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앙(あん)」이 보여주는 살만하고 따뜻한 세상
카와세 나오미 감독의 2015년작 「앙(あん)」은 국내에서는 「앙: 단팥 인생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습니다. ‘앙(あん)’만으로는 의미전달이 어렵다고 판단한 배급사에서 ‘단팥 인생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앙(あん,餡)’은 들어본 적이 없어도 ‘앙꼬빵’, ‘앙꼬없는 찐빵’이라는 말은 들어봤을 겁니다.
앙코란 빵이나 만주, 혹은 만두 속에 넣는 소로 ‘앙(あん, 餡)’ 또는 ‘앙코(あんこ, 餡子)’라고 합니다. 앙꼬가 굳이 팥일 필요는 없습니다. 팥 외에도 동부 콩, 밤, 고구마, 단호박 등을 앙꼬로 만든 앙꼬빵을 실제로 보실 수 있습니다.
앙꼬빵이 팥빵으로 된 것은 1874년 기무라야(木村屋) 빵집에서 출시한 속에 팥을 넣은 ‘앙꼬빵’이 너무 유명해지면서부터로, 이때 이러한 이미지가 굳어진 겁니다.
자,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죠. 영화 「앙(あん)」의 주연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키키키린(樹木希林)’씨로, 사실 저는 잘 모르는 영화였는데 이분이 주연이라 무조건 보았습니다.
벚꽃이 만개한 거리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카운터에 의자 3개만 놓여있는 작은 도라야키(どら焼き) 가게. 이곳은 출소한 센타로가 비록 자신의 소유는 아니지만, 혼자서 운영하는 가게입니다. 그곳에 오는 손님은 여고생 몇 명과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짊어진 여고생, 와카나(ワカナ) 정도입니다. 어느 날 옅은 선글라스를 쓴 나이 지긋한 한 여성이 찾아옵니다. OTT가 아니라 영화관에서 관람했다면 그녀의 혹이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왔고, 얼룩덜룩한 상처투성이의 손에 눈길이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토쿠에(徳江). 센타로(千太郎)에게 구인광고를 보고 왔다며 자신이 만든 단팥 소(あん, 餡)를 권합니다. 그 단팥 소를 먹어본 센타로는 그 맛에 놀라며 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싶다는 토쿠에를 고용합니다. 그녀가 정성으로 만든 단팥 소를 넣은 도라아키는 단숨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 토라야키를 사기 위해 사람들은 아침부터 길게 줄을 섭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그녀가 그렇게 숨기고 싶었던 비밀, 바로 그녀가 한센(ハンセン)병, 일명 나병 환자라는 비밀이 알려집니다. 이를 알게 된 가게 주인은 토쿠에의 해고를 요구하고 한센병 환자가 만든 도라야키라는 소문이 나면서 손님의 발길이 뚝 끊깁니다.
한센병은 몸 일부가 썩어들어가는 병으로 완치가 되어도 병의 흔적은 고스란히 몸에 남아 그가 어떤 병을 앓았는지를 증언해 줍니다. 그래서 한센병 환자들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 수 없었습니다. 손님이 오지 않는 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토쿠에는 가게를 그만두고 한센병(ハンセン病) 집단거주지로 들어갑니다.
마음이 영 편치 않은 센타로와 여고생, 와카나는 한센병 집단거주지 아파트로 찾아가 토쿠에와 다른 한센병 완치자들이 만들어준 음식을 맛있게 먹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찾았을 때는 이미 그녀가 죽은 후였습니다. 토쿠에는 센타로에게 녹음으로 마지막 유언을 남깁니다. 폐렴으로 입원하고 있었을 때 센타로를 여러 번 보았다는 토쿠에는 센타로의 눈이, 16살에 한센병으로 병원에 끌려갈 때의 자신처럼 너무 슬퍼 보여서, 자꾸 마음이 쓰여 찾아간 거였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녀는 임신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엔 한센병은 유전된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한센병 환자의 출산을 엄격히 금했습니다. 자신이 아이를 낳았다면 센타로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거라는 토쿠에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 듣기 위해 태어난 거다. 이 세상은 단지 그것만을 원하고 있어. 그렇다면 뭔가가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거야.
(私達はこの世を見るために、聞くために、生まれてきた。この世は、ただそれだけを望んでいた。…だとすれば、何かになれなくても、私達には生きる意味があるのよ。)
꼭 뭔가를 이루거나 뭔가가 되지 않아도 우린 충분히 그 자체만으로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