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긴자(Ginza, 銀座)에는 파리의 샹젤리제처럼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빌딩, 일본 최초의 백화점인 미쓰코시(三越) 백화점(현재 긴자 미쓰코시:銀座 三越), 그리고 그 앞에는 명품 삽들이 즐비한 가로수 길이 있다.
임대료는 물론 평당 땅값이 일본에서 가장 비싼 상업과 패션, 유흥이 어우러진 거리 긴자.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긴자는 샐러리맨들이 즐겨 찾는 서민적인 유흥가, 유락쵸 바로 앞에 있는데 긴자를 조금 걸어 들어가면 에도시대의 최고의 상업과 유흥의 중심지였던 니혼바시(日本橋)가 나오는 그야말로 도교에서 가장 유서 깊은 거리라 할 수 있다.
한때는 우리나라 명동이 한국의 긴자로 비유되기도 했다. 경복궁 등 조선 왕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명동에는 고급 술집, 백화점, 극장 등이 밀집되어 있었지만, 1980년대 이후 상권이 강남으로 분산되면서 지금의 명동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쇼핑의 거리가 되어버린 듯해서 명동의 옛 정취가 그리운 사람으로서는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긴자라는 지명은 에도시대(江戸時代, 1603–1868)에 이곳에 은을 만들고 거래하는 긴자(銀座)라는 관공서가 있었던 것에서 유래된다. 도쿄 이외의 지역에도 긴자라는 지명을 지닌 곳들이 많은데 그곳들도 다 은을 거래하던 곳이었다고 생각하면 될 거다. 1872년, 긴자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서 오래된 건물 대신 빨간 벽돌로 된 서양식 건축물이 들어서고 샹젤리제의 아케이드처럼 비의 날에도 우산을 들지 않고도 걸을 수 있는 아케이드도 만들어져서 당시 긴자는 '벽돌 거리(煉瓦街)'라고도 불렸다.
일본 최초의 백화점에 이어 일본 최초의 카페(カフェ) '카페, 쁘랑땅(プランタン)'이 생기면서 긴자에는 수많은 예술가가 모여들었다. 뿐만 아니라 신문사들이 들어오면서 긴자는 그 옛날 명동처럼 뉴스와 패션, 예술을 송출하는 유행의 발신지로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후 긴자는 젊은이들 사이에 최신식 서양풍 건물을 구경하면서 어슬렁어슬렁(부라부라, ぶらぶら) 구경하는 거리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긴자=동경의 거리'라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그러면서 '은부라(銀ぶら)'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대도시의 이런 거리 하나쯤은 어디든 있다. 그런데 긴자의 특이점은 낮의 얼굴이 아닌 밤의 얼굴이다. 낮에는 잘 보이지 않던 얼굴이 밤이 되면 화려하게 장식하지도 않으면서도 어딘가 고급스러운 클럽들의 간판에 불이 들어온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손님을 안내하는 고급 클럽이 얼굴을 내미는 순간이다. 지금은 언론에 많이 노출되면서 상당히 대중화되었지만,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이곳은 정계 재계의 고위 인사들만이 찾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긴자의 고급 클럽(高級クラブ)에는 거기서 일하는 호스테스(銀座ホステス)를 관리하는 클럽의 마마상(クラブのママさん)이 있는데, 이들에 대한 일본 사회의 통념이 우리와는 좀 다르다. 일본의 마마상은 기모노를 입는데, 일본의 언론의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이들은 현대판 게이샤로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아무리 고급 클럽이라도 자신의 직업을 숨기는 우리나라와 달리 긴자의 클럽의 호스테스나 마마상은 방송 언론 등장에 나름 적극적이다. 마치 에도시대에 가장 잘 나가는 게이샤를 그림에 그려서 판매했던 것처럼 언론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긴자의 No. 1 호스테스〇〇 등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증원외무원 1종 면허를 가지고 있는 행동심리사인 야마자키 미호(山崎みほ)라는 여성이 긴자의 No. 1 호스테스라고 한다. 그녀는 낮에는 경제리포터로 일하고 밤에는 긴자의 호스테스로 일한다는 그녀의 팔로우 수가 만 명을 넘고 주로 경제, 주식,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그녀는 SNS 등을 통해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하게 보이게 하는 방법, 20만엔의 샴페인도 싸게 느끼게 하는 기술 등 다양한 것을 알려준다고 하니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 또한 우리와 일본의 유흥을 대하는 차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