷う)’라는 표현을 씁니다. 즉 눈물(涙, なみだ)로 길을 잃은 거죠. 그런데, 죽은 이가 이승에 마음을 두고 떠나지 못할 때에도 “이승에 마음을 두지 말고 성불하세요. (마요와즈 세이부츠시떼 구다사이, 迷わず成仏して下さい)” 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일본어의 마요우(迷う)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사용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길을 잃다.’의 ‘잃다’라는 용어는 되찾을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앨리스는 쭉 뻗어있으리라 믿었던 길에 느닷없이 나타난 단단한 벽에 길이 막히게 됩니다. 그리곤 누군가 더 이상 그 길을 걸을 수 없다고 말을 하죠. 그러자 앨리스는 고양이에게 “제가 여기서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말해주실래요?”라고 묻습니다. 고양이는 “그거야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달렸지”라고 답합니다. 앨리스는 “어디로 갈지 아직 생각하지 않았는데”라고 다시 묻죠. 그러자 고양이는 쿨하게 “그럼 어느 길로 가든 상관없겠네”, “어디든 계속 걷다 보면 어디든 닿게 되거든.”이라며 말합니다. 


바람에도 길이 있다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삶에 길을 잃은 것 같은 순간이 펼쳐지고 나만의 지도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진다면 내가 지금 인생의 길에서 마음이 흔들리고 있구나(人生の道に迷っている)라고 생각해 보려 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종종 길을 잃습니다. 하지만 가장 잃고 싶지 않은 것을 내가 알고 있다면, 그 길이 어떤 길이든 뭐든 만나리라 기대해 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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