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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Jun 22. 2022

무코노 히토, 우리 쪽이 아니구나

제주

제주 사람들은 바다 건너온 사람들을 ‘육지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제주에 갔을 때 ‘육지에서 왔냐?’는 그 낯선 말을 듣노라면 ‘아, 내가 이방인으로 분류되는구나’하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육지 사람이구나’라는 말에는 제주 ‘섬’ 사람이 아니어서 ‘언제든 여기를 떠날 수 있는’ 혹은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뉘앙스가 내포돼 있습니다. 지금은 여행, 출장, 한 달 살기, 아니면 아예 제주로 이주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1970년대 이전에는 신혼여행을 제외하면 파견근무를 포함해서 직업상 제주에 와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없고서는 제주에 오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주의 어머니들은 딸이 육지 사람과 혹여 사랑이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했다고 합니다. 언제든 ‘자식새끼’ 버리고 떠나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아무래도 교통수단이 제한되고, 언어나 생활풍습, 직업선택에도 많이 제한이 있어 육지 사람이 제주에 정착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 모든 것이 달라진 지금도 제주에 가면 ‘육지 사람’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와 비슷한 뉘앙스로 제가 일본에서 들었던 ‘무코우노 히토’(むこうの人)라는 말이 기억납니다. 일본어가 제법 능숙해지면서 언뜻 외국인인 줄 모르다가 제가 일본인이 아닌 걸 알아채면 ‘무코노히토데스네’(向こうの人ですね·저쪽 사람이군요)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마 제가 있었던 곳이 도쿄와 달리 오랜 역사를 지닌 오사카였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향한 행(向)자를 쓰는 무코우(向こう)는 ‘저쪽에 보이는 산’(向こうに見える山)처럼 비교적 멀리 떨어진 장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산 저쪽 마을’(山の向こうの村), 혹은 ‘길 건너’(通りの向こう)처럼 어떤 것은 사이에 둔 건너편을 지칭하기도 하고, ‘그쪽에 도착하면 먹자’(向こうへ着いたら食べよう)처럼 이곳이 아닌 목표로 한 그 어떤 곳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섬나라 일본은 바다도, 강도 많습니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강에 다리가 없는 경우가 많았고, 간혹 다리를 건널 때 돈을 내야 하는 때도 있어 강 건너편 마을과의 왕래가 쉽지 않았습니다.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일본에서는 강으로 인해 사람들의 왕래가 끊어지는 경우도 많고, 강을 건너면 문화, 풍습, 규율이 다른 경우도 많았습니다.



“손나 고토와 가와무코우노 리쿠츠다”(そんなことは川向うの理屈だ·그런 것은 강 건너 논리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강 건너 세상은 자신들의 세상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에도시대에는 에도(지금의 도쿄)에 살지 않는 사람을 시골 사람이라는 의미로 무코우노히토라고 했었습니다. 특히 근대이전까지 일본은 왕이 아닌 각 지방 영주에 백성들이 소속되었기 때문에 더군다나 ‘무코우노히토’(むこうの人)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였을 것 같습니다. 



무코우(むこう), 무코우노히토(むこうの人)라는 말은 자기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 말로 우리 쪽과는 다른 사람, 다른 곳에 소속된 사람이라는 구별 짓기의 말인 거죠. 굳이 그들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음에도 ‘무코우노히토(むこうの人) 군요’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쓸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넌 우리가 아니야!’, ‘넌 우리와 달라.’라고 말하며 쓱 밀쳐내는 듯한 그 말이 너무나 당연해서 때로는 가시가 되어 우리 마음을 찔러버리기도 합니다. 너무 당연해서일 겁니다. 그래도 낯선 봄바람이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하듯, 아무리 낯선 얼굴이라도 봄바람 바라보듯 바라봐준다면, 꽃샘추위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그 봄바람은 어느덧 따뜻한 바람이 되어 상대방을 감싸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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