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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Jun 22. 2022

드라마 ‘파친코’를 통해 본 자이니치의 삶

자이니치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동명 소설 < 파친코 >를 원작으로 한 Apple Original 시리즈 ‘파친코’(パチンコ) 가 오징어 게임에 이어 세계 OTT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이민진 작가는 7살 때 미국에 이민 간 재미 한국인으로 일본계 미국인과 결혼하여 일본에 4년 정도 살면서 이 소설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소설과 드라마 제목으로 사용된 파친코(パチンコ)는 다수의 못을 박은 유리판 위에 작은 구슬이 좌우에서 올라와 가운데 그 구슬이 구멍으로 들어가면 다시 구슬이 나오는 게임 기계를 말합니다. 파친코 기계는 코린트게임(コリントゲーム), 유럽의 월 머신(Wall Machine)과 같은 기계를 참고하여 1925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이 있지만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파친코라는 말은 쇠가 부딪칠 때 나는 ‘챙’하는 소리를 의미하는 파친(パチン)에 접미어 코(コ)가 더해져 생긴 말입니다. 나무로 만든 Y자형 새총도 파친코(ぱちんこ)라고 한다는군요.


‘파친코(パチンコ)’는 1924년 부산영도에서 하숙집 하는 집의 딸로 태어난 선자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넉넉하지 않지만 든든한 부모님의 사랑 속에 자라난 선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람의 아이를 몸에 지닌 채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오사카로 이주합니다. 그리고 공산주의 활동으로 체포되어 사망한 남편을 대신하여 낯선 땅, 오사카에서 차별과 멸시를 견디며 일가족을 이룬 이야기를 대서사시로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 제목이 ‘파친코(パチンコ)’인 이유는 선자의 아들 모자수가 ‘파친코’사업을 하고 있어서이지만, 재일한국인, 자이니치(ざいにち,在日)에게 파친코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일본 전국 파친코의 90%가 재일한국인이 운영하고 있는데, 그건 해방 직후 일본 국적을 상실한 한국인이 일본 땅에서는 제대로 된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살아가기 위해 재일한국인들은 일본인이 싫어하는 도살업, 유흥업, 음식점 등에 종사하게 되는데, 파친코 산업도 그중 하나입니다. ‘파친코’가 아무리 게임센터라고 포장해도 현금이 오가는 도박(ギャンブル,겜블)장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파친코사업을 사람들은 반 조폭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선자의 손자, 솔로몬을 대하는 손님들의 모습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친코가 붐을 일으킨 건 패전 직후로 그때는 경품으로 돈이 아닌 담배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1954년 연동식 연발 기계의 등장으로 1분에 200개 이상 구슬이 발사되면서 고객이 처분할 수 없을 만큼 경품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도박성도 강해지고 조직폭력조직, 야쿠자(ヤクザ)가 개입하기 시작합니다. 경품으로 받은 정가 100엔의 담배를 80엔에 야쿠자들이 사고, 그 담배를 다시 파친코 가게에 90엔에 파는 방식으로 이익을 챙기는 거죠. 도박성이 커진 파친코는 자연스럽게 야쿠자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대표적 유흥업이 된 거죠.


선자의 손자, 솔로몬은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으로 가서 명문대를 나오고 미국계 은행에 들어가지만, 일본에 살고 있고, 일본어가 모국어이면서도 일본인이 아닌 자이니치는 미국에서도 낯선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주 오래전 만난 영화감독, 최양일은 저에게 자신을 재일한국인, 혹은 재일교포, 재일동포라고 부르지 말고 꼭 ‘자이니치(在日)’라고 불러 달라고 하더라고요. 어디에도 없는,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도 모를 그 이름이 재일한국인의 아이텐티티라고 말입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지키지 못해 나라를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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