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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Jan 31. 2023

애매한 표현으로 애매한 나를 분명히 전하는 일본어

일본에서 물건을 사면 포장지를 버리기가 아까울 정도로 예쁘게 포장해주는 곳이 정말 많죠. 물건을 포장하듯 일본사람들은 말에도 다양하게 포장을 해서 이들의 속내를 좀체 알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좀 돌려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솔직하지 못한 것 같고 그래서 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죠. 그건 아마 같은 의미라도 다양한 표현법이 있고, 단어마다 뉘앙스가 약간씩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말은 ‘저’, 혹은 ‘나’ 정도이지만, 일본어는 나를 표현하는 말이 ‘와타시(わたし,私)’, ‘와타쿠시(わたくし,私)’,‘아타시(あたし)’, ‘우치(うち)’, ‘오레(おれ,俺)’, ‘보쿠(ぼく僕)’, ‘와시(わし)’, ‘지분(じぶん,自分)’, ‘토호우(当方, とうほう)’ 등 다양하게 있고 이 말들은 조금씩 의미가 다릅니다.


이 중에서 오레(おれ,俺), 보쿠(ぼく僕), 와시(わし)는 남자들이 자신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으로 ‘오레’는 남성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표현으로 일부러 더 강하게 보이려고 할 때 사용합니다. 가타카나로 오레(オレ)라고 쓰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조폭 영화에서 남자들은 자신을 ‘오레’라는 지칭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오레가 조직에 있는 사람만 사용하는 말은 아닙니다. 주로 젊은 남자들이 친한 친구들끼리 혹은 아랫사람에게 자신을 강하게 드러낼 때 많이 사용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와시(わし)라고 하는 남성들도 간혹 있는데, 이 표현은 주로 사극에 많이 나옵니다. 쓰임새는 ‘오레’와 비슷하고요. 요즘도 이 표현을 쓰는 분들은 주로 지역의 오래된 풍습에서 기인하거나, 좀 연령대가 높고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보쿠(僕)는 수줍은 소년의 이미지가 있어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좀 얌전한 소년들이 보쿠라고 자신을 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일본 남자들이 가장 많이 자기 생각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로, 공식 석상이나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제가 하겠습니다(わたしがやります)’ 등 생각이 아닌 주로 행위의 주체로 자신을 표현할 때는 보쿠가 아닌 와타시(わたし)를 씁니다. 



또한 지분(じぶん,自分)도 거의 남성들이 사용하는데, 자신을 낮추면서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말로 주로 스포츠 선수가 “지분와(自分は)….”의 형태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상하 관계를 지나치게 의식한 표현으로 좀 보수적인 남성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관서지방에서는 자신이 아닌 상대방을 지칭할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지역문화에 친근하지 않은 사람 중에는 그런 표현에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치’는 남녀 모두 사용하는데, 좀 연령대가 높으신 분들이 사용하는 표현으로 좀 고집스러워 보인다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아타시(あたし)’는 여자들이 좀 귀엽게 말할 때 쓰는 표현으로 남성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토호우(当方)는 비즈니스에서 내가 속한 쪽을 겸양하여 표현하는 방법으로 “저희 입장에서는(当方の立場意見としては)”이라고 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이처럼 일본어는 어떤 1인칭을 선택하는가에 따라서도 상대방에게 주는 인상이 달라지고 사용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에 따라서, 상대방이 사업파트너인지, 자기보다 윗사람인지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그리고 문자를 보낼 때, 히라가나(ひらがな)로 표현하는지, 가타카나(カタカナ)로 표현하는지에 따라 경쾌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차분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어떤 단어를 선택할 것인가만이 아니라 같은 말이라도 어떤 한자를 선택할지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또한 일본어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 어디에 쉼표를 찍는지에 따라서도 문장의 질감이 달라지는 언어입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한자와 한글을 혼용하여 사용하였지만 하나의 한자에는 거의 하나의 발음을 하죠. 하지만 일본은 하나의 한자를 한자식으로 읽기도 하고(음독), 뜻으로 발음(훈독)하기도 합니다.



정확(正確)과 성격(性格)은 모두 세이카쿠(せいかく)라고 발음하고 의지(意志)와 의사(医師)는 모두 이시(いし)라고 발음하지만, 의미가 다르죠. 이런 경우는 같은 한자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덥다(暑い), 뜨겁다(熱い), 두껍다(厚い)는 단어의 경우 모두 발음은 아츠이(あつい)이지만 각기 의미는 다릅니다. 이런 경우는 동사에도 있는데 때리다, 치다(打つ), 적(敵)을 토벌하다, 공격하다(討つ), 총(銃)을 쏘다(撃つ)는 한자가 다르지만 모두 우츠(うつ)라고 발음하니 표현할 때 적절한 한자를 찾아서 써야 하고 듣는 사람은 문맥에서 그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 겁니다.


이처럼 일본어는 단어만으로는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맥과 말하는 사람의 말투, 그 단어가 지닌 특유의 느낌 등을 통해 이해해야만 오역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어를 번역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이러한 일본어의 독특성을 「오모테(表)와 우라(裏)의 이중성, 즉 겉과 속이 다른 것」, 「불완전의 미학(不完全の美)」, 다 꺼내 보이지 않는 것, 「과하지 않는 것:데즈이라즈(出ず入らず,でず‐いらず)」, 「하지(恥), 즉 부끄러움의 문화」라고 합니다.



이러한 미의식은 그 무엇보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생긴 말입니다. 이런 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은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는 있을지 몰라도 타인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지니기 쉽고 자신을 고립시킬 수도 있습니다.



확실히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 결코 타인을 배려하거나 여유로움에서 오는 것이 아닐 수 있음을 그것이 더욱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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