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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Jun 13. 2023

당신의 선택은 가키 코오리? 빙수?

더워지면서 차가운 것에 자꾸 손이 가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도 좋지만, 곱게 갈려진 얼음 위에 예쁘게 올려진 여름 과일들, 떡과 젤리, 팥, 달콤한 시럽들이 뿌려진 빙수는 언제나 정답이죠.





우리나라에서는 물을 얼린다는 의미에서 빙수(氷水)라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가키코오리(かき氷, かきごおり,欠き氷)라고 하는데, 줄여서 코오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코오리(氷; こおり)'는 얼음이라는 뜻입니다.



매해 7월 25일은 일본에서 ‘가키코오리노히, 즉 빙수의 날(かき氷の日)’입니다. 가키코오리는 거의 여름에 개최되는 지역축제, 마쓰리(祭り, まつり)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길거리 간식으로 화려한 문양으로 눈길을 끄는 여름용 기모노(着物)인 유가타(浴衣, ゆがた)와 더불어 여름의 상징입니다. 참고로 기모노는 입는다는 동사, 기루(着る,きる)에 물건 물, 모노(物, もの)가 합쳐져 만든 말로 입는 옷이라는 의미입니다만 근대 이후, 일본 전통 옷을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시 가키코오리의 이야기로 돌아오죠. 일본의 가키코오리는 우리의 빙수와 달리 아무런 토핑이 없습니다. 그냥 곱게 간 얼음에 형형색색의 과일 향의 소스(フルーツソース)를 뿌리기만 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얼음 슬러시에 빨대를 꽂아 죽 빨아들이면 달콤하고 시원하고 향긋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집니다. 아주 단순한 맛이죠.



이런 일본식 빙수가 아주 상징적으로 묘사된 일본영화가 있습니다. 안경이라는 의미의 메가네(めがね) (2007)이라는 영화입니다. 어느 봄날 도회지를 벗어나 눈 부신 태양과 투명한 바다, 부드럽게 스치는 상쾌한 바람이 있는, 아니 해변과 시골길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어느 외딴 섬을 여행하러 온 다에코(タエコ).



그녀는 지도를 보며 예약한 민박집을 찾아가기 위해 커다란 짐을 질질 끌며 힘들게 해변을 걸어갑니다. 해변에서 조그만 가게 같은 데에서 가키코오리(かき氷)를 만들던 동그란 안경(丸眼鏡, まるめがね)을 쓴 사쿠라(サクラ)씨는 무심한 듯 “얼음 있어요, 코오리 아리마스요(氷ありますよ)”라고 그녀에게 말을 걸죠.



그러자 다에코는 사 먹으라는 소리라고 생각하고는 “괜찮습니다(겟꼬데스, 結構です, けっこうです)”라며 거절하고는 자기 갈 길을 갑니다. 그런데, 가키토오리를 만들던 사쿠라씨는 그녀가 예약한 민박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몇 사람 살지 않는 이 섬에 다에코가 왜 왔는지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대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같이 노래를 부르고 가키코오리를 권합니다. 그녀는 이 가키코오리가 돈 주고 사 먹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섬사람들은 가키코오리 값으로 악기연주를 해주고, 노래를 불러주고, 예쁜 낙엽을 주고 갑니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다에코도 기꺼이 사쿠라의 가키코로리를 먹습니다. 이처럼 영화에서 가키코오리는 그녀가 섬사람들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드넓은 해변에 앉아 여러 색의 가키코오리를 먹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은 아무나 먹는 가키코오리이지만, 얼음이 귀했던 시절에는 극히 일부의 사람밖에 먹을 수 없는 고가의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빙수의 역사는 헤이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궁녀이며 여성 작가인 세이소나곤(清少納言, せいしょうなごん)이 쓴 『쿠사마쿠라(枕草子)』에는 케즈리히(削り氷,けずりひ), 즉 간 얼음에 달콤한 것을 넣어 그릇에 담아 먹는 귀한 음식이라는 기록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가키코오리에 대한 최초의 기록입니다. 



氷水屋,에드워드 구리,1883年)


横濱馬車道「氷水屋」



간판에 아이스크림

가키코오리가 대중적으로 친숙해지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로 요코하마(横浜)에 얼음 가게가 처음 생기면서부터입니다. 미국 보스턴에서 얼음을 수입하는 미국인이 있었는데 이 얼음에 주목한 나가가와 가헤이(中川嘉兵衛,なかがわかへえ)는 이 얼음으로 1862년 여름, 일본 최초의 빙숫집을 개업합니다.처음에는 먹으면 배가 아프다 등 나쁜 소문도 무성했지만 곧 2시간 이상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인기 스폿이 되었죠. 


 본격적으로 아이스크림집을 개업한 것은 1869년 6월 요코하마에서 「氷水店」을 열고 빙수(氷水,코오리수이)와 아이스크림을 판매합니다.  그리고는 전국으로 체인점을 오픈합니다. 

그는 도쿄에 처음으로 소고깃집과 빵(パン)집을 연 사람이기도 합니다. 후일 제빙기가 개발되면서 천원 정도면 먹을 수 있는 지금의 값싼 가키코로리가 된 거죠. 


여름 풍『風俗画報』 1898年8月10日号


『La journée d’une guesha à Tokio』dessins de Georges Bigot 1891年(東京芸者の一日 デッサン画集)



명치시대의 아이스크림 장사



그런데 가키코오리의 코오리는 얼음 빙(氷)의 일본어 발음입니다. 그렇다면 가키는 뭘까요. 일본에서 가키(かき)는 한자로 사용하지 않고 히라가나로만 표기하여 아마도 가키(かき)가 한자어임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겁니다. 찾아보니, 가키는 결핍되다, 부족하다는 의미의 동사, 가쿠(かく, 欠く)에서 변형된 것으로 큰 얼음을 잘게 자른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네요.



요즘은 일본의 젊은이들은 가키코오리보다 한국의 빙수를 디저트로 더 즐기고 있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뜨거운 여름날, 불꽃놀이를 보면서 먹는 달곰한 카키코오리는 역시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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