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본의 미

by 최유경

'일본의 아름다움(美)' 하면 우리는 대나무로 장식된 주택, 모래 정원, 다도, 정갈한 일본 음식, 일본의 사찰 등을 연상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아름다움을 일본인들은 주저 없이 와비(侘び), 사비(寂び)라고 말한다. 그 외에도 시부이(渋い)라는 말도 있는데 이 말들의 공통된 특징은 다 부정적인 의미라는 거다.



이 말들은 너무 외롭다, 녹슬다, 떨다 등의 의미를 지닌 말이다. 하고 많은 예쁘고 좋은 말들을 제치고 왜 하필 일본인들은 이런 단어들을 일본의 대표하는 미의식으로 생각하는 걸까?



우리나라 사전에는 이 말들은 "와비사비는 덜 완벽하고 단순하며 본질적인 것을 뜻하는 와비와, 오래되고 낡은 것을 뜻하는 사비가 합해진 단어로 부족하지만, 그 내면의 깊이가 충만함을 의미한다"(위키백서)고 설명돼 있다. 뭔가 알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 이 말의 의미는 도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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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비(侘び)와 사비(寂び)는 선(禅) 사상에서 유래한 말로 서로 다른 개념에서 생겨난 말이다. 선종의 깨달음이란 "살아있는 모든 것이 본래 가지고 있는 본성인 불성을 깨닫는 일"에서 출발한다. 선에서는 이를 위해서 완전함이 아닌 불완전함(비대칭, 불규칙)을 중시한다. 인간은 완전이라는 것은 영원히 손에 넣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의 불완전함을 쿨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건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것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시간을 역행할 수 없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태어나는(만들어지는) 그 순간부터 소멸을 향해 가고 있는 거다. 소멸은 우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움이고 이를 부정하는 건 스스로에게 괴로움을 더하는 일이다. 그러니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를 수용하고 그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게 바로 와비(侘び)이고 사비(寂び)이다.



와비(侘び)란 侘ぶ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로 '비관하다, 절망하다, 괴롭다' 등의 의미를 지닌 말이다. 어쨌든 내 마음의 상태가 매우 절망적인 거란 건데, 이 말에는 조용한 정취를 즐기며 유유자적한 삶을 보낸다는 뜻도 있다. 후자의 의미가 결국 오늘날 와비의 의미가 된 건데, 삶이 너무 곤궁하지만 그 고통스러운 상황을 벗어날 수도 없으니 그런 생활을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자는 거다. 나를 괴롭히는 가난, 외로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은 인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이니 나를 결핍시키는 상황은 낙관적으로 받아들이며 그 상황을 즐기며 정신적인 풍요를 느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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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비(さび)도 마찬가지이다. 고요할 적(寂)을 쓰는 사비는 적막함, 시들어진 것에서 느껴지는 깊이와 정취이다. 외형적으로는 부족하지만, 오랜 세월을 견딘 나무에는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외롭다·약하다'라는 그다지 좋은 개념은 아니지만, 이 개념을 일본의 문학가들은 인생에 깨달음을 얻는 단어로 받아들였다. 법정스님은 혼자 있는 법을 배우면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하였다. 특히 나이 들수록 혼자가 돼야 한다는데 이는 관계를 줄여 마음을 지키고, 욕심을 비워 삶을 가볍게 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진정 우리를 옭아매는 것들을 내려놓으면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려나?



와비, 사비와 더불어 일본인들이 자주 쓰는 표현 중에 시부(渋い)라는 것도 있다. 시부이, 시부미 또는 시부사라고 하는데 단순하고 미묘하며 눈에 거슬리지 않는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渋い(sibui)는 떫다는 의미로 차와 와인의 맛의 표현할 때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색이 시부이하다(色が渋い)', '시부이한 얼굴을 하고 있다(渋い顔をしている)' 등으로 일상생활에서도 폭넓게 사용되는 말이다.



渋い声(시부이고에) 차분한(가라앉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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渋い顔(시부이가오)떨떠름한 얼굴).



渋い味(시부이아지) 떫은맛.



渋渋 (시부시부)떨떠름하게 마지못하여.



'시부'라는 한자는 '호(澀)'라고 쓰고 '물이 흐르기 어렵다'는 의미가 있다. 떫은 감을 '시부 감’이라고 하지만, 감이 떫은 원인은 감에 들어있는 타닌 때문이다. 정확히는 타닌을 느끼는 것은 미각이 아니고, 혀에의 자극에 의한 촉각으로 여겨진다는 거다. 떫은 것과 비슷한 표현으로 쓴맛이 있지만, 떫은맛이 촉각으로 느끼는 것과 달리, 쓴맛은 미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쓰다는 표현은 부정적으로 포착되는 경우가 많고, 차의 표현에서는 쓰다는 불쾌한 맛을 나타내지만 떫다고 하면 맛에 정취가 있음을 의미한다. 와인과 차도 마찬가지로 타닌이 많이 들어있으면 떫게 느낀다. 일본의 다도에서 차의 떫은맛을 일본 특유의 미의식으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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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인생)의 불완전이 더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그려내고 만들어 내는 게 와비사비라고 하는데 뭐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 쓰디쓴 블랙커피를 마시며 우린 향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맥주에서 쓴맛이 들어있지만 거기서 우린 깊은 맛을 찾아내지 않는가? 인간은 이렇게 모순된 존재일지 모른다. 우리는 대칭과 비대칭을 적절히 오가며 그걸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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