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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Mar 07. 2023

겨울의 끝자락, 도호쿠지방에 가고싶다

우수가 지나고 조금씩 봄기운이 느껴지니 갑작스레 하얗게 눈 덮인 겨울 풍경이 그리워지는 건, 떠난다니 붙잡고 싶은 제 이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일 겁니다. 눈 쌓인 철로를 가로지르며 달리다 보면 그리운 무엇인가가 거기에 있을 것 같은, 아니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리움에 대한 기대를 담아 혼슈의 최북단 아오모리(青森)에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1982년에 ‘도호쿠 신칸센(東北新幹線地方)’이 개통되기 전까지 도호쿠 지방은 울창한 산림과 쌓인 눈으로 외부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고장이었습니다. 도호쿠 지방의 최북단에 있는 아오모리는 2021년에 358cm의 적설량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겨울왕국처럼 눈으로 둘러싸인 아오모리, 그리고 거친 파도, 황량한 항구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추가로 해협(津軽海峡)은 일본 엔카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소재입니다. 요즘에야 신칸센으로 그나마 접근성이 높아졌지만, 가난과 추위, 눈, 정감 있지만, 타지인들에게는 알아듣기 어려운 도호쿠 사투리는 오랫동안 도호쿠 지방(東北地方)을 대변하는 말들이었습니다.




도호쿠 지방은 역사적으로 대륙에서 이주해온 도래인들에게 밀려, 일본의 최북단까지 밀려 올라간 토착민에 뿌리는 둔 곳으로, 늘 냉해와 흉작으로 가난을 면치 못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눈과 추위, 그리고 울창한 산림으로 사람들에게 외면받던 도호쿠지역에 금광석과 석탄이 매장되어 있고, 맛난 쌀과 과일이 있다는 걸 800년경부터 알게 된 사람들은 그것들을 빼앗기 위해 도륙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도호쿠 지역은 오랫동안 조정으로부터 차별과 탄압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은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도호쿠지역은 눈의 나라이며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곳입니다. 사투리로 심해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으로 착각하여 많은 도호쿠사람들이 살해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직 신칸센이 개통되기 전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도호쿠 지역의 남성들은  겨울철에는 도쿄, 나고야 등 대도시로 돈을 벌러(出稼ぎ)고 나갔다가 봄이 되면 돌아와 농사를 지었습니다. 도호쿠 지역에서 도쿄로 오는 기차의 종착역인 도쿄 ‘우에노(上野)’에는 지금도 ‘아메요코(アメ横)’라는 큰 시장이 남아있습니다. 도호쿠 지방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북쪽 땅에서(北の国から)’(1981-82)는 겨울철에 도쿄로 일하러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이들과 여성들, 도쿄에서 고생하는 아버지와 자녀들의 이야기가 눈물샘을 자극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인기에 힘입어 종영 1년 후부터 2002년까지 장장 21년에 걸쳐 방영한 드라마였습니다.


그런 도호쿠 지방에 왜 가고 싶은 걸까? 설국을 겨울 왕국정도로 생각하는 나의 미천한 상상력도 한 몫하는 거겠지만,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로 시작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유키쿠니(雪国, 설국)』의 영향이 가장 큰 거 같습니다. 




도호쿠지방 니가타(新潟)의 에치고유자와(越後湯沢)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그 고장 사람이 아닌 이방인 시마무라의 눈으로 한 남자를 사랑하는 두 여인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지금같으면 남성의 욕망을 투영한 소설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으나 하얀 눈과 어우러진 그녀들의 사랑은 시각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처연한 사랑인 것 같습니다. 



소설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이지만 첫 구절에 등장하는 ‘국경(国境)’이란 말이 늘 맘에 걸리더라고요. 번역서를 읽은 사람들은 국경의 의미를 이해할까 하는 생각에서죠. 국경(国境)이란 나라와 나라 사이에 있는 경계를 말하는 거지만, 근대이전까지 일본은 지방분권제로 서양의 영주와 유사한 성주가 지배하는 지역을 나라(国)라고 불렸습니다. 74개의 구니(国)가 있었는데, 오사카는 셋츠노쿠니(摂津国), 도쿄는 무사시노구니(武蔵国)라고 불렸지요. 그래서 미술로 유명한 도쿄 소재의 대학 이름이 무사시노대학인 겁니다. 그러니 국경이라는 번역보다는 ‘~로 들어가는 긴 터널’ 과 같이 번역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살짝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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