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7일 '개그계 대부'로 불리던 코미디언 전유성이 7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69년 TBC 방송작가로 데뷔한 전유성은 '유머 1번지' '쇼 비디오자키' 등으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 KBS의 간판 개그 프로그램 '개그콘서트'를 기획해 수많은 스타 개그인들을 탄생시켰다.
우리는 지금 유튜브, 쇼트 등에서 자신이 원하는 재미난 콘텐츠를 언제 어디서든 찾아 즐기고 있다. 마음 놓고 가짜뉴스를 퍼트려도 표현의 자유라며 아무도 안 잡아가는 시대를 사는 요즘의 젊은이들에겐 믿기 힘들겠지만 '유언비어 날포죄'로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갈 수도 있는 시간을 우린 살았다.
잘 살기 위해서 죽기 살리고 뭐든 해야 했던 시대, 유튜브도 OTT도 없었지만, 우리에겐 TV가 있었다. 토요일 오후부터 시작되는 그 짧은 주말. 우린 가족끼리, 친구끼리 옹기종기 모여 TV를 봤고, 토요일 저녁 코미디 프로그램은 우리의 힘든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하는 윤활유가 돼줬다. 그 시절 코미디는 단순히 웃긴 이야기가 아니라 잠시 삶의 시름을 잊게 해줬고, 욕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TV 속 정치인들을 웃음과 해학으로 풍자하며 통쾌해할 수 있던 스트레스의 배출구이기도 했다.
세상이 코미디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일들로 가득해서 그런지 요즘 영 코미디가 재미없다. 그런데 옆 나라 일본에서는 코미디의 인기가 여전하다. 일본의 코미디 역사는 약 10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판소리 같은 악극에 등장하는 풍자, 해악의 장면이 아니라 코미디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모노 복장으로 혼자 방석에 앉아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라쿠고(落語)', 두 사람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만담, 만자이 등이 그것인데, 이 모든 걸 통틀어 '오와라이(お笑い)'라고 한다.
가부키가 일본의 전통적인 뮤지컬이라고 한다면 라쿠고(落語)는 일본의 오래된 오와라이이다. 그리고 라쿠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1910년경 '오쯔지 시로(大辻司郎)'에 의해 창설된 만담(漫談)으로 기모도 대신 양복을 입고 서서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지금 가장 일본에서 인기 있는 오와라이는 '만자이(漫才)'이다. 만자이는 에도시대 부채를 들고 춤을 추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북을 치는 그 말을 받는 두 사람으로 구성된 예능에서 발전한 것이다. 만자이에서 한쪽이 바보 같은 말을 하면 다른 한편은 그 말의 허점을 지적한다. 바보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보케(ボケ), 그걸 지적하는 사람이 쯧코미(ツッコミ)이다.
만자이가 오늘날 일본 오와라이 예능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데에는 1912년 사카 도톤보리에 요시모토 흥업(吉本興業)을 창업한 요시모토 기치베(吉本吉兵衛)와 근대 만자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동경대 출신의 시나리오 작가, 아키다 미노루(秋田實)의 공이 크다.
요시모토 와 아키타는 라쿠고를 발전시키는 한편 1933년, 만담이 아닌 만자이라는 특별한 장르를 탄생시켰다. 1970, 80년대 일본의 경제성장에 힘입어 더욱 번창하게 된 예능을 체계화하기 위해 요시모토는 1982년에 오와라이 양성소 'NSC'를 설립한다.
요시모토의 라쿠고인들은 가츠라라는 이름을 얻고 젊은이들은 각기 요시모토 출신임을 알 수 있는 이름으로 세상에서 활동한다. 이후 일본 오와라이 예능은 거의 요시모토 출신들이 잡게 되면서 요시모토는 그야말로 에도시대의 이에 제도처럼 오와라이의 예능인을 배출하는 예능의 가문으로 성장했다.
특정 집단이 한 분야에 독점적 지위를 갖는다는 면에서는 비판받을 수 있으나, 하나의 전통을 지키고 계승한다는 건 그것을 배운 사람들의 자부심이고 소속감일 수 있다. 최근 한국의 K-POP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연구생제도를 통한 체계적인 교육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전유성의 장례식에는 한국의 내로라하는 코미디언들이 다 모여 그를 추모했다. 이들은 입을 모아 전유성씨가 이들에게 코미디를 가르쳐준 선배이고 스승이며 코미디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준 기획자였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학교를 졸업해도 다시 가르쳐줄 스승이. 그리고 그게 재미있는 코미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울 것 같다. 모든 다 동전의 양면처럼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