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이 사랑이 통역 되나요?(2006)'를 보며 다정함에 대해 생각한다. 이 드라마는 4개 국어에 능통한 통역사 남자와 어느 날 갑자기 무명 배우에서 좀비 역할로 스타가 된 여배우의 로맨스물이다. 통역사가 직업인 이 남자는 상대방이 제대로 말을 못 해도, 기억의 오류로 잘못된 정보를 말해도 찰떡같이 고쳐 통역해준다. 그야말로 이 남자는 상대방의 말속의 의중까지도 정확히 파악해서 전달하는 프로 중 프로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조차 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완전히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마음을 전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상대방 여자는 형의 여자친구가 되어 나타나고 그 남자는 마음조차 전하지 못한 채 그녀를 처음 만났던 교토로 매해 여행을 떠난다.
늘 예의 바르고 조심성 있는 이 남자는 거기서 자기감정을 정제하지 않고 쏟아내는 한 여자를 만난다. 그래서 이 남자는 이 여자의 말이 그녀의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여자는 어린 시절 “넌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거야”라는 말을 들은 후부터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서툴다. 남자는 이 여자의 반어법적 어법과 태도가 너무 어렵다.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거로 생각하는 여자는 남자의 다정이 무섭다. 드라마에는 김경미 시인의 ‘다정이 나를’이라는 시가 등장한다.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장미 꽃나무 너무 다정할 때 그러하듯이 저녁 일몰 유독 다정할 때 유독 그러하듯이 뭘 잘못했는지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남자의 다정함은 여자를 흔들었고 그녀가 그토록 마주하고 싶지 않던 자신의 무의식에 침잠되어 있던 마음과 마주하게 했다. 이처럼 타인의 다정함은 나를 흔든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일본인이 그토록 사랑하는 가구야희메(かぐや姫)의 '간다가와(神田川)'의 노래가 생각났다.
당신은 벌써 잊었나 빨간 수건을 머플러로 두르고 둘이서 간 동네 목욕탕 같이 나오자 했지만 언제나 기다린 건 나였어. 젖은 머리는 얼어붙고 달아버린 비누 딸각딸각 당신은 나의 몸을 안으며 차갑다고 했지. 젊은 나의 날들.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지. 단지 너의 다정함만이 무서웠다.
あなたはもう 忘れたかしら 赤いてぬぐい マフラーにして ふたりで行った 横丁の風呂屋 いっしょに出ようねって いったのに いつもわたしが またされた 洗い髪が しんまで冷えて
小さなせっけん カタカタなった あなたは わたしの体を抱いて 冷たいねって 言ったのよ 若かった あのころ 何もこわくなかった ただ あなたのやさしさが こわかった
물론 이 노래를 부른 것은 남자다. 여자는 남자가 항시 먼저 나와 기다린다는 걸 알면서도 늘 늦게 나온다. 그리고는 머리카락이 다 얼어붙은 남자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여자의 따뜻함이 두렵다.
그리고 이어지는 2절에는 당신은 벌써 버렸나 24색의 크레파스를 사서 그려준 나의 초상화 잘 그렸네라고 했지. 하지만 하나도 닮은 적이 없어. 창문 밑에는 간다강 4평짜리 작은 하숙집 넌 나의 손가락을 보며 슬프냐고 묻는다. 젊은 나의 날들.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지. 단지 너의 다정함만이 무서웠다.
あなたはもう捨てたのかしら 二十四色のクレパス買って あなたが描いた わたしの似顔絵
うまく描いてねって言ったのに いつもちっとも似てないの 窓の下には 神田川 三畳一間の 小さな下宿 あなたは私の指先みつめ 悲しいかいって聞いたのよ 若かった あのころ 何もこわくなかった ただあなたのやさしさがこわかった
당신은 버렸을까 하는 말에서 두 사람이 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녀가 보는 자신은 현실의 자신과 늘 너무 달랐다. 그래서 이 관계가 오래가지 않은 거라는 걸 안다. 그러니 여자의 다정함은 남자에게는 두려움이다. '간다가와(神田川)'는 서로를 향한 엇갈린 사랑과 가난했지만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추억을 그린 노래로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다.
간다가와(神田川)가 발표된 건 베트남전쟁이 끝난 1973년이다. 그 일 년 전인 1972년, 패전으로 미국에 빼앗겼던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반환되었고 이어서 삿포로 올림픽, 중일 국교 정상화 등 일본 사회는 빠르게 변화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노래를 작곡한 키다죠 마코토(喜多條忠)는 와세다대학 출신으로 반미, 반베트남 전쟁을 주도한 전공투세대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젊은 날 사랑하는 여인과의 추억의 그린 노래이기도 하지만, 정의, 세계 평화 등 만화 주인공이 외칠법한 것에 청춘을 바친 사람들이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며 부른 노래이기도 하다.
이 사랑이 통역 되나요? 속의 다정함은 못 본 척 모르는 척 숨기던 나의 감정을 끌어내게 하는 두려운 다정함이었다면 이 노래 속 다정함은 현실에 안주하고 싶게 만드는 다정함, 비겁함을 드러내게 만드는 다정함이다. 그래서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