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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바테(夏バテ) 잘 견디고 있으십니까?

by 최유경

너무 덥다. 올해는 장마가 7월이 넘어 시작되더니 늦장마가 끝나자 마다 40도에 육박하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주 드디어 서울에서 사상 첫 40도를 돌파하는 등 전국은 폭염의 절정에 달하고 있다. 덥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사람은 물론 벌레들도 이런 날씨는 힘들었는지 모기조차 보기 힘든 2025년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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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도 없고 몸도 무겁고 두통에 어지럽기까지 하다. 더운 상황에 오래 노출되었을 때 발생하는 이상증세를 열사병, 일사병 등으로 말하지만 내가 어릴 때는 어른들이 온열로 생긴 증상이 보이면 ‘더위를 먹었다’고 했다. 더위라는 보이지 않는 실제를 꿀꺽 먹어버려 온열 증상을 일으킨다는 옛 선조의 발생이 재미있다. 더위 먹었을 때 신경을 안정시켜주고 갈증을 풀어주는데 보리차, 매실, 오이, 수박 등 수분이 많은 과일과 야채를 먹는 게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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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도 비슷한 말이 있는데 나츠바테이다. 나츠바테(夏バテ)는 나츠(여름)와 바테(バテ, 지치다)의 합성어이다. 나츠바테(夏バテ)의 「바테루(バテる)」의 어원에 대한 설은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 제일 설득력 있는 건 경마에서 ‘말이 피곤해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거다. 그 외에는 ‘지치다’를 의미하는 하테루(果てる)에서 바테루로 되었다는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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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더위를 이겨보자는 의미로, 여름의 시작되는 7월 중순에 들어있는 복날에 보양식으로 삼계탕을 먹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에게 복날이 있다면 일본에서는 ‘도요노우시노히(土用の丑の日)’가 있다. 도요(土用)는 입하・입추・입동・입춘 직전의 18일간을 말하고 우시(丑)는 십이지의 소이다. 도요(土用)의 기간에 있는 소의 날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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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노우시노히(土用の丑の日)’에 일본사람들은 왜 장어를 먹는 걸까? 일본사람들은 도쿠가와막부가 에도(도쿄)에 도읍을 정한 후부터 도쿄만에서 많이 잡히는 장어를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름이 되면 뜨거운 불 앞에서 장어를 구워 먹어야 하니 장어집은 장사가 되지 않았다. 그런 장어집 주인의 고민을 들은 히라가 겐나이(平賀源内, 1728-1780)는 가게 앞에 ‘도요노우시노히는 장어의 날, 장어를 먹으면 더위를 이겨낼 수 있다.’는 간판을 걸자고 제안하였는데 이에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이날이 지금의 장어 먹는 날로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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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가 겐나이는 에도시대 최고의 기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얼마나 학문적 호기심과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물이었는지는 그를 수식하는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의사, 지리학자, 희곡작가, 하이크 시인, 사업가, 도예가, 서양화가, 광물학자, 식물학자, 발명가, 관료, 이 모든 게 그를 수식하는 말이다. 문학작품으로는 '풍류 무사시노(風流武士)', '흉중망상(胸中妄想)', 발명품으로는 마찰기전기(elektriciteit) 등이 있는데 장어 광고문구를 보면 그의 경력에 카피라이터도 넣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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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족자를 만드는 세공사로 이름을 떨친 히라가는 13살에 지역의 의사에게 유교와 시를 배운 후 당시 난학이 가장 발전한 나가사키로 유학 가서 서양의학, 서양화, 서양과학 등을 배운다. 그는 이 지식을 바탕으로 측량기, 자침기 등을 개발하였다.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식물학자에게 식물학, 한학을 배워 지금으로 말하면 ‘약초 엑스포’ 개최를 제안하여 엄청난 규모의 약초 물산 회를 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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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발명가로, 때로는 문예가와 예술가로 살았던 자유인 하라가 겐나이이지만 그는 설계도를 도둑맞았다고 착각하여 목수들을 살해하기도 하였다. 결국, 그는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 다운 마지막 같기도 하지만 좀 더 오래 살았으면 더 신기하고 기이한 걸 발명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로 인해 먹게 된 여름날 장어. 굳이 백숙, 장어가 아니어도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고 이 더운 여름 잘 견뎌봅시다. 뭐든 입에 맞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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