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으로 세계로 떠나는 여행길이 거의 모두 막혔던 것이 다 풀려 이제는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마치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린 듯한 시간 속에서 국내 여행도 선뜩 나서기 어려운 시간을 보낸 후라 그런지 낯선 곳과 낯선 풍경, 이국적인 음식들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렙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는 여행의 설렘은 낯선 사람, 낯선 뭔가를 처음 접할 때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약간의 불안감이 섞인 기대감인 거죠. ‘나’라는 사람을 전혀 모르는 곳으로의 여행은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는 두려움과 동시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서 벗어났다는 자유로움을 넘은 해방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일본에는“귀여운 아이에게는 여행을 보내라(가와이 꼬니와 타비오 사세요:可愛い(かわい)子(こ)には旅(たび)をさせよ)”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이가 낯선 것에서 오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이를 감싸 안을 수 있도록 하는 힘을 키우게 하라는 의미이죠. 그런데 이 속담에서 사용된 단어는 여행(旅行,りょこう)이 아닌 여(旅)자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타비(旅, たび)입니다. 이 글자는 한자의 의미로도 나그네 여라고 합니다.
일본어에서 료코(旅行)와 타비는 구별해서 사용됩니다. 여행(旅行)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곳으로 가는 행위를 의미하지만, 타비(旅)는 짧은 여행보다는 좀 더 오랫동안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 혹은 순례, ‘저세상으로 떠나는 여행' 등을 말할 때 사용합니다. 그래서 ‘이국땅을 타비(旅)하다’, ‘타비의 묘미는 낯선 사람들을 만다는 거다’ 등에서 사용할 때는 여행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찾는 타비(旅)를 떠나자’라고 하지 ‘자기를 찾는 여행(旅行)을 떠나자’라고는 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나그네는 여행자가 아니라 타비비토(旅人,たびびと)입니다.
일본어로 ‘여행하다.’는 '료코오스루(旅行をする)'라고만 합니다. 이에 비해 타비(旅)는 ‘타비오스루(旅をする)' 외에도 여행을 떠난다는 의미로 ‘타비 타츠(旅立つ, たびだつ)', ‘타비니 데루(旅に出る, たびにでる)' 등으로 표현합니다. 또한, 이런 말들은 먼 여행을 떠났다는 의미로 ‘저세상으로 떠났다’, ‘속세를 떠났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덧붙여 말하면 여행, 관광 등의 말은 1870년대 일본에서 만들어진 조어입니다. 여행은 travel journey의 번역어로 한자를 조합하여 만든 말이고, 관광은 tourism의 번역어로 중국 문헌, 『주경(易経)』에 등장하는 “観国之光”을 줄여서 만든 조어입니다.
꼭 멀리 나서지 않아도 외부를 향한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자신을 찾는 타비를 떠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다행이도 제가 사는 곳은 자전거를 타고 십여분만 가면 그린 벨트로 묶여있어 여전히 농사를 짓고 있는 풍광을 마주할 수 잇습니다. 그곳에는 벼를 심고, 고추, 마늘, 가지가 심겨져 있고 닭, 오리가 우는 소리, 개짓는 소리도 들을 수 있어 참 좋습니다,
형형색색으로 우리의 마음과 눈을 빼앗아간 꽃들이 떠난 자리를 초록이 채우고 있는 6월, "나를 흥미롭게 해주는 것은 단지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기 위하여 내 평생에 내가 떼어놓았던 발걸음뿐이다.”라는 데미안 속 문구를 상기하며, 내면의 타비비토(旅人)로서 새로운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