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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Jan 11. 2023

불편한 것과 싫은 것 사이의 그 어디

JTBC 주말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주인공 미정은 회사 동료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 불편한 구석이 있어요. 실망스러운 것도 있고 미운 것도 있고 질투하는 것도 있고 조금씩 다 앙금이 있어요. 사람들하고 수더분하게 잘 지내는 것 같아도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이 대사에 등장하는 ‘불편하다’라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참 많이 쓰는 표현입니다. 사전적으로는 ‘어떤 것을 사용하거나 이용하는 것이 거북하거나 괴롭다’,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괴롭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따위가 편하지 아니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일본에서도 같은 한자로 ‘좁아서 집이 불편하다’(狭くて不便な家), ‘교통이 불편하다’(交通が不便だ) 등 거의 유사한 의미로 사용합니다. 일본어 발음은 ‘후벤’(不便,ふべん)입니다. 하지만 일본어의 ‘후벤’(不便)은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하다’라는 의미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자리가 불편하다’, ‘ 저 사람은 좀 불편해’ 등과 같은 표현은 일본어로 어떻게 할까요. 예를 들어 ‘몸이 좀 불편하다’와 같은 표현은 ‘불편’이라는 말 대신 ‘구와이가 와루이’(具合(ぐあい)が悪(わる)い)라고 합니다. 具合(구와이)란 어떤 상태·상황을 말하는 말로 몸의 상태나 상황이 나쁘다는 표현이니 곧 몸이나 상황의 불편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어떤 것(사람과의 만남, 어떤 자리, 어떤 책, 어떤 물건 등)이 불편한 경우에는 주로 ‘고코치가 와루이’(心地(ごこち)が悪(わる)い)라고 합니다. 고코치(心地, ここち)는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불교 용어로 ‘신지(しんじ)’라고도 읽는데 우리말에서 ‘심지가 굳다’라로 사용하죠. 어떤 장소가 불편하다는 살 거(居)를 고코치(心地)에 붙여서 이고코치(居心地)가 와루이(悪い)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는 어떤 장소나 위치로 인해 마음이 불편한 경우를 말합니다.



우리말에서 ‘불편하다’라는 말은 어떤 상태, 상황, 몸 등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거의 모든 경우에 폭넓게 사용하지만, 일본어에서는 그 상황에 맞춰서 각기 달리 표현합니다. 마음이 불편한 것인지, 그 자리가 불편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주어진 상황이 불편한 것인지를 구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모든 사람, 모든 상황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불편해하는 내 마음이 상대방에게 들킬까 봐 또다시 불편해집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미정의 대사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 불편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면 불편한 것도 조금은 참아지지 않을까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의 상태, 고코치(心地,ここち)가 좋아지는 순간이 올 거로 생각하고 이를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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