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한땀 한땀

독서라는 마약

취향

by 조용해

이제는 더 이상 원도 꿈도 없는 나는 시한부 행복을 꿈꾸며 산다. 그래서 잠깐 동안 집중할 것이 생기면 그것처럼 좋은 것이 없다.

그런 내게 요사이 작은 변화가 있었으니 그것은 가즈오 이시구로를 알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 때 대학생 언니의 책장에서 훔쳐낸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을 읽었을 때 그랬고 그로부터 정확히 20년 후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읽고 한동안 그로인해 붕 뜨며 공중부양을 하는 듯한 내 마음이 그랬으며 그 후로 13년 지난 지금, 실로 오랜만에 집중해도 좋을 만한 것을 찾았다. 한동안은 이 기분 좋은 행복감이 책을 읽는 동안만은 유지될 것이라는 확실한 예감이 든다.


모두가 일본 작가인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월드컵 때면 본선 진출에 상관없이 다른 나라는 다 제처두고 라도 일본만은 이겨주기를 바라는 내가, 최근 일본인 친구에게 뒤통수를 야무지게 얻어맞은 내가 특별히 일본적 세계관을 좋아할 리 없다. 더욱이 가즈오 이시구로는 바나나인 것이다. 껍데기만 일본 알맹이는 영국인. 어쨋은 좋은 것에 변명은 구차하다.


즐거운 것은 나는 얼마간은 잠정적 우울감에서 휴가를 신청할 것이고 급기야는 조증으로 갈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뻔하지 않음이 나를 설레게 한다. 그의 삶에 대한 깊은 페이소스-깊은 페이소스라고 쓰고 깊은 빡침이라고 읽는다- 가 나의 뒤통수를 기분 좋게 가격하는 그 타격감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나보다 한참 오빠인 것이 마음에 든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은 웬만하면 조카이거나 아들뻘이 향유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음하하하...실로 오랜만에 얼마 살아 있을지 모를 몇 안 되는 오빠를 하나 찾은 것이다.

다시금 빠순이가 되어 오진 덕질을 해도 좋으리 만큼 멋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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