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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패니즈와 교토, 일본에 빠진 서구인들

by 최유경

난주 오사카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간 김에 교토(京都)의 박물관이라도 들려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교토 시죠역에 내렸습니다. ‘코로나 이후 도대체 몇 년 만에 가는 교토인데 좀 한가롭게 다녀오자’하는 생각에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대를 택했는데, 나의 예상과는 달리 교토행 특급전차에는 관광객으로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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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안의 사람들은 교토에 가면 직접 볼 거라고 기대하는 마이코(舞妓)와 게이샤(芸妓)가 거리, 화류계의 거리(花町), 기온(祇園)이 있는 시죠역에서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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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카하라마치는 마치 크리스마스이브 오사카 도톤보리를 걷는 착각이 들 만큼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습니다. 그것도 대부분 서양사람으로, 여기가 교토가 아니라 어디 유럽의 관광지를 걷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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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지 작년 4월부터 기온은 출입금지지역(私道に進入禁止)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사적으로 들어가면 벌금 만엔이라고 하는데, 좀 너무한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관광객으로 얼마나 몸살을 앓아서 이런 조치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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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은 다른 거리와 달리 길이 매우 좁고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이 구별되지 않은 거리가 많습니다. 기온은 밤의 거리입니다. 요정에서 연회가 열리면 게이샤가 머무는 차야에서 게이샤를 부르는데, 그 차야가 있는 곳이 기온입니다. 그러니 낮에 너무 시끄러우면 게이샤들이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그런지 기온에서 멀지 않은 곳에 기온을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는 거리가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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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람들의 교토 사랑은 오래 전부터 아주 각별합니다. 일본에 대해 과한 호감을 느끼거나 일본 문화에 심취한 서양인, 특히 백인 중에 자신을 백인 일본인(white Japanese)이라고 생각하는 서구인들을 ‘와패니즈(Wapanese,ワパニーズ)’라고 합니다. 이 용어는 워너비 저패니즈(wannabe-Japanese)의 줄임말로 2002년에 처음 등장하였는데, 줄여서 ‘Weeaboo(위아부)’, 또는 ‘Weeb’라고도 합니다. ‘와패니즈’를 일부 일본인들은 「니혼 가부레(日本カブレ)」, 「니혼인키토리(日本人気取り)」라고 경멸의 의미를 담아 비꼬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일본에 도취한 사람들’, ‘일본인 척 행동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보기에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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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오타쿠하고는 좀 다릅니다. 오타쿠들의 대다수가 일본 애니, 만화, 게임 등에 심취하는 반면 이들은 애니만이 아니라 일본 사상, 문화, 전통예술 등 일본 문화 전반에 걸쳐 호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니 말이죠. 특히 이들은 선(禪) 사상, 게이샤, 신사, 가부키 등 일본의 이국적인 모습에 동경을 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997년에 출판된 아서 골든의 소설을 영화화한 〈게이샤의 추억〉이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식으로 표현하자면 ‘자포네즐리(Japoneserie)’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니까 ‘와패니즈=오타쿠’라는 공식은 성립한다고 보기 힘들 겁니다.



와패니즈들이 특히 좋아하는 교토이지만, 그곳에 삶의 터전이 있는 사람들에게 관광객은 그다지 반가운 존재는 아닐 겁니다. 관광객들로 인한 피로감은 교토의 여러 곳에서 감지되었습니다. 품격있게 손님을 대하던 이곳 사람들의 손길이 둔탁해지고 거리를 오사카 거리를 걷는 듯 시끄러웠습니다.

그나마 이렇게 관광객이 몰려오면 우리 같으면 유명 체인점이 즐비하게 들어섰을 텐데, 여전히 가부키 극장을 비롯하여 노포들이 예전 그대로 모습으로 남아 있어 작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 기억 속에 교토의 정취는 벚꽃이 지기 시작하는 비 오는 4월 초. 신사 앞 찻집에서 떨어지는 벚꽃잎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을 마시는 겁니다. 그리고 어둑어둑해져서 신사에 불이 들어올 때쯤 바라보는 요자쿠라(밤벚꽃)를 바라보며 마시는 일본술은 그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취를 선물해 줍니다. 좀 종용해지면 그래도 다시 가고 싶은 교토입니다.

그리고 아라시야마(嵐山)도 좋은 게 가보셨을까요? 일본에서 유일하게 개나리를 보았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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