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에게는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 개성을 드러내는 일보다는 타인의 생각을 우선하고 조직의 지시나 정해진 규정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성실하게 수행한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조직(국가, 회사, 가문 등)을 우선하는 일본인의 사고방식 때문에 이를 집단주의라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사적 공간에서 일본인은 매우 개인적이다. 서구에서 '개인주의'는 집단보다 개인의 권리, 자유, 의사결정을 우선시하는 독립적인 주체로서의 인간을 의미하지만, 일본인은 주체로서의 개인이 아닌 각자 개별성을 지닌 인간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일본을 대표하는 요리 하면 당연히 초밥일 거다. 그런데 이 초밥이라는 게 하나하나 집어먹는다는 면에서는 김밥과 유사하지만, 원하는 걸 골라 먹으니 김밥과도 좀 다르다. 또 김밥은 나눠 먹기도 하지만, 원래 초밥은 하나 혹은 두 개씩 손님이 원하는 걸 주문하면 만들어 주는 형식이니 매우 개인적인 음식이다.
일본에서 다 같이 먹는 전골류의 음식은 그리 많지 않다. 스키야키, ○○나베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음식은 우리처럼 매일 먹는 음식이 아니라 손님을 초대하거나 설이나 크리스마스 등 모두가 모이는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보아도 국, 밥, 메인요리(생선구이, 함박스테이크, 고로케 등)도 식당처럼 각각의 접시에 하나씩 담아준다. 단무지 같은 절임 반찬이나 샐러드 정도만 가운데 놓고 갖다먹는다. 하물며 단무지도 반찬도 다 소꿉장난 접시 같은 작은 종지에 담아준다.
그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밥과 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음식은 좀 커다란 그릇 혹은 접시에 담아 나눠 먹는다. 김치든 반찬이든 생선이든 고기든 한 접시에 수북이 담아 여러 사람이 갖다 먹는 문화이다. 그것도 메인요리를 제외하면 더 달라면 더 준다. 아마 반찬이 무한 리필되는 건 한국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데 이런 식문화를 일본인들이 가장 놀라워한다.
그렇게 보면 한국과 일본은 참으로 음식문화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간편한 패스트푸드에 익숙한 한국의 젊은이들이 점점 반찬을 먹지 않으면서, 카레나 덮밥 등 우리네 국밥처럼 한 그릇에 모두 담아서 먹는 일본의 음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래도 내가 어렸을 때는 돈가스 정식을 시키면 밥과 수프, 돈가스, 단무지 뭐 이런 구성으로 주었는데, 지금은 돈가스를 시키면 하나의 접시에 밥, 돈가스, 샐러드를 주거나 도시락 같은 그릇에 밥, 된장국, 샐러드, 돈가스를 담아주는 문화로 변화하고 있는 거다.
개인 접시, 개인 그릇 등 개인용 그릇에 담아 먹는 일본의 식문화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그릇만이 아니라 식탁도 개인용이었다. 전통적인 일본 가옥에는 식사 전용의 방도 상설된 식탁도 없다. 식사할 때는 하코젠(箱膳) 또는 메이메이젠(銘々膳)이라고 불리는 개인용 작은 식탁에서 사용했다. 식기 또한 한꺼번에 두는 것이 아니라 개인용 상자에 각기 밥그릇 국그릇 젓가락을 넣어둔다. 그러다 식사 때가 되면 개인용 식기를 넣은 상자에서 식기를 꺼내 엄마에게 주면 밥이니 국을 떠주는 그런 형식이었다.
당시 일본인의 식사 풍경은 기록에도 남아있다. 16세기에 제작된 '슈한론 두루마리 그림(酒飯論絵巻)' 에는 귀족 부부의 식사하는 모습이 들어있는데 이들 부부는 낮고 작은 개인용 식탁에 반찬 2, 3가지가 놓고 식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식탁을 2개 놓고 먹는데 여자는 적은 반찬에 밥이 많지만, 남성은 다양한 반찬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림 무로마치 시대의 풍속도에 그려진 식사 『슈한론 두루마리 그림(酒飯論絵巻』)부분.
에도시대 후기인 1883년에 간행된 책에도 식사하는 모습의 삽화가 들어있는데, 에도시대의 식문화를 기록한 '모리사다만고(守貞漫稿)'에 의하면 '도쿄인들은 평소, 아침에 지은 밥과 미소시루(味噌汁)로 아침을 먹고 점심과 저녁은 아침에 지은 찬밥을 먹는다. 단 점심을 채소 반찬을 추가하고 생선이나 고기 등은 꼭 점심때 먹는데, 저녁에는 즈케모노(茶漬け, 젊임야채)에 향기 있는 반찬을 추가해서 먹는다'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일본인들의 식사가 얼마나 개인적이고 소박했었는지 알 수 있다.
지금도 일본 드라마 등을 통해 일본인들이 아침으로 밥과 계란, 혹은 밥과 계란, 미소시루, 가끔 김을 먹는 걸 볼 수 있다. 점심에 공원이나 편의점, 혹은 회사 사무실에서 점심으로 주먹밥이나 빵으로 먹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있다. 우리 같으면 '때운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식사이지만, 일본인에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식사이다. 그러니 결코 일본은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라는 속담이 있을 수 없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