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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Jun 22. 2022

양산을 든 여자-봄날은 간다

한국 근대 양산의 유입 

영화, ‘봄날은 간다(2001)’의 엔딩부분에 치매에 걸린 주인공 상우의 할머니가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양산을 들고 길을 떠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 모습은 할머니의 젊은 시절, 할아버지가 찍어주었다던 흑백 사진 한 장, 그리고 양산을 든 연수가 상우에게 차갑게 등을 돌리며 버스에 오르던 모습과 오버랩되 면서 애잔함을 더해주었다.  옛 사진 속의 할머니 이처럼 고운 한복차림에 양산을 든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은 빛바랜 사진 속에 추억처럼 아련하고 그래서 애잔하기까지 하다. 지금은 양산의 자리를 썬캡 이나 썬글라스가 대신하고 있지만,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양산은 여성들의 필수외출소품 중에 하나였고, 그러기에 우리는 양산에서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 을 연상하곤 한다






                      영화, 봄날은 간다 중에서


양산(陽傘)이 일본을 통해 유입되어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경이지만, 양복, 구두, 모자 등과 같은 서구의 신문물로 한국인쇄매체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01년 황성신보의 광고삽화를 통해서이다. 하지만, 다른 신문물이 외국기업 들의 적극적인 광고를 통해 유입되었던 것과 달리 양산은 양산과 여성, 특히 양산과 한복입은 여성이 결합된 모티브로 1910년대, 매일신보의 연재소설 속 삽화를 통해 대중화되었다. 이해조의 신소설, 춘외춘 (春外春)을 비롯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장한몽 (春外春)에서 어김없이 양산은 등장하였고, 1910년대의 한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판매홍보활동을 전개하던 인단광고에도 양산은 등장한다. 당시, 일반여성의 외출소품은 매우 한정적이었고 그렇기에 양산은 더욱 여성 들이 갖고 싶은 소박한 욕망의 상징처럼 표출되었다. 양산을 들고 외출하는 여성의 모습에서 한 때나마 가혹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봄날의 햇살을 즐기고,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욕망을 지닌 여성의 모습을 본다. 그렇게 양산은 구질구질한 일상을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는 가림막이 되어주었던 소품이었다.

1895년 양복의 허용에 이어 단발령의 시행으로 선망과 풍자의 대상이 된 안경, 모자, 구두, 시계, 여송연 등 하이 칼라의 소품들은 일러스트레이션(Illustration), 사진 (Photography) 등을 활용한 시각적 광고를 통해 한국사회에 유입되었는데, 우산(양산)은 1901년6월25일자 황성신보 의 광고삽화로, 박쥐모양우산의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매일신보의 급격 한 증가로, 이들 신문명은 주로 인쇄매체의 광고를 통해 유포되었다. 그 중 양산은 양장과 더불어 개화기, 서양의 선교사를 통해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900년대로 추정되는 사진 속의 엄비(영친왕의 모후, 그림4)는 서양의 귀족여성을 흉내 낸 양장드레스에 서구식 머리모양, 구두, 그리고 소품으 로 모자와 양산을 든 모습이다. 당시 양산은 개화여성이나 신분이 높은 여성을 표상하는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1910년대 후반부터 양산은 점차 대중화되기 시작하여 1910년대에는 인쇄매체에 도 ‘양산을 쓴 여인’의 모습이 삽화, 광고, 사진 등을 통해 등장하기에 이른다. 매일신보 1915년6월30일에 는 ‘요사이의 탑골공원’이라는 제목으로 한복에 양산을 든 여인의 뒷모습이 사진으로 게재되었고, 5월13일에는 양산을 쓴 이국적인 여성의 사진이 게재되었으며, 1917 년 7월28일에는 ‘중복날 약수터’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에는 중복더위를 피해 삼청동우물에 모인 사 람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게재되었는데,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 두 여인이 양산을 손에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리 부유한 집 여성스럽지 않은 차림새로 미루어볼 때, 이때는 이미 양산이 상당히 상용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입제한사치품이었던 양산은 1920년대 후반 더욱 대중화되었는데, 1927년 매일신보에는 그 해 봄 유행하는 양산의 모습을 소개하는 기사가 게재 되었고7), 1930년, 10년간 유행의 변화를 소개하는 동아일보기사에는 “옛날말로는 소위 박쥐산, 지금시쳇말로 양산(陽傘)이란! 그 것 말이다. 이것이 이름만이야 볕을 가리는 양산이지 만 실용(實用)에야 어대 양산이든가? 장옷 쓰개치 마를 갓 벗을 때에는 양산들은 사람의 얼굴 가리고 내외하는 장옷의 대용(代用)이오 치맛단이 정강이 위로 올라와 새로 모던 걸이란 신술어를 듣게 된 오 늘날에 와서는 양산이 일종장신구(裝飾具)의 치렛거 리가 아닌가”라며 양산이 여성의 장신구로 유행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한편, 양산광고가 매일신보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28년으로 1945년까지 단 5번에 불과하지만9), 양산은 총독부 관보인 매일신보의 기사, 일본인기업들의 광고, 그리고 1910년대의 연재소설을 통해 대중화되어갔다.


춘외춘 18회 1912


국의 향 1회 1913.10.2
장한몽 16회 1913.5.30

신문물인 양산은 나름 고가의 외출 액서세리였 고, 그러기에 주사용자가 유행에 민감한 젊은 여성들로 한정 되었는데, 양산을 젊은 여성의 모습은 매일신보신소설의 삽화에서 심심찮게 등장한다. 1912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이해조의 신소설, 춘외춘(春外春)18회에는 강학수의 집으 로 온 한복 차림에 양산을 쓴 한영진의 모습이 묘사되었다 (그림7). 이것은 최초로 한국의 대중인쇄매체에 등장한 ‘양 산’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양산을 쓴 여인’의 모습이다. 동일한 모티브가 조중환의 신소설, 「국의 향 (匊의 香)」의 첫 회에 등장하는데, 소설의 주인공 국회는, “서양머리에 구두 신고, 비단우산에 동저고리통치마를 허리에 둘렀으며 비단우산으로는 얼굴을 깊이 가린 모습”(그 림8)10)으로 묘사되었는데, 41회(1913.11.25)에도 기생이 되었다가 김용남과 혼인한 국희가 첫 회와 거의 동일하게 한복차림에 우산 끝에 레이스와 같은 장식이 달린 비단우산을 든 모습으로 묘사 되었다. 하지만, 58회(1913.12.16.)에서는 여전히 한복차림 의 국희가 아무런 장식이 없는 박쥐우산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모습이 등장하는데, 상반신만 클로즈업되어 우산이 더욱 강조된 느낌을 주고 있다. 그 외에도 44회(1913.11.28.) 와 63회(1913.12.23.)에는 양산을 접어 손에 들고 벤치에 앉 아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국의 향」에서 언급된 비단우 산은 검은 색에 우산을 편 생김새가 박쥐가 날개를 편 모습 과 닮았다고 하여 일본에서 박쥐양산(蝙蝠傘), 즉 코우모리 가사라고 불렸고 이를 한국에서는 비단우산이라고 하였다.


위의 소설 이외에도 신소설에는 양산과 여인이 결합된 모티브는 자주 등장하는데,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신소설 의 지평을 연 오자키 코요(尾崎紅葉)의 1897년작, 곤지키 야샤(金色夜叉)을 번안한 조중환의 「장한몽(長恨夢)」에 비록 양산을 쓴 모습은 아니지만, 많은 빈도로 양산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 등장한다. 16회에는 양산을 들고 수일을 기다리는 히가시가미13)에 한복차림의 순애, 24회에는 남 대문정거장에서 접은 양산을 손에 든 최만경, 「속편 장한 몽」3회(1915.5.27)에도 반쯤 접혀진 양산, 그리고 22회 (1915.6.27), 25회(1915.7.4), 46회(1915.8.14), 58회(1915.9. 2), 76회(1915.9.23), 143회(1915.12.24)에는 접혀진 채로 손에 들린 양산이 등장한다. 또한, 야나기가와 슌요(柳川春葉)의 1912년작,나사누나카(生さぬ 仲)의 조중환 번안소설,「단장록(斷膓錄)」8회(1914.1.11.)에도 모자에 레이스가 달린 양산을 손에 든 양장차림의 농선이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 등장하고, 16회 (1914.1.21.)과 38회(1914.2.20.), 그리고 66회(1914.3.31.)에는 순사에게 잡혀가는 준모를 보며 쓰러지는 황씨부인의 손에도 접혀진 양산이 들려있었으며 90회 (1914.5.7.)에도 황씨의 무릎 위에 양산이 놓여있다. 연재소설 삽화 이외에도 1913년7월8일,매일신보에는 박쥐양산을 쓰고 공부하러 가는 소녀의 뒷모습 을 그린 삽화가 게재되었다. 그런데, 양산을 들고 있는 여성들은 소녀 혹은 젊은 여성으로 한정되어 있었 는데, 특히 한 장면에 노파와 젊은 여성이 함께 등장하는 설정이 많았던 「장한 몽」에서도 노파의 손에는 양산이 없지만 젊은 여성들의 손에 양산이 들려있는 것으로 보아 양산은 패션 액서세리와 비슷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양산은 소설 속 삽화의 등장인물의 소품으로 등장하며, 오늘날 PPL처 럼 독자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며 구매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신소설에는 양산만 이 아니라 구두, 안경, 맥주, 소파, 식탁, 스탠드, 침대 등 이국적 신문물이 대거 등장하지만, 특히 양산에 주목하는 것은 ‘양산을 쓴 여인’이 자포니슴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 인상파의 소재이기 때문이다.(이어서 2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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