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 그런 건 없다.

by 최유경

이제는 마음에서만이 아니라 기억에서조차 사라져버린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려 한다. 하지만 결국 생각나는 건 누군가의 얼굴이 아니라, 누군가를 생각하며 가슴이 두근거렸던 그때의 나 였다는 건,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는 것 같다.



갑자기 사랑 이야기를 꺼내는 건 아 마도 오늘 아침부터 촉촉이 가을비가 내려서일 것이다. 나날이 상승하고 있는 지구의 기온은 11월 말임에도 눈 대신 비를 뿌리고 있고 그 덕에 난 사랑과 이별을 생각하고 있다. 11월 중순에는 본 적도 없는 첫눈이 서울의 어디선가 내렸다는 소식에 첫눈이 온 거로 해야 해 말아야 해라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영원한 사랑. 그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의 오랜 주제이다. 사랑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 순간이 내게도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변하지 않은 사랑 같은 건 없다는 걸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그런데도 난 지금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가슴 따뜻해지는 사랑 이야기를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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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부키를 소재로 한 일본영화, '국보'가 개봉됐다. 가부키가 처음 인기몰이를 하게 된 계기 역시 사랑이다. 그것도 동반 자살이다. 아리시마 다케오(有島 武郎), 다자이 오사무 (太宰治, 1909-1948) 등 일본의 유명 작가들이 동반 자살을 선택하면서 일본인이 동반 자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런 이미지가 강한 것은 역시 가부키 등 공연예술의 영향의 크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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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살을 최고의 문학작품의 반열에 올린 인물은 일본 최고의 극작가로 평가받는 지카마 쓰 몬자에몬 (近松門左衛門1653-1724)이다. 그가 쓴, 오사카 역 근처의 유흥가, 유명한 간장 집 데릴사위로 예정된 도쿠베( 兵衛)와 소네자키의 유녀(遊女), 오하츠(お初)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소네자키 신쥬( 根崎心中)'(1703)는 메가 히트했고, 동반자살은 젊은 연인들의 로망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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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자키 신쥬( 根崎心中)의 연인은 사랑 때문만이 자살하는 건 아니었다. 작은아버지의 가게에서 일하던 도쿠베의 성실함을 높이 평가한 작은 아버지는 그를 데릴사위로 삼기로 하는데, 유녀 오하츠와 사귀고 있던 도쿠베는 이 혼담을 거절한다. 그러자 도쿠베는 너무나 화가 난 작은아버지에게 가게에서 쫓겨나는데, 설상가상으로 친구에게 배신과 모략을 당하면서 더는 인간으로 살아갈 기력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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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결심한 도쿠베를 따라 오하츠도 자살을 결심하고 두 사람은 소나무에 서로의 몸을 묶고 자살하게 된다. 원래 이 극본은 인형극을 위한 극본이 소네자키 신쥬( 根崎心中)였지만 가부키를 통해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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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 자살을 일본에서는 신쥬(心中)라고 한다. 이 말은 원래 바람기 많은 남성이 여성에게 약속의 증표로 새끼손가락을 잘라 애정의 증표로 주는 행위를 말하는 거였는데, 소네자키의 극본으로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승에서 이루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의미로 정착하게 됐다.



그런데 신쥬라는 단어는 마음 심(心)과 가운데 중(中)으로 이루어진 단어로 心+中 을 합하면 忠이 되어 '너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의미가 된 것이다. 자살은 불교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커다란 죄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기필코 하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남녀의 각각의 손가락에 붉은 인연의 실을 묶고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면 저승에서 연꽃 속에서 귀한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헛된 희망이 젊은이들의 꿈을 앗아갔다.



한때 젊은이들의 추앙을 받던 다지이 오사무는 수차례에 걸쳐 자신을 사랑하는 여러 여성과 붉은 실로 허리를 묶고 자살을 시도했다. 자신의 절망에 타인을 끌어들여 죽음으로 포장한 오사무의 동반 자살은 결코 저승에서 연꽃잎에서 아름답게 피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일본의 문학은 자연의 사계관에 근거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고전문학이든 현대문 학이든 일본소설에는 자연을 묘사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자연물의 상태는 곧 등장인물의 마음인 것이다.



특히, '겐지이야기'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융합되는 감각이 중요하다. 자연은 결코 서양의 'nature'가 아닌 '있는 그대로(あるがまま)' '본연의 모습(おのずから)'의 의미다. 그러니 일본인에게 자연의 이치에 거스르지 않고 사는 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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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오듯 인생사도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병들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를 반복한다. 또한, 누군가를 향한 마음 또한 계절이 변하듯 봄처럼 부드러운 사랑을 거쳐 여름 처럼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가을처럼 쓸쓸한 사랑이 돼 사라지게 된다.



일본 최초의 문학, '이세이야기(伊勢物語)'나 '겐지이야기(源氏物語)' 속 주인공은 매우 현실적이다. 지금과 달리 근친상간 등 금기를 거침없이 깨고는 있지만 이들은 잘생긴 남자에게 홀랑 마음을 빼앗기고 남자들은 가난하거나 나이 많은 여인을 가차 없이 차 버린다. 남편이 집을 떠나면 부인은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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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전문학에는 영원한 사랑은 없다. 그게 당연한 거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변한다는 거다. 하지만 누군가를 불꽃처럼 뜨겁게 사랑하던 그 순간을 멈추게 할 방법은 그 순간에 멈추는 거다. 그 사랑하던 순간에.



동반자살은 그 사랑하던 영원한 순간을 멈추게 함으로 영원하게 만드는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흐름을 역행하는 거다. 그래서 자극적인 연극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인 것이다.



서양의 철학처럼 변하지 않는 사랑의 '이데아'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러니 매일, 매 순간 사랑도 관계도 나의 마음도…. 은각사의 모래 정원처럼 매일 쓸어도 늘 흐트러지는 게 마음이라, 우린 매 순간 내 마음도 네 마음도 들여다봐야 한다. 영원한 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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