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한땀 한땀

첫인상은 믿지 않는다.

가즈오 이시구로 <멜버른 힐> 함부로 친절하게

by 조용해

이제, 나는 나에게 처음부터 괜히 잘해주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어렸을 땐 처음부터 괜히 내게 틱틱거리는 사람을 싫어했었다. 그래서 많은 좋은 사람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반면, 나한테 이유 없이 잘해 주는 사람들을 당연시했던 것 같다. 그들의 의도를 순진한 나는 파악할 수 없었기에 다 나 같은 줄 알고-다 나같이 별 생각이 없는 줄 알고-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크게 뒤통수를 몇 대 맞고부터였다. 그들을 의심하기 시작한 건.

어쩌면 당연하다. 별 의도가 없던 사람들은 내게 틱틱거렸던 것이 아니라 지극히 중립적인 반응을 보였던 거였다. 그들을 불친절하다고 느끼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내 느낌에서 출발했었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부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나에게 그것을 알게 되는 과정은 매우 물리적이었으며 내가 알지 못할 수 없게 확실한 상처를 주며 알려졌다.




<멜버른 힐>은 그것에 관한 작가의 통찰을 기록한 단편 소설이다. 우리의 첫인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섣부르며 위험한 것인지에 관한 작은 에피소드로부터 시작한다.


덧붙여 모든 것에 무조건 긍정적인 평가를 내뱉는 사람의 칭찬이 얼마나 공허한지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그것은 그가 아무런 의도 없이 그런다고 해도 공허하다. 그와의 시간이 버려진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렇다.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뮤지션인 경우 특히나 계속해서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경우, 그의 노래를 듣고 난 후의 대중들의 반응은 그의 나아갈 바를 정하는데 도움을 주는 유용한 요소이기 때문에 더더욱. 10개의 음악을 들려줘도 다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대중성을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단지, 내가 10곡을 들려준 시간 만이 아까울 뿐이다. 뿐만 아니라 나의 생각 회로가 나도 모르게 칭찬에 반응하여 별로인 것을 좋은 것으로 인식해 버리면 그것은 그 시간낭비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평가로 인해 앞으로의 행보에 있어서 영 아닌 길로 가는 방점을 찍을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주인공은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 라이터로 런던에서 오디션을 전전하며 기회를 보던 중 여의치 않아 누나네 카페가 있는 멜버른 힐에 잠깐 동안 머물며 누나의 일을 도우며 노래를 만든다.

그곳에서 스위스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 영국에 온 틸로와 소냐를 손님으로 만난다. 틸로는 무엇이든 칭찬하는 칭찬 과다형 인간, 소냐는 그냥 손님이었다. 까다로운.

그러다 작곡을 하러 집 주변 언덕에서 기타를 연주하다 산책 나온 이 부부를 만난다. 알고 보니 그들도 뮤지션이었던 것. 그 부부와의 만남에서 음악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면서 그들에 대한 첫인상이 바뀌는 이야기.


때로는 나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우리는 얼마나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며 사는가? 영혼 없는 칭찬을 영혼 없는 칭찬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나도 모르게 그것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기준은 무시한 채로 얼마나 생각 없이 무심코 받아들이는가? 그것은 후에 정확한 무언가를 판단할 때 얼마나 나의 판단기준을 흐려 놓는가...


당신의 무책임 하고 무신경한 습관적 칭찬이 누군가 외롭고 절박한 이에게는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는지 당신은 모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 가까이의 사람에게 얼마나 피로감을 주는 지도...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그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대게는 내게 친절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그것을 기대했던 건 나의 잘못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처음 대하는 그의 태도에 몹시 화가 났고 저런 사람은 다시는 상대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까지 마음먹었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지금 나는 그와 결혼하여 비교적 무난하게 살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나는 유학 후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별 쓸모가 없는 인간이었다. 나이만 많이 먹었을 뿐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유학을 한 경력을 인정받아 말단을 건너 띠고 중간 직급에 입사하고 만다. 말단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히 경력을 쌓아왔던 그가 능력 없고 나이만 먹은 내가, 뭘 시켜도 신통치 않았던 내가 좋았을 리 없었다. 어떤 일을 시켜도 잘하지 못했고 그러면서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나 같아도 싫겠다. 그런데 그 당시 나는 그런 나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기준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단지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앞뒤 잴 것 없이. 이것은 순전히 나의 문제였던 거다. 그 당시 회사 내에서 나에게 잘해준 사람들은 나에 대해 별 기대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그 회사를 그렇게 오래 다닐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잘해줌으로 해서 내가 나의 문제를 인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게 하는 교란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을 보낸 후...


어쨌든 나는 구박을 받아가며 그때는 나의 상사였던 남편에게 조금이나마 일을 배울 수 있었고 그것으로 지금까지 먹고살고 있다.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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