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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Mar 08. 2023

일본을 상징하는 꽃은 국화? 벗꽃?

 비가 오는 봄날 아침. 초목의 생명수가 되어 줄 봄비는 우리 주변을 환하게 분홍빛으로 물들여줄 꽃을 피워낼 겁니다. 

  어느 날 학생이 저에게 일본을 상징하는 국화(国花,こっか)가 벚꽃이냐고 묻더군요. 순간 저도 당황했습니다. 벚꽃인가? 일본 하면 많은 사람이 벚꽃(桜, サクラ)을 생각할 겁니다. 실제로 봄이 되면 일본 전역을 핑크로 물들이며 일본인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꽃(花,はな), 벚꽃을 일본의 국화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일본에서 벚꽃만큼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일본인이 가장 고결하다고 생각하며 숭배하는 꽃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 왕실 가문(皇室の)의 상징 국화, 키쿠(菊, キク)입니다. 지금도 일본 여권이나 국가가 주는 훈장, 국회의원의 빼지 등 일본을 상징하는 거의 모든 장식으로는 국화문장(菊花紋章)이 사용됩니다.



1869년, 왕실의제령(皇室儀制令)에 의해 국화가 일본 왕실의 문장(皇室の紋)으로 정해지면서 왕실 관련, 나아가 일본국가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국화가 사용됩니다. 그렇다고 모든 국화문양이 일본 왕실의 문양은 아닙니다.



왕실 국화문양은 16개의 국화 이파리로 디자인된 문양(十六葉八重表菊形)을 사용합니다. 참고로 귀족들은 14 이파리에 국화의 뒷모습이 디자인된 문양(十四葉一重裏菊形)을 사용하도록 규정돼 있어 일반인들이 함부로 사용할 수 없게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꽃은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은 법으로 정한 나라의 꽃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대중성 있는 벚꽃과 대내외적으로 일본의 상징인 일본 왕실의 꽃, 국화 사이에서 결정하기 어려워서 그런 거 같기도 하지만 두 개의 상징물을 동시에 공유하는 정치체제를 유지해온 일본에서는 그다지 위화감이 없어 보입니다.



근대 이전 일본은 왕과 귀족들이 중심이 된 조정(朝廷)과 왕이 정치 권력을 위임한 무가(武家)의 리더, 쇼군(将軍)이라는 두 정치세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걸 막부정치(幕府政治, ばくふせいじ)라고 합니다.



국화가 조정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던 반면, 벚꽃은 무사나 문인들이 선호하는 소재이며 문양이었습니다. 그러니 일본에서는 벚꽃과 국화, 이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기 어려웠던 거죠.



유교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도 ‘매란국죽’(梅蘭菊竹)은 군자의 상징으로 비유돼 시나 미술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매우 선호되는 꽃입니다. 일본도 다르지 않습니다. 헤이안 시대에 일본에서 전래한 국화는 장수를 상징하는 꽃으로 인식되어 술이나 차로도 만들어졌고, 궁중에서 인기가 높았습니다.



지금처럼 법으로 규정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 왕실의 상징으로 국화가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부터이고 일반 서민들에게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에도시대(江戸時代)부터라고 합니다.



도시문화가 발달한 에도시대의 시민들 사이에 화초의 종자 개량, 분재 등 원예 붐이 일어나고, 그런 가운데 다양한 크기와 색상의 국화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도쿠가와막부는 음력 9월 9일을 국화로 만든 술과 차를 마시는 날로 정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사람 크기만 한 인형에 국화꽃을 장식하는 국화 인형이 만들어지면서 서민들 사이에 국화는 더욱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마 에도시대의 이런 인기는 오랫동안 왕실을 중심으로 고귀한 꽃으로 사랑받으며 기모노, 도자기, 회화, 부채, 문구, 칼 등에 사용된 국화에 대한 서민들의 동경심이 컸기 때문일 겁니다.



에도시대는 상업이 발달로 일부 도시에 국한된 것이지만, 서구의 부르주아에 해당하는 엄청난 거상들이 탄생하고 이들의 지원을 받아 문예 부흥 운동이 일어납니다. 비록 신분은 높지 않았지만, 이들은 종래 자신들이 누리지 못했던 연극, 미술, 문학,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어 냈는데, 국화는 이 과정에서 그림으로 그릇과 가구, 기모노의 문양이 되어  대중화되어 갑니다.



명치시대 목판화


그리고 1873년의 빈박람회를 비롯한 파리 박람회에서 국화는 서양인들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그저 그런 꽃으로만 여겨졌던 국화가 아닌 300여종이 넘는 품종으로 개량되어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뽑내고 있었던 거죠. 거기에 국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문양들, 그림들은 곧바로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이국취미자들의 마음을 빼앗가 가면서 국화=일본이 됩니다. 


1873년 빈 박람회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로티(Pierre Loti)는 1885년, 일본의 나가사키에 약 한 달간 머문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국화부인』이 인기를 끌자 더욱 국화는 일본의 상징처럼 되버렸습니다. 후일 이 소설은 오페라의 거장 푸치니에 의해 그 유명한 '나비부인'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네, 르노와를 비롯한 인상파화가들은 그림 속에 국화를 넣어 자신이 얼마나 모던한 사람임을 증명해보였습니다. 새로운 건 늘 우리 맘을 설레게 합니다. 이 봄 당신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건 무엇인가요? 전 지금부터 찾아보려합니다.


르누아르 부채를 든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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