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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야(一人じゃない). 아니 혼자여도 괜찮아.

by 최유경

일본 애니, 드라마, 노래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혼자가 아니야”일 겁니다. 마치 혼자여선 안되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가사는 주로 ‘포기하지마, 힘내 넌 혼자가 아니야, 우리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 등 힘들고 지친 상대방을 위로할 때 자주 쓰입니다. 그래서 이런 문구 뒤에는 “넌 혼자가 아니야. 내가 널 지켜줄 테니까(一人じゃないから 私が君を守るから)”라는 식의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대사도 덧붙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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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도쿄의 젊은이들을 향한 슬로건도 ‘혼자가 아니야(ひとりじゃない)’였습니다. 코로나로 불안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을 젊은이들을 향한 메시지였을 겁니다. 누군가가 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줄 거란 믿음이 있다면 혼자 걸어가는 밤길도, 미지의 세계를 걸어 들어가도 조금은 덜 두려울 겁니다.



일본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혼자가 아니야(一人じゃない)’라는 말이 언제나 위로가 되는 건 아닙니다. 지금의 나의 두려움이, 나의 외로움이 누군가가 날 지켜주지 않아서, 혹은 그런 믿음이 내게 없어서인 건 아닙니다. 그러니 나의 외로움에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의 자책은 불필요합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나의 말에 귀를 귀울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에게 닥친 문제는 오롯이 나의 몫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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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임상 심리학자, 요코타 마사오(横田正夫)는 일본 애니를 분석한 『애니메이션의 임상심리학(アニメーションの臨床心理学)』에서 ‘피주찰감(被注察感)’을 말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피주찰감(被注察感)’은 누군가가 ‘나’라는 존재를 늘 어디선가, 혹은 힐끔힐끔 지켜보고 있다고 느끼는 감각입니다. ‘피주찰감(被注察感)’, 즉, ‘사람 눈=남의 눈(人目)’이 일본 사회 전체에서 작동하고 있는 일종의 심리적 메커니즘이라고 보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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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로 그 옛날 우리가 즐겨보았던 70년대 애니 ‘마징가Z’에서도 90년대를 대표하는 애니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도 주인공 소년이 적과 싸우러 나갈 때 컨트롤 타워에 있는 어른들은 멀리서 모니터로 소년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지켜보다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 오류를 지적하고 지속해서 정보를 주며 명령을 내리는 주시-관찰의 시스템을 작용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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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타는 이런 관계가 부모·자녀 관계에서만이 아닌 친구 관계, 연인 관계로까지도 확장된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확장된 ‘피주찰감(被注察感)’ 의식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누군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1990년대, 일본은 버블 붕괴로 인한 불경기, 냉전의 종결 등 사회적 불안이 극에 달하였고, 이에서 도피하듯 일본 문학에는 판타지 장르의 소설이 유행했습니다. 어려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거죠. 또한, 이 시기 역사물과 시대물이 유행했습니다. 흔히, 영웅이 판치는 전국시대나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나은 세상을 위해 나를 버리고 나카마(なかま, 동료)들과 힘을 합쳐 싸우는 그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해야하는 일인 줄 알지만 이 싸움이 너무 두려운 사람도 있습니다. 그냥 두려운 겁니다.


일본어의 나카마(仲間)는 단순한 동료가 아니라 같이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는 그야말로 피를 나눈 전우 같은 겁니다. 하지만 이런 나카마 의식은 집단주의를 만들어 내기 쉽습니다. 대의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너무나 당연한 건데 ‘나’의 생각을 내세우는 건 이기적이고 나카마를 배신하는 행위로 치부될 수 있으니까요. 분연히 나가서 싸우지 못한 나는 비겁한 걸까요? 나의 두려움은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는 이기적인 걸까요? 나의 부모는 나에게 자꾸 괜찮다고 자꾸 앞으로 앞으로 나가라고 합니다. 내가 있으니 안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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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고 하나 하나를 들여다 보는 ‘피주찰감(被注察感)’. 요코타는 일본의 부모들이 아이들의 보호를 위해 쥐여주는 핸드폰의 기능과 유사하다고 말합니다. 싸우러 나가는 소년에게는 혼자 싸우는 게 아니라는 안심감을 줄 수도 있지만, 자신이 속한 세계의 사람들이 늘 배후에서 모니터를 통해 그를 지켜보고 있다는 불안감, 두려움도 함께 짊어지게 합니다. ‘혼자가 아니야’라는 안심감도 있지만, 이건 감시시스템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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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집단 나카마 의식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東日本大震災)을 겪으면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똑같이 “넌 혼자가 아니야”라고 외치지만, 더는 조직, 줄(絆)에 속한 나카마(なかま)가 아닌 신카이 마코토 영화의 주인공처럼 진정으로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고 싶어합니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서있는 나를 그냥 나를 기다려 달라고...손에 휴대폰을 쥐어주고 어디 있는지 뭘 하는 지 누굴 만나지는 일일이 채크하지 말고 그냥 봐달라고 말하는 이야기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야’라는 달콤한 이야기가 주는 무게감은 생각보다 너무 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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