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가 귀찮은이들을 위한 거슬리는 처방전
“ 삼일 전부터 아이가 보채기 시작해요... 어제부터는 먹는 량도 줄었어요....”
선생님은 종합병원 소아과에서 예약 잡기 힘든 유명한 의사 선생님이었다. 친구의 소개로 어렵사리 예약을 잡아 겨우 방문하던 차였다.
그래서 감기예요?
손님(?)이 너무 많은 탓일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무적으로 묻는다. 의사라면 적어도 아기가 열이 있는지? 기침은 안 하는지? 여부에 대해서 먼저 물었어야 했다.
“... 어제부터 열이 나서....”
라며 아직까지 신열이 있는 아기를 무릎으로 둥기둥기 해가며... 해열제를 먹이기 시작한 시점부터 체온과 약을 먹인 시각을 꼼꼼히 기록한 쪽지를 내밀었다. 내가 내민 쪽지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 아이참... 그래서 감기냐구요?”
나는 한 바터면
“ 아자씨, 그걸 저한테 물으시면 어떡해요? 내가 의사예요? 감기인 줄 알면 내가 병원에 왜 오겠어요?”라고 쏘아붙일 뻔했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그의 그런 불량한 태도에 기가 막혔지만 한마디 말대꾸도 못하고 어버버 하다가 내쫓겼다. 성의 없는 처방전 하나만을 손에 쥔 채...
약을 먹고 아이는 낫기는 했다. 72시간의 법칙이 통하기도 했으려니와 이후에 들은 그 의사에 대한 소문처럼 항생제를 쎄게 써서 그런 건지... 명의라는 소문도 필요이상의 항생제용량을 난발했던 처방전 덕분일 거다.
의사들은 왜 그렇게 무례한 걸까... 번번이. 마치 환자들이 자신들을 귀잖게라도 한다는 듯이.
물론, 세상엔 좋은 의사 선생님들도 어딘가엔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란 학교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내겐.
나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할 때 면 손을 뒷목에 대고 긁적이는 버릇이 있다. 논문을 쓰면서 안 풀리는 테마를 해결하느라 그곳을 하도 긁적 거리는 바람에 뒷목에 지루성 피부염이 생겨버렸다. 여러 가지 약을 써봐도 아무리 병원을 전전해도 낫지 않았다. 치료하다 지쳐 오랜 시간 방치했더니 점점 번져서 급기야 그 부분에 각질이 생기면서 비듬처럼 하얀 가루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방치하기 힘든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었다. 이미 발병 후 3-4년이 지난 후였다. 병명을 이미 아는 이병을 위해 연고로 어떻게든 무마시켜 보려고도 하고 비듬샴푸를 써보기도 하면서 뭉개는 중이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집 앞에 새로 개원한 피부 전문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났다.
“ 제가 뒷목을 긁적이는 버릇이 있거든요. 너무 많이 긁었더니 그 부분이 헐어서 가렵고 이젠 그 부분에 각질이 비듬처럼 일어나요.”
“ 어디 한번 볼까요... 접촉성 피부염이네요.”
“ 나가시면 간호사가 약을 한통 줄 거예요. 그걸 환부에 고루 바르세요. 그리고 머리를 너무 자주 감아도 안 좋아요. 그리고 머리를 감으면서 5분간 살살 마사지를 해주세요.”
다른 병원과 별반 다르지 않은 처방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기필코 낫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간 곳이라 선생님의 뻔한 처방이지만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다른 건 다 알아듣겠는데 그놈의 <살살>이 문제였다. 당최 감이 오지 않았다. 얼마나 살살... 이건 다분히 개인적인 강도인 것이다. 얼마나 어떻게 살살...???
나는 참지 못하고 되물었다.
“ 얼마나 살살이요?”
“ 사알 살요” 선생님은 혀에 힘을 주고 혀를 사알 살 튕기며 발음했다.
“ 그러니까 얼마나 사알 살이요?” 나도 똑같은 입모양으로 대답했다.
“ 손가락을 이렇게 하고 요렇게” 선생님은 손가락을 어정쩡하게 구부리며 어정쩡하게 설명을 했다.
<살살>이 더욱 미궁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살살>은 형태가 아닌 강도란 말이다... 아우 답답해.
“ 선생님 정말 죄송한데요. 이해가 안 가서 그래요. 그러게 어떻게 살살요? 이렇게? 요렇게?”
답답함에 이미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나는 처방전을 쓰고 있는 선생님의 손을 덥석 잡아 올려 손등 위에 내 강도를 설명해 보였다. 처음엔 간지르듯 살살 두 번째는 약간 손 끝에 힘을 주고 살살...
선생님은 그날 변태 환자를 만났다.
답답함도 전염이 되는지... 더 이상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 선생님은 나의 이상한 이 살살에 대한 도착증을 감지하고는 그와 나사이에 있던 책상을 휙 넘어오더니 내 도르래 의자를 확 본인에게 끌더니 내 머리에 손가락을 구부정하게 대면서 문지르며 말했다.
“ 이 정도로 살살! ok?"
" 아하...! “ 순간, 내 머릿속에선 박하향이 났다.
“ 감사합니다!”
그제서야 살살의 강도를 완벽히 이해한 나는 선생님을 풀어줬다.
집에 와서 그날부터 너무 자주가 아니게 머리를 감으면서 선생님의 살살의 강도를 복기하며 5분간 마사지를 하고 환부에 연고를 정성스럽게 발랐다.
덕분에 지금껏 재발하지 않고 잘 관리되고 있다 나의 뒤통수는...
생각해 보면, 그날 내게 필요했던 건 <의학적 처방>만이 아니었다. <의학적 관심>이었다. 내가 아픈 곳을 의사 선생님도 교감해줬으면 하는 환자로써의 당연한 바람 같은 류의... 그에게 내가 바란 게 내가 요새 얼마나 외로운지? 내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와인이 당길 때는 언제고 소주가 땡길때는 언제인지? 커피는 왜 3단계로 구분하여 마시는지... 이런 사적인 것을 공감해 달라는 게 아니란 말이다. 물론, 가끔 피부과에서의 나처럼 선을 넘는 진상 환자가 온다면 사쁜히 무시해도 아무도 뭐라 안 한다. 나도 그날 집에 와서 내행동에 대해서 선생님께 죄송함을 듬뿍 담은 이불 킥 좀 했으니까...
사람이 아프면 한없이 약해진다. 환자의 부모인 경우, 환자보다 몇 배는 더 약해진다. 그 순간 그들이 바라는 것은 정확한 진단명만큼이나 정확한 배려다 환자로써 당연한. 지극히 개인적이 배려가 아닌 환자에게 의사가 정당 해주어야 하는 한 숟갈 정도의 배려. 그거면 충분하다. 그 한 숟갈의 배려라는 것도 거창 할 게 없다. 환자의 병명에 따른 증상을 조곤조곤 설명해 주는 정도, 큰병앞에서 사무적이지 않은 태도. 딱 그만큼, 아이의 열을 잠재울 수 있는 5ml, 한숟갈의 량이면 충분하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배려라기 보단 의무 아닌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선언했던 자로서?
요사이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등장하는 익준(조정석)이나 정원(유영석)이 같은 의사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나머지 차라리 동화에 등장하는 산신령을 보는 것 같은 신령한 느낌 마져든다. 그래서 흔히들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판타지 드라마라고 한다. 물론 드라마에서도 의사들의 생활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달프고 바쁜지 잘 설명해줘서 우리도 그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잊지 않아줬으면 한다.
그들이 만나는 사람은 일상의 그냥 보통의 <사람>이 아닌 <환자>란 말이다. 환자는 그냥 둬도 아프다. 의사들까지 나서서 상처 주지 않아도 항상 아픈 존재를... 조금은 배려해 주기를... 가끔씩 환자이면서 언제 또 환자가 될지 모르는 모든 이들, 그리고 그들보다 100배는 더 아픈 그들의 부모, 자식들을 대표하여 부탁해 본다.
누가 감히 슬기롭기까지 하래... 기본만 충실해 주길 기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