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노포가 살아있는 일

by 최유경

이젠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에 자리한 분식집, 채소 가게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게 익숙하다. ‘어 언제 문을 닫았지? 얼마 전까지 영업했는데’라며 서운만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새로운 가게가 들어올 준비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채소 가게, 빵 가게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체인점 커피숍이 이젠 새롭지도 않은 모습으로 단장하고 들어선다.


238343_239463_1342.jpg


그렇게 하루가 멀다고 가게들이 바뀌는 가운데서도 흔치 않지만, 오랫동안 살아남는 가게들이 있다. 우리 집 근처 분식집, 자전거포, 수선가게, 정육점이 그렇다. 그런 집은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건만으로도 나의 세월을 여기에 붙잡아 둔 것 같아 늘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도 멋들어진 실내장식으로 무장한 가게들 틈에서 기어이 살아남은 오래된 가게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성심당 빵, 이성당 빵을 먹어보겠다고 대전으로 군산으로 달려가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어이 그 빵을 손에 넣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고 나도 한입 베어먹고 싶어진다.

119de298-9e7c-4eb6-85d0-503860170b3c.jpg


아주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하는 가게를 최근 노포(老舖)라고 부르고 있다. 노포라고 하면 왠지 허름하고 오래된 식당을 떠올리기에 십상이지만, 원뜻은 전혀 아니다. 일본에서 들어온 이 말은 老舗의 老는 경험, 舗는 가게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일본에서 노포는 선조 대대로 가업을 이어받아 100년 이상의 전통과 격식을 갖춘 번창한 가계들은 지칭하는 말로 일본말로는 시니세(老舗, しにせ)라고 한다.


AdobeStock_308647153.jpg
20190207-03.jpg?type=w800


업종은 요식업, 호텔, 여관, 기업 등 뭐든 상관없다. 약 10년 전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100년에서 200년이 넘게 영업하고 있는 곳이 11028개, 200년에서 300년 된 곳이 585개, 300년에서 400년 된 곳이 414개, 500년 된 곳이 152개, 500년이 넘는 곳이 39개 있다고 한다.


YbM8QEC3J9YXvydMMdPJwERgjmHqBQDWdT-dw7J66SErBKbvxJAeRry-wR4LHIooPMHlwTpqMGVEwnkxCbIx8g.webp


그중 교토에는 무려 헤이안 시대에 창업한 찻집, 이치몬지야 와스케(一文字屋 和助)가 있다. 1018년에 창업했으니 천년을 이어온 집이다. 이곳은 기름에 튀긴 떡이 유명한데 교토에 온 사람들이 그대로 지나칠 수 없는 집이다. 나라에도 약 8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쯔르베스시 야스케(つるべすし弥助)라는 스시집이 있다. 유명한 우카가와의 우키요에에도 등장하는 스시집으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초밥이 아닌 옛날 그대로 생선 한 마리를 밥과 소금으로 절인 나레즈시(熟なれずし)를 맛볼 수 있으니 어찌 안 가볼 수 있으랴.


AdobeStock_584143857_s.jpg


오랫동안 가게를 하고 있다는 건 시대가 변화하고 사람들의 입맛이 바뀌어도 계속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아 둘만큼 매력적이라는 의미일 거다. 오래된 가게나 기업들은 한 개인의 회사를 넘어 지역을 대표하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운영자도 함부로 하지 못하고 아마 종업원들도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끼고 일을 하는 것이다.


shinise_01.jpg



AdobeStock_486859190_s.jpg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노포는 삼립빵을 제외하면 해방 이후이다. 일본과 달리 조선 시대에는 상업이 발달하지 못했고 거기에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 등을 거치면서 상업이 발달한 기반을 갖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영업자가 어려운 것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가게를 한다는 건 내가 들어갈 감옥을 짓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열악하다.


3-2(137).JPG


자영업자들은 창업 후 1년 65.2%, 3년 후 37.8%, 5년 후 27.1%만 살아남고 5년 이내 약 73%가 폐업한다고 한다. 이런 수치는 한국 자영업자가 OECD 국가에서도 월등히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 기준으로 한국의 자영업자는 20% 정도로 전체적으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옆 나라 일본보다는 2배가 넘다 보니 경쟁도 치열하고 성공하기 힘들다. 과거 우리나라의 치킨집 수가 전 세계 맥도널드 매장 수보다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커피숍이나 편의점이 치킨집을 대신하고 있다.


20240715503386.jpg


창업에 뛰어드는 사람 중에는 젊은 사람들도 많지만 은퇴한 사람들이 퇴직금이나 노후자금으로 모아둔 창업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이는 정년이 다른 나라보다 빠르고, 특정 기술을 갖지 못한 회사원 출신들을 대상으로 한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명이 100년으로 늘어난 만큼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재능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노포의 노(老)가 경험의 가치로 인정되듯 노(老)는 쓸모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직 늙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이만큼 경험한 것들을 나눠주고, 그것이 그들의 지혜가 되고 사회적 경험과 지식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래야 사회도 노포처럼 격식이 있게 되지 않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더운 데 홋카이도나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