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여행할 때 딱 한 마디만 기억해야 한다면 그건 「스미마셍(済みません, すみません)」일 겁니다. 뭐 그리 미안한 일이 많은지, 연일 일본인들은 ‘스미마셍’을 연발합니다. 이렇게 상대방이 자꾸 나에게 ‘스미마셍’이라고 하면 거꾸로 ‘내가 뭔가를 잘못했나, 좀 오버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 불편합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이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을 도대체 어떨 때 쓰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살펴보니 일본인들은 사과의 의미가 아닐 때도 자주 쓰고 있었습니다. 고마울 때도, 미안할 때도, 뭔가를 부탁할 때도, 누군가를 부를 때도 그들은 ‘스미마셍’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리가토 대신 ‘스미마셍’을 써도 되냐면 또 그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다양한 의미로 쓰고 있는 ‘스미마셍’이 저만 궁금한 건 아니었나 봅니다. 일본의 문화인류학 창시자인 민속학자 야나기다 쿠니오(柳田邦男)도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을 조사했더라고요. 지금 ‘스미마셍(済みません)’은 「건너다, 유익하다, 도움이 된다, 그치다, 많다」 등 다양한 뜻을 지닌 한자 ‘제(済)’를 쓰고 있습니다. 이 한자를 쓰는 동사 「스무(済む)」는 ‘끝마친다’라는 의미로 ‘스미마셍’은 이 동사의 연용형입니다.
그런데 야나기다의 조사에 의하면 ‘스미마셍’은 ‘제(済)’가 아닌 ‘맑을 징, 나뉠 등’(澄) 자를 쓰는 ‘스무(澄む)’를 썼다고 합니다. ‘스무(澄む)’는 ‘걱정이나 사념이 없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다’라는 의미이므로 그 부정형인 ‘스미마셍’은 상대방이 나를 위해 행한 말과 행동으로 뭔가 빚을 진 마음, 찜찜한 마음이 든다는 의미가 됩니다.
잔존문화를 통해 일본인의 심성, 의식을 연구한 야나기다가 주목한 점은 바로 ‘스미마셍’이 잘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혹은 사과를 위한 말이 아니라 상대방이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베풀어준 호의에 대한 감사함을 나타내기 위해 쓰는 말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로 인해 ‘스미마셍’은 감사할 때도 사용한다는 것이지요. 이 조사를 통해 그가 내린 결론은 나를 위해 수고를 마다치 않는 상대방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이 복합적으로 들어있는 ‘스미마셍’이야말로 일본의 ‘사죄(謝罪)의 문화’ ‘은혜(恩恵)의 문화’를 특징짓는 상징적인 말이라는 점입니다.
일본문화를 도의 문화(道の文化), 예의 문화(礼の文化)라고 합니다. 이 말들을 다시 생각해 보면 배려의 문화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 배려는 상대방에 대한 호감, 감사, 사랑에서 나오는 배려가 아닌 폐, ‘메이와쿠(迷惑)’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소극적인 배려입니다. ‘절대로 상대방이 나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이 배려를 위해서는 항시 상대방의 마음, 상태를 살펴야 하고 몸가짐과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눈치 보는 문화에서는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출하기 어렵습니다.
그 결과 ‘스미마셍’은 커뮤니케이션의 언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일본인들은 자신에게 책임이 없어도 나로 인해 네가 기분이 상했다면 ‘스미마셍’이라고 합니다. 마치 사건 사고를 일으킨 유명인들이 “이유를 막론하고” 죄송하다는 유체이탈적 화법으로 마치 벌어진 사건이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니 나와는 상관없다는, 진심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말을 쏟아내는 것처럼 ‘스미마셍’은 아주 가벼운 사교어가 돼버린 것이지요. 일본에서는 진정으로 사과를 할 때는 오아비시마스(お詫びします) 혹은 사자이(謝罪します, 사죄합니다)시마스‘라고 합니다.
그러니 ‘스미마셍’을 야나기가가 분석한 배려에 대한 감사에 의미로만 쓰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사과를 할 때는 ‘스미마셍’이 아닌 「배상・책임을 동반한」 ‘사죄’를 하길 권합니다. 이런 말은 해서 저도 ‘스미마셍’하지만 말로만 하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스미마셍’하다면 어떤 점이 그런지 분명히 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