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OTT에서 우연히 카나자와 토모키 감독의 2022년작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을 보게 됐다. 한국의 긴 제목과 달리 영화의 일본 제목은 너무나 간단한 'サバカン SABAKAN', 그냥 고등어통조림이다. 이 영화는 여느 일본 영화와 마찬가지로 잔잔하게 우정과 가족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남의 이야기를 대신 써주는 대필작가 히사다 타카이키(히사)다. 이혼한 아내에게 보내야 할 양육비로 허덕이는 삶을 살고 있는 히사가 어느 날 고등어통조림을 보고는 1986년 여름. 같은 반 친구, 타케를 기억해낸다. 한 계절을 달랑 2개의 러닝으로만 버티는 타케의 가난은 늘 반 친구들의 놀림거리였다. 놀림과 따돌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 그는 늘 책상에 물고기를 그려놓는다. 그러던 어느 날 반 아이들은 타케에게 사는 집을 보여달라고 집요하게 따라붙었고 그런 아이들을 떼놓을 수 없어 집을 보여주게 된다. 반 아이들은 이런 집에 사람이 어떻게 사냐고 웃고 놀리며 돌아간다.
여름방학 첫날, 타케는 히사의 집에 찾아와 반협박 조로 히사의 자전거로 자신과 무인도 부메랑 섬으로 돌고래를 보러 가자고 제안한다. 기대 반 강요 반, 타케를 따라나선 당일치기 모험에서 동네 청년들에게 시비가 붙기도 하고, 물에 빠져 죽을 뻔한 히사를 구해주는 누나를 만나는 등 여러 일을 겪는다.
히사는 묻는다. “왜 나야? 왜 같이 오자고 했어? 타케는 이에 ”우리 집을 보고 비웃지 않은 건 너밖에 없었으니까”라고 말한다. 결국, 부메랑 섬에서 돌고래를 볼 수는 없었지만 두 소년의 모험을 즐거웠고 이 두 소년은 처음으로 ‘다시 보자(마타테,また、ね)’를 여러 번 반복하며 헤어진다.
여름 탐험 이후 둘의 여름은 내내 함께였다. 두 소년은 낚시도 하고 산에 나는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라며 귤밭에서 귤 서리를 하다가 주인 할아버지에게 걸려서 도망가기도 하면서 히사는 훌쩍 성장한다. 초밥을 먹고 싶어 하는 히사를 위해 타케는 자신의 허름한 집으로 초대한다. 그 집에는 타케말고도 여동생들이 여럿 있었고 지금은 저세상으로 떠난 멋진 어부였던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는 엄마도 있었다. 타케는 히시를 위해 고등어통조림으로 멋진 초밥을 만들어준다. 고사리손으로 만들어준 고등어통조림 초밥을 히사는 세상 맛있게 먹는다. 히사에게 고등어 초밥은 그 어떤 음식에도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히사를 만난 타케의 엄마가 히사가 자신의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데 왜 친구(토모다치, 友達)라고 했냐는 말을 했다는 말을 들고 히사는 섭섭함을 넘어 배신감까지 든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히사는 타케를 멀리하고 타케는 다시 외톨이가 된다. 타케의 엄마는 풀죽은 타케의 모습이 마음에 걸려 서둘러 집에 돌아오던 날 밤. 자전거가 미끄러져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모두 뿔뿔이 친척 집으로 헤어진다. 히사는 자신의 저금통을 몽땅 털어 고등어통조림을 사 들고 삼촌의 집으로 가기 위해 기차역에 기차를 기다리던 타케에게 이를 전해주며 넌 나의 친구(友達)라는 말을 건넨다. 지난여름의 날들처럼 두 소년은 ‘또 보자 또 보자 또 보자(また、ね また、ね また、ね)’라는 말을 반복한다.
한참 세월이 지난 고향에서 초밥 요리사가 된 타케는 지금도 고등어통조림 초밥을 만들지만, 인기가 전혀 없다고 한다. 그런 타케를 만나러 고향으로 돌아온 히사를 타케는 자신이 떠나가던 그 기차역에서 다시 만나고 히사는 타케에게 고등어통조림을 전한다.
고등어는 우리나라에서도 국민 생선이라는 불릴 정도로 친근하게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생선이다. 물론 일본에서도 고등어는 서민들의 먹거리이다. 그런 고등어로 만든 통조림으로 상징되는 소년들의 성장 이야기. 이 영화를 보면서 오즈 야스지로의 '오차즈케의 맛'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이 영화는 좋은 집안에서 자란 부인이 시골 출신의 남편이 밥에 물을 말아먹는 것이 너무 지저분하다고 느끼며 결국 헤어질 결심까지 하는데 두 사람의 화해는 결국 아내가 남편이 즐기는 오차즈케를 함께 먹는 것으로 해결된다.
음식은 누군가와의 추억이고 누군가에 대한 마음이다. 그리고 입안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내 안으로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행위와 동일하다. 고등어통조림과 오차즈케가 바로 그런 거다.
그러다 문득 왜 일본에서 친구(友達)가 복수형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본어의 友達은 벗 우(友)에 복수형의 들을 의미하는 다치(達)로 이루어져 있다. 일본어 토모다치는 우리말의 친구가 주로 또래를 친구라고 칭하는 것과 영어의 friend처럼 나이 성별과 상관없이 폭넓게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
물론 토모다치 외에도 일본에는 우리말의 절친에 해당하는 신유(親友), 어른들이 쓰는 친한 친구라는 의미의 유우진(友人), 벗에 해당하는 토모(友) 등의 표현이 있다. 아이들은 이런 어려운 표현을 쓰지 않고 토모다치(友達)라고 하는데 어린 시절은 학교 동네 등을 통해 모두 다 같이 노니까 복수형인가 보다는 생각을 해본다. 토모다치가 나이가 들면서 절친, 벗 등으로 세분되는 게 아닐까, 히사에게 타케는 도모다치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신유(親友)’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여전히 이들에게 고등어 통조림 초밥은 소울푸드이라라. 나에게도 친구때문에 먹기 시작한 음식이 뭐가 있더라...오랜만에 친구에게 안부를 묻고 싶어지게 하는 그런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