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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Jun 23. 2022

양산을 쓰는 여인2

인상파 미술과 자포니슴

 한국근대광고에서 ‘양산을 쓴 여인’의 모티브를 사용한 대표적 예는 인단광고이다. 한일병탄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조선시장을 공략했던 1915년의 인단(仁 丹)의 광고(1915.10.1 최초등장)에는 경성에서 열리는 「시정 5주년 조선물산공진 회’」(1915.9.11. - 10.31개최)를 ‘인단만 있으면 유쾌로 만족’하게 관람할 수 있다 


매일신문, 인단광고 1915 10.1

  교복을 입은 남자아이를 데리고  양산을 쓰고 기모노 차림으로 공진회를 구경가는 여성 이 등장한다. 이것은 양산이 최초로 한국광고에서 사용 된 경우이며, 신문연재소설의 삽화를 제외하면 한국인 쇄매체에 양산이 등장한 매우 보기 드문 예라 할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뒤 한국인 회사의 광고에도 ‘양산을 쓴  여인’이 등장하는데, 제생당약방의 청심보명단 광고이다. 


제생당 약방의 청심보명단광고 동아, 1920.4.14

 1920년 4월 14일, 동아일보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양산을 쓴 아낙이 어린 딸(복희)을 데리고 봄나들 이 나온 모습이 등장한다. 딸과 대화하는 설정으로 구성된 이 광고의 구도는  인단과 서있는 방향과 의복만 기모노에서 한복으로 변화되었을 뿐 거의 동일한  포즈로 제작되었다. ‘양산을 쓴 여인’은 인단 과 청심보명단이라는 동일한 약광고에 사용 되었고, 둘 다 어린 아이를 동반하고 외출하 는 구도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인단의 광고가  여타의 광고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인단광고에서 기모노를  입은 여성은 아들을 데리고 걸어가는 설정이 었기 때문에 시선이 둘 다 앞을 바라보고 있 지만, 청심명보단의 광고에 등장하는 여성은 땅에 핀 꽃을 따기 위해 앉아있는  딸에게 시선이 향해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시선은 딸이 아닌 인단의  여성처럼 앞을 보고 있는 모습에서 인단광고의 영향을 짐작하게 해 준다.  1910년대, 약광고는 인쇄매체를 통한 광고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분야 중 하나로, 광고가 유행을 앞서가거나 당대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모습을  차용하여 제작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양산을 쓴 여성의 모습은 가장 모던한  이미지의 하나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서양미술에서 ‘양산을 쓴 여인’의 모티브를 즐겨 사용한 대표적 화가는 일본 미술, 특히 우키요에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던 모네(Claude Oscar Monet,  1840-1926)로 1870년대부터 공간표현에서 일본미술의 영향을 보인  제임스 티소, 양산을 뜬 뉴튼부인,1879 작품에서 ‘양산을 쓴 여인’의 모티브가 등장한다. 

양산을 쓴 여인 - 클로드 모네

  


인단과 청심보명 당약국의 광고의 전형을 제공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 모네가 아내, 카미유부인과 아들, 장을 모델로 제작한 《산책, 양산을 쓴 여인》이다. 모네의  다른 작품 속의 양산을 쓴 여인들이 대부분 좌상, 혹은 단독입상으로 제작된  것에 반해, 어린 아이를 동반한 여성의 입상으로 제작된 《산책, 양산을 쓴 여인》 은 양산을 들고 약간 비스듬하게 해들 등지고 나선 모양으로 서 있는 카미유부인 이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앞의 두 광고 속의 여성과의 유사성을  더해주고 있다. 모네 이외에도 쇠라의 《양산을 쓴 여인》(1884)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1884), 르노와르의 《양산을 든 리즈》, 그리고 일본취미의 화가,  휘슬러의 《푸른색과 핑크의 심포니》(1868)와 제임스 티소의 《양산을 쓴 튜튼부인》,《여름》 등 19세기 후반, 많은 유럽의 화가들이 ‘양산을 쓴 여인’을  소재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모네,                                                  르노와르         제임스 티소



원래, 여성의 단독입상은 19세기, 브르조아 문화가 정점에 다다른 프랑스 제2제정 시기에 원래 귀족의 전유물이던 초상화가 중산계층으로 확대되면서 유행 한 것으로 마부치는 모네의 《라 자포네즈》와 《산책, 양산을 쓴 여인》은 동시대에 유행한 귀족적 우아함에 나타내는 여성의 입상초상화에  일본양산을 유럽여 성들이 외출용 소품으로 애용하면서 양산은 그야말로 유 행을 선도하는 파리여성들의 애용품이 되었다. 


하지만, 인상파화가들의 ‘양산을 쓴 여인’을 주제로 한 작품은 눈 쌓 인 길을 연인이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모습을 그린 스즈키  하루노부(鈴木春信)의 《설중회상산(雪中会相傘)》를 비롯하여 케이사이 에이잔(溪斎英泉)의 《가는 해(去ぬ る年)》《간다묘진(神田明神)》, 기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 歌麿)의 《우산을 쓴 행렬》, 《우산을 쓴 남녀》, 구나가와  에이잔(菊川英山)의 《풍류미인들(風流美人揃)》등 게이샤 나 가부키배우들 등을 소재로 제작한 일본의 목판화인 우 키요에의 영향 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스즈키 하루노부


 에도시대(17세기 전후반)에 등장하여 넓게 에도서민들의 사랑을 받은 우키요에(浮世絵)는 오랜 전란을 끝내고 ‘들뜬 마음으로 일상을 살자’는 의미까지 더해 지면서 서민들의 일상과 사회풍속, 풍습, 특히, 게이샤, 가부키배우들을 낙천적 으로 묘사하며 인기를 끌었는데, 에도 말에는 광고전단지나 그림에 화장품이나  상품을 삽입하여 선전하는 우키요에가 유행하며 최신 유행하는 것을 몸에 걸친  가부키배우나 미인화들이 제작되었다. 비나 눈이 오는 날, 혹은 꽃놀이나 여름 햇살을 피하기 위해 우산, 혹은 양산을 손에 든 게이샤나 배우들을 소재로 한  우키요에는 19세기 후반에 더욱 유행하였고, 이것이 만국박람회 출품을 계기로  유럽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19세기 중반, 새로운 예술에 목말라하던 유럽미술계에 오리엔탈리즘의 일환 으로 수용한 일본미술, 그 중에서도 우키요에 및 일본공예품의 유입은 인상파  및 일본취미를 지닌 화가의 작품에 ‘양산을 쓴 여인’의 모티브를 유행시켰다.  그런데, 인상파화가들의 이러한 자포니슴의 작품들은 유럽으로 유학 간 일본인  화가들에 의하여 다시 일본으로 재유입되었는데, 이러한 역수입된 미술의 경향 을 다카시나 슈지(高階秀爾)는 자포니슴의 역수입이라고 명명하였다


 일본취미가 유행하는 가운데 ‘양산을 쓴 여인’이라는 소재는 인상파, 그 중에 서도 자포니슴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에서 두드러지게 사용되었다.  그런데, 명치기, 서구화의 일환으로 서양미술이 일본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일본은 일본미술의 영향을 받은 서양미술을 서구의 최첨단 화풍으로 일본미술 계에 유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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