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잔재 청산의 목적으로 한국어에 남아 있는 일본어를 우리말로 순화하려는 자정 노력이 오랫동안 이루어져 왔습니다. 한국어는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로 구성되는데 고유어는 순우리말, 한자어는 중국 문헌에서 만들어진 어휘로 우리나라 말 중 약 6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파마, 커피, 프린터기처럼 우리말처럼 사용하는 게 외래어입니다.
‘일제강점’이라는 불행한 시기를 겪은 상황에서 일본어의 잔재, 혹은 일본에서 들여온 말에 대한 잣대는 엄격합니다. 당시 일본은 의도적으로 우리의 문화, 언어, 역사를 훼손, 왜곡, 심지어 사라지게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우리의 문화(언어·풍습)와 문화재를 복원하고자 하는 노력은 너무나 당연한 우리 후손들의 의무일 겁니다. 특히 언어는 의식을 규정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가 사라진다는 건 나의 의식에서 우리의 정서와 문화의 일부가 사라져버린다는 의미일 겁니다.
소데나시(민소매, 袖なし), 시다(보조원, シダ), 이빠이(가득, いっぱい), 나가리(무산되다, ながり), 야키만두(군만두, 焼き餃子), 왔다리 갔다리(왔다 갔다 하다, 行ったり来たり), 함바(건설현장마다 옮겨 다니는 식당, はんば), 똔똔(득실 없이 본전, トントン), 노가다(막노동, どかた), 기스(상처, きず), 찌라시(광고지, ちらし), 잉꼬(鸚哥, いんこ).
이런 말들은 딱 들어도 일본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는 것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인정하는 듯해 심한 거부감이 듭니다. 그런데 청산의 대상이 애매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왔지만 일본어 발음이 아닌 한자어를 한국 발음으로 음차하는 경우의 말들은 원래 우리가 쓰던 어휘인지 일본어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간식, 곤색, 산보, 나대지, 노점, 견적서, 고객, 가건물 등은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어휘가 그대로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말들입니다. 이런 말들도 우리말로 바꿔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편으로 거의 우리말로 정착된 상항에서 굳이 바꿔야 하나, 더 혼란만 야기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스런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 어휘는 일본이 만든 한자어만이 아닙니다. 1870년 전후 명치유신을 통해 서양의 근대과학 문명, 학문,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일본에는 그 과정에서 일본에 없던 서양 학문, 사회 시스템 등 많은 개념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개념들, 사물들의 이름들은 일부는 한자·한어 혹은 한자+일본어, 외래어로 번역됩니다.
철도, 기차, 자동차, 대통령, 양산, 신문, 전화, 야구, 축구, 미국, 독일 등과 같은 서양의 신문물과 나라 이름, 경기 이름부터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과학, 물리, 학술, 예술, 철학, 문학, 주관, 객관, 정의, 권리, 귀납법, 명제, 개념, 심리, 소비 이성 등 수 많은 서양철학과 관련된 용어들은 일본 근대 계몽사상가이며 일본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니시 아마네(西周, 1829-1897) 의해서 번역돼 만들어진 조어입니다. 그는 한자 문화와 서양 근대철학에 능통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작업이 가능했습니다.
유길준의 스승으로 알려진 후쿠자와 유키치도 자유, 경제, 연설, 토론, 경쟁, 공화, 억압, 건강, 낙원, 철도 등의 말을 번역했습니다. 그 외에도 교육, 개발, 경영, 인민, 개인, 상사, 미술, 근대, 중세, 고대, 현대, 법률, 미학 등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거의 모든 개념이 일본을 거쳐 번역돼 우리나라에 유입된 말들입니다.
이런 말들은 일본에서 번역돼 만들어진 조어로 이건 일본어일까요? 외래어일까요? 우리말일까요? 일본에서 만들어진 어휘 혹은 번역된 어휘의 유입은 해방 이후에도 이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 휴대폰, 배달, 납골당, 고참, 전향적 사고, 방송, 예능, 연예인, 택배에 이르기까지 일본에서 사용하는 한자어를 그대로 가져다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최근 우리는 BTS의 활약으로 K-POP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K-POP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해도 우리나라 노래는 가요라고 불렀습니다. 지금도 「가요 속으로」, 「가요광장」, 「가요무대」 등의 방송프로그램에서는 가요라는 명칭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K-POP은 1989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J-POP(ジェイ-ポップ)의 변형입니다. 바로 이 시기는 일본 소니가 미국을 대표하는 영화 기획사, 콜럼비아 픽처스를 당시 34억 달러에 살정도로 엄청난 재력을 자랑하던 시기입니다. 당연 일본은 자국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높아졌고 콜럼비아를 기반으로 미국진출을 노립니다. 이 때 만들어진 용어가 J-POP입니다.
컬럼비아 픽처스의 주인이 일본기업 소니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일본영화는 물론 컬럼비아 필쳐스가 제작한 미국영화도 한국에 수입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한국사회에 일본 문화가 침투되는 것에 대한 우려때문이죠. J-POP은 기존 일본가요에서 보이던 리듬, 코드 진행, BPM의 속도와 다른 팝송의 영향을 받은 노래들로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노래가사에 영어가 들어간 노래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 가요에 영어가사가 등장하는 것 1990년대 중반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부터라고 하니 결국 일본의 영향을 받아 K-POP이 탄생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일본어인지, 일본문화로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듭니다.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를 어휘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언어는 늘 변화하고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며 발전하는 살아있는 생물 같은 존재입니다. 외부 문화의 무차별적 수용은 자국 문화를 파괴하며 결국 문화식민지가 될 뿐이지만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라니 사용해선 안 된다, 그것이 과거사 청산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좀 고민해볼 문제입니다.
한국 드라마를 많이 시청하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한국식 영어 “썸”을 쓰는 장면이 일본 드라마에 등장하는 것을 보며 문화는 이렇게 서로에게 스며드는 거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합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날이 머지않 오겠죠. 중국도 일본도 우리도 고유한 문화를 주장하지만 문화는 사람의 이동과 더불어 시공간 속으로 이동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변화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옷을 갈아입습니다. 문화의 다양성은 바로 그런 것으로 너무 스스로를 버리지 않는다면 다야한 것들을 수요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우리다움이 아닐까하는 마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