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 <비가 오나 해가 뜨나>와 드라마 <인간실격>
최근 드라마 <인간실격>에서 어리지 않은 전도연이 버스정류장에서 자기는 여태껏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면서 칠십의 아버지 앞에서 울고 있다. 그 옆에 그녀는 모르는 채로 역시 아무것도 되지 못한 어린 남자 류준열이 그것을 듣고 서 있는 모습이 흑백 화면으로 바랜다.
비가 오나 해가 뜨나 왜 우리는 모두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채 세상을 사는 걸까? 언제부터... 그렇담, 우리를 제외한 누군가는 그 무엇이 되었을까? 그들은 행복한 걸까?
인생이 지맘대로 된다면 그게 인생일까? 드라마지... 그러면 적어도 드라마에서는 뭔가 된 사람들이 출현하는 게 맞잖아?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나오는 건 배신이지. 뭔가 된 사람들의 막장 드라마가 난무하는 세상 속에 드라마 <인간실격>이 있다. 마흔의 전직 대필작가에서 파출부가 직업인 여자와 스물의 생계형 호빠 출신 남자는 서로 무엇이 되지 못함을 위로하며 거리를 걷고 옥상에서 별을 본다. 처음엔 나이 많은 연상녀와 어린 남자의 그저 그런 사랑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흔한 출생의 비밀 초자 나오지 않는 자극적인 내용이 전혀 없는 드라마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삶은 날카로운 면도날로 손가락을 베이는 것 같은 날카로운 아픔이 묻어있다.
장기를 떼어 줄만큼 희생은 할 수 있어도 좋아할 수는 없다는 부부의 고백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심쿵하던.
무엇이 되는 것보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성공한 실장님도 성공한 캔디도 나오지 않지만 딱히 내세울 기승전결도 없지만 이 드라마... 그들이 무엇이 아니어서 더 몰입이 되었다. 그들이 <평범>조차 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여운이 짙다. 뭉클하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단편 < 비가 오나 눈이 오나>에도 무언가 되지 못한 채로 마흔일곱을 맞은 레이몬드가 있다. 그는 변변한 직업이 없이 외국을 떠돌며 영어강사를 한다. 런던에 자리를 잡은 성공한 친구 찰리는 그런 그를 일부러 초대하여 부인 에밀리에게 친구의 처지를 빌어 자신의 성공을 일깨우며 자신들의 엇갈린 관계를 어찌해보려 일부러 친구 레이와 부인 에밀리 만 남겨둔 채 출장을 간다. 그렇지 않아도 찌질한 레이몬드를 더 찌질하게 만드는 소동극이 벌어지고 찰리의 코치대로 찌질함의 극치를 꾸미지만 그 모습의 클라이맥스에서 찌질극마저도 찌질하게 실패하면서 그 모습을 하필 에밀리에게 들키게 되는 레이, 레이몬드
한때는 전도유망했던 세 친구들 에밀리, 찰리, 레이몬드, 마흔일곱을 겨우 마흔일곱이라고 애써 미화시키는 레이몬드를 예순일곱이 되어도 고작 예순일곱이라고 할 거라며 비옷던 친구 부부. 자기들 부부관계의 문제 하나도 제대로 풀지 못해 스스로 나서지 못하고 친구를 이용할 만큼 찌질하면서... 누가 누구더러 찌질하데? 서로의 마음조차 헤아릴 줄 모르면서... 무언가 되었으면 뭐해... 손에 쥐고 있는 관계 하나도 쩔쩔매고 있는 주제에...
적어도 레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얘기해 줄 수 있을 정도는 성숙하다. 음악을 들으며 눈물 흘릴 줄 알고 - 앗! 또 찌질하다고 놀릴라!- 8분짜리 <에이프릴 인 패리스>가 끝날 때까지 친구 부인을 위로하며 춤을 출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짧지 않은 8분의 정적을 견딜줄 아는 따순 남자... 대체 뭐가 문제야?
젊은 날 그렇게 성공을 하라고 주위에서 재촉을 하더니 이제 그것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만큼의 나이가 되어 안주하려는데 <이제는 100세 시대>라며 이제라도 무엇이 되라고 권하는 사회에 오십을 바라보는 내가 산다. 이러다간 죽어가는 묏자리에 와서도 뭔가는 되고 죽으라고 못 죽게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