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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Jun 19. 2023

민폐가 싫어 민폐의 늪에 빠지

제가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의아스럽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하철 전동문 앞에 [민폐 승차], ‘ 가케꼬미(かけこみ, 駆け込み) 승차는 민폐니까 하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었거든요. 여기서 가케꼬미(駆け込み)는 던져서 끼어들어 간다는 의미로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꼬리물기 탑승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 위험하니까 하지 마세요’보다는 당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니 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경고인 셈이죠. 최근에는 지하철을 비롯한 위험 시설에 '위험(あぶない,危ない)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공지하고 있더군요.




얼마 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당산역 환승 구간의 에스컬레이터에 붙어있는 경고문이 생각납니다. ‘지금 들어오는 열차 여기서 뛰어도 못 탑니다. 제가 해 봤어요’라는 것이었는데, 하지 말라는 말보다 해도 소용없으니 하지 말라는 경고문의 표현은 차를 놓치더라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 정도로 센스있는 경고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하는 일에는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죠. 하지만 일본인 대부분은 어린 시절부터 "사람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人様に迷惑かけちゃダメ)"라고 부모로부터 철저하게 훈육됩니다. 늘 누군가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이 최고의 미덕으로 교육을 받는 거죠. 그래서 뭐든 상대방의 의사를 묻고, 허락을 받고, 몸을 낮추고, 조심하도록 교육을 받습니다. 제 일본인 친구도 어릴 때 늘 엄마에게 “옆집에 민폐가 되니 조용히 해라”, “그렇게 행동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냐”라는 말을 늘 들었다고 합니다. 왜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가에 대한 가르침이 아닌, 늘 남의 눈에 거스르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거였다는 거죠. 다른 사람과 다르거나, 다르게 행동해서 눈에 띄는 것은 ‘메이와쿠(迷惑)’이고,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고 교육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일본인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메이와쿠(迷惑)입니다. 원래 이 말은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불쾌함을 준 것에 대한 사과의 말이지만, 실제로 말썽을 일으켰을 때도 사용하지만, 대체로는 습관처럼 타인에게 뭘 부탁하거나 물어보거나 할 때 관용적인 쿠션 언어로 사용합니다. ‘고메와쿠(ご迷惑) 이시겠지만’ 혹은 비즈니스 용어로 ‘폐를 끼치겠습니다(메이와쿠오 오카게시마스, ご迷惑をおかけします)’, ‘폐를 끼쳤습니다(ご迷惑をおかけしました)’’라고도 사용합니다. 이 말은 영어로 번역하기도 어렵다고 하는데, 우리말로 굳이 번역한다면, ‘죄송한데’ 정도일까요.




아무런 폐도 끼치지 않았지만, 본인의 행동, 말, 존재 자체로 괜스레 상대방이 마음 쓰게 한 점, 혹은 불편했을지도 모를 것에 사과하는 겁니다. 이 말은 일본 특유의 동조를 중시하는 사회 규범에서 나온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19년 6월 일본에서 농수산부 차관 출신의 남성이 44살 먹은 아들을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들이 중2 때부터 가정에서 폭력을 사용하였고 사건 당일도 아내에게 아들이 폭력을 썼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폭력을 써서 민폐(메이와쿠, 迷惑)를 끼치느니 내가 죽이는 것이 났다고 생각했다 합니다. 또한, 자식과 사회에 폐(迷惑)가 될 것 같아서 안락사를 원하는 일본 노인이 70% 넘는다고 합니다. 얼마 전 아무도 돌보지 않은 노인들에게 일주일 후에 죽을 것을 약속받고 10만 엔을 건네주고 장례를 책임져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일본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노인들은 사회에 부담만 주는 존재라서 국가 차원에서 제거하는 거죠.




하지만 사람이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오만이 아닐까요.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누군가의 손길이 있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메이와쿠(迷惑)라고 배제하고, 혐오 시설이라고 치워버리는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우리가 나중에, 정말로 누군가의 메이와쿠가 되는 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우리는 치워져 버릴 겁니다. 결코,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다른 사람의 메이와쿠도 수용할 수 없다는 편협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은 폐를 끼쳐도 내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은 그런 사람이 나의 주변에 부디 많아지기를,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과 사람들을 기꺼이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내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우린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도 후쿠시마의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를 해양방류하겠다는 메이와쿠한 일본 정부의 결정은 절대로 철회해야겠죠. 주변국만이 아니라 바다에, 지구에, 그리고 우리 후손에게 끼칠 어마어마한 피해를 생각한다면 이번에는 ‘메이와쿠(迷惑)’의 미덕을 발휘해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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