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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 오야바나레·코바나레(親離れ·子離れ)

by 최유경

세대를 넘나들며 ‘올해의 인생작’이라는 호평 속에서 막을 내린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시청자들이 풍덩 빠져들어 갔습니다.



부모의 내리사랑, 미처 부모의 사랑을 다 깨닫기도 전에 떠나 부모에 대한 뒤늦은 자책과 감사라는 보편적 감성이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전 세계인의 마음에 다가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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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아낌없이 자녀에게 자신의 모든 걸 내어주는 저마다의 부모들이 등장합니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 방언으로 ‘매우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인데, 사랑하는 애순이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힘든 줄 모르고 무쇠처럼 살다 간 관식을 향한 딸 금명, 아내 애순이의 관식 예찬입니다.



드라마 속 어느 부모는 “너는 내 인생의 프라이드”라며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를 자녀에게 강요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결국, 부모의 품을 떠나지 못한 자녀는 부모의 기대라는 감옥에서 불행해집니다. 하지만, 드라마 주인공인 관식이는 아이들에게 “내가 뒤에 있어. 힘들면 빠꾸해도 돼”라고 말합니다. 장녀를 ‘살림 밑천’으로 여기던 시절, 장녀 금명은 부모의 기대가 무거워 부채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결국 스스로를 힘껏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준 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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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에 오야바나레·코바나레(親離れ·子離れ)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슷한 말로 ‘귀여운 자식에게 여행을 보내라(可愛い子には旅をさせろ)’는 말도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라도 자식의 어려움을 부모가 막아줄 수 없습니다. 관식이처럼 넘어져도 일어나고 부모라는 돌아갈 집이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아무래도 덜 무서울 겁니다.



일반적으로 아이가 사춘기를 맞이하면 부모의 간섭을 싫어하고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을 갖기 원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개성을 키우거나 자립하려고 생각하는 것이 ‘오야바나레(親離れ)’입니다. 이건 부모로부터 물리적으로든 정신으로든 독립하여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립하는 겁니다. 그걸 ‘오야바나레(親離れ)’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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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부모도 아이를 품 안에서 내보내야 하는 데 그걸 ‘코바나레(子離れ)’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립하려고 하는데, 부모가 “아이를 떠나보낼 수없다”며 자신의 품 안으로만 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중히 지키면서 키워 온 아이를 자신의 세계에서 떠나보낼 수 없는, ‘코바나레(子離れ)’를 못하는 부모들은 항시 “다 너를 위한 거”라는 말로 자녀의 인생에 개입하고 자신의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를 강요합니다. 애순이는 그런 부모들은 자식의 가슴에 돌덩어리를 내려놓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여전히 아버지 밥상과 어머니 밥상을 따로 차리던 시절, 비싸고 좋은 건 다 아버지 밥상에만 올라가던 시절, 관식은 완두콩을 좋아하는 딸 금명을 위해 여자들만 먹는 밥상으로 들어섭니다. 그리고 자신의 밥 위의 콩들을 금명의 그릇에 담아주며 앞으로 딸 금명과 같은 걸 먹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런 관식을 금명은 “아빠가 돌아앉던 찰나를 엄마는 평생 잊지 못했다. 밥사발을 들고 돌아앉은 도동리 최초의 남편일 거라고 엄마는 백번쯤 말했다. 아빠는 아빠의 전쟁을 해냈다. 절대로 엄마 혼자 전장에 두지 않았다. 그 시절 아빠의 반 바퀴는 혁명이었다는 걸 나는 숭늉을 푸며 깨달았다”고 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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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애순은 “부모는 자식에게 못 해준 것만 사무치고, 자식은 부모에게 서운했던 것만 사무친다”고 말합니다. 애순이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도 죽은 엄마의 그림자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걸 보면, 자식이라고 어찌 서운했던 것만 사무치겠습니까. 자식도 부모를 떠나보내면 못 해준 것만 사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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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가 돌아오면, 벚꽃을 따고 홀연히 제 곁을 떠난 어머니가 그리워집니다. 제 아이들을 보살필 때도 “내 새끼 힘들게 하지 마!”, “난 손자 손녀보다 내 새끼가 젤 중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 어머니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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